달리기

러너스 하이는 「진짜」다.

by 조이



어떠한 도구도 필요 없이, 이 한 몸을 구석구석 사용해 에너지를 발산할 때 희열을 느낀다.

숨이 차서 더 이상 달리지 못하겠다는 순간을 넘겼을 때의 쾌감 때문에 쉽사리 멈추지 못한다. 달리기가 끝나면 심박수가 격하게 오르는데, 심방과 심실 판막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느껴질 정도이다. 내가 자고 있는 동안에도 열일하는 나의 심장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간.

러너스 하이(30분 이상 달리면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지면서 경쾌한 느낌이 들며 엔도르핀의 작용으로 마약처럼 중독되는 것을 일컫는 말)는 「진짜」다.


본과 3학년 학생 의사 실습을 할 때였다. 출퇴근 길에 양옆으로 나무들이 서있는 깔끔하게 정비된 도심 속 산책길이 있었다. 봄이 되면 싱그러운 초록 잎으로, 가을이 되면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행인들에게 잠시 쉬어가는 묘미를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일상에 찌들어도 이 길을 걸을 때면 나에게 소박한 선물을 주는 기분이었다. 나는 원래 다리는 짧지만 성격은 급해 걸음걸이가 빠른 편인데, 하루는 출근길에 걷다가 무작정 속도를 내어 달려보았다. 지각을 걱정할 시간대도 아니었는데. 나무들을 양옆에 끼고 가는 느낌이 들면서 무엇인가 벅차오르는 것 같았다. 지겨운 출근길에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니. 스스로를 칭찬해주었다.


필라테스와 요가를 같이 수강할 수 있는 피트니스센터를 꾸준히 다녔다. 일부러 필라테스 수업이 없는 날 방문해서 러닝머신에서 30분 혹은 더 오랫동안 신나게 달렸다. 비트 있는 음악을 들으며 무작정 뛰고 나면 쌓인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 사람은 오늘 나한테 왜 그랬을까. 나도 내가 이 정도밖에 안되는 거 아는데 도대체 내가 어디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 등등의 자책과 후회로 똘똘 뭉쳐 얼어붙은 감정들이 갓 내린 고운 입자의 하얀 눈처럼 녹아내렸다. 얼음은 손을 대면 동상이 걸릴 것처럼 아프지만 눈은 빗자루로 잘 쓸어주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주 신던 굽 있는 구두를 신으면 너무 왼발이 아파오는 것이었다. 10분 이상 걸으면 왼쪽 엄지발가락 밑 발바닥이 불타는 것 같았다. 타고난 작은 키 때문에 5cm 굽은 기본이고 단화가 하나도 없던 나는 신을만한 신발이 없다는 것이 일단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진단될만한 질환이 무엇이 있을지 찾아보아도 의대생의 짧은 지식으로는 무리였다. 정형외과 병원에 내원하여 X-ray를 찍고 진찰을 받고 발바닥 뼈 골절임을 알게 되었다. 최대한 발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는 보존적 치료가 최선이라고 하셨다. 병원을 나서면서 나는 웃음이 났다. 도대체 얼마나 힘을 실어 무식하게 달렸으면 뼈가 부러질 정도인지? 못 말리는 나란 녀석.


방학기간을 이용해 한 달 넘게 집에서 요양생활을 했다. 다친 곳이 너무 국소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라 언뜻 보기엔 호의호식하는 한량의 생활이었지만 어쨌든 난 환자고 최대한 발을 쓰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으니까 합법적인 쉼이었다. 이후에도 1년간은 단화만 신고 다녔다. 서서히 통증은 좋아졌고 더 이상 아무리 걸어도 왼쪽 발바닥이 아프지 않게 되었을 때 다시 슬슬 달리기를 시작했다. 구두도 다시 샀다.


가장 좋아하는 달리기 코스는 한강 근처이다. 처음 마포대교 위에서 지는 해가 비치는 한강을 바라보며 달렸을 때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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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쨍하고 전율이 흘렀다. 마포대교 절반을 지나왔을 때쯤, 처음 달리기 시작할 때 그토록 멀리 있던 여의도의 빌딩들이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내 미래도 내가 계속 달리는 상태에만 있다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이 차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순간의 고비에서 포기하지만 않으면 길의 끝에 도달하듯 계속 이 생을 붙잡고 살아낸다면 시나브로 삶의 끝에 이를 것이다. 가끔은 속도가 느려지더라도, 잠깐 멈춰서더라도, 중요한 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가 아닐까?묘하게 위로가 되는 날이었다.


이제는 부상의 과거력이 있는 내 발을 배려해서 30분 이상 무리해서 달리지는 않지만 여전히 이런저런 고민들로 무기력해질 때마다 운동화를 챙겨 신고 훌쩍 집을 나선다. 어딜 가든 근처에 달릴만한 코스나 운동 시설이 갖춰져 있는지 꼭 살피곤 한다. 극한의 순간에 살아있음을 느끼는 아이러니한 재충전의 달리기. 인생을 달리기 코스로 비유하면 나는 어디까지 온걸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건 오늘도 나는 달리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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