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몇 시 퇴근하노?>
느닷없는 오후 3시 아버지의 카톡.
‘왜 물어보지?’라는 혼잣말부터 불쑥 나왔다. 고향을 떠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일 년에 몇 번 찾아뵙지도 않아 이제는 다소 서먹해진 아버지.
<오늘 당직이요>
<그래? 내일 언제 퇴근?>
<왜요?>
<오늘 서울 와서 너 집에 가서 잘까 생각했더니만...>
본 투 비 경상도 남자인 아버지는 원래 부연 설명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벌써 누군가의 엄마가 되고도 남는 나이인데. ‘집’이라 하기도 민망한, 6.5평 작은 원룸인 것도 맞지만. 딸 집에서 자고 가겠다고 갑자기 선언하다니. 내가 아직도 어린애라고 생각하시나? 나도 나만의 프라이버시가 있는데!
<그럼 미리 얘기를 하시지 방 청소도 하나도 안 돼있는데.>
괜한 심술이었다. ‘나 무시해?!’의 소심한 표현.
<언제나 내가 청소하잖아..^^ 청소는 내 알아서 할게>
<그래요>
우리의 카톡은 여기까지였다. 이후 정신없이 불금 당직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아무도 상태가 악화되거나 세상과 작별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훌륭한 당직이다.
금요일 당직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당직이 끝나고 아침에 바로 퇴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평일 당직은 당직이 끝나도 바로 오전 정규 업무 시작이다.) 작고 소중한 나의 원룸에 돌아오니 새 집같이 환한 곳에서 아버지가 무심하게 걸레를 툭툭 널고 계셨다.
“내가 바닥 한번 다 닦고 화장실까지 청소했다. 침대 구석 그런데는 평소에 청소를 안 해서 먼지가 한가득이더라. 다 청소했다.”
웃음이 났다. 역시 우리 아버지. 어디를 가든 각 잡고 깔끔한 공간을 만드시는 분. 정리정돈의 달인. 20대에 전국을 떠돌며 이사할 때마다 항상 아버지가 함께해주셨었다. 보기만 해도 ‘언제 저걸 다 치우지’ 한숨을 쉬던 나와는 달리 아버지는 신기하게도 혼돈을 정돈으로 바꾸셨다.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는 미련한 성격이다. 반대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버리고 치우는 아버지의 손놀림을 보고 있노라면, 무엇이 저 사람을 저렇게 확신 있게 만드는 것일까 혼자 생각해보곤 했다.
어릴 때 아버지는 나의 영웅이었다. 새벽 해가 뜨기도 전에 출근해 걸핏하면 야근으로 밤늦게 퇴근하던 아버지. 술 담배는 입에 대지도 않으셨다. 틈만 나면 운동하며 오로지 집과 직장을 오가는 것이 루틴이셨다. 아버지의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주말마다 동생과 나를 데리고 등산하거나 배드민턴 치며 운동하시곤 했다. 내게 아버지는 듬직하고, 성실하고, 능력 있고, 오직 가족만 생각하는 우리 집안의 기둥이었다.
철없던 시절, 아버지와 나 사이에 큰 강을 건널 만큼 짧지만 강렬한 충돌이 있었다. 언성이 높아진 건 아니다.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간결하고 핵심만 오가니까. 서로의 생각과 관점이 합의점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다만 그 이후로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다정한 부녀 사이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미 물리적으로도 멀어진 상태였고 나도 나름 머리가 커버렸기 때문에.
어쨌든 어버이날이나 생신 때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정도로 챙겨드렸다. 우리 사이가 어떻든 밖에 나가서는 자식 덕분에 어깨 펴는 당신이 되길 바랐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얼굴 보고 같이 시간 보내는 게 즐겁고 귀한 시간이거늘… 고맙다.’ 라며 수줍게 하트 이모티콘을 보내셨다.
“근데 서울은 왜 오신 거예요?”
“어제 너희 큰아빠 보고 왔다. 그리고 네가 예전에 관심 있었던 분야 관련해서 내 친구들 중에 전문가가 있거든. 같이 만나고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하시지, 그럼 내가 심통 내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분 좋게 오시라고 했을 텐데.
꼭 아버지는 그런 식이다. 이제는 나도 아버지의 소통 방식을 받아들일 때도 됐는데. 다 알면서도 괜히 투정을 부려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탔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이것저것 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운전하며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고 계셨다. 그리고 한 마디씩 짚어주시는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가르침이었다. 내가 겪었던 모든 어려움을 아버지도 이미 인생의 선배로서 다 건너오셨구나. 나는 오로지 내 앞길만 바라보며 달려왔는데. 그동안 아버지는 이 가정을 짊어지고 어떤 세월을 보내셨던 걸까.
깊게 파인 아버지의 이마 주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병원에서 당직하느라 집에 못 들어오는 큰딸의 자그마한 원룸을 청소하며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보다, 딸에게 뭐라도 더 좋은 걸 주기 위해 서울까지 오던 긴 시간 동안 아버지는 무슨 마음이셨을까.
아, 나는 평생 아버지라는 존재를 결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