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에세이 #2
머릿속에서 끝없이 어떤 멜로디가 반복되는 때가 있다. 나는 거의 언제나 그런 편인데, 요즘 매달려 있는 멜로디는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이다. 조가 바뀌고, 클라리넷과 현악기가 끊임없이 음을 주고받으면서도 오르락내리락 반복되는 하나의 멜로디. 그 안에서 내 마음은 끝없이 걷고 있다.
아침부터 비가 왔고, 부쩍 추워져서 이제 가을 곧 겨울이 오려고 한다. 추워지면, 갑자기 나는 얼어붙는 것 같다. 우울의 그림자가 저 멀리, 나를 보고 있는 것이 느껴져서. 끝없이 걷고, 걷는다. 그림자를 향해 내게 다가오지 말라고 소리치면서. "계속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가야 해."
실험실의 개구리가 된 것 같은 시절이 있었다. 외부의 온도에 의해 체온이 변하는 변온동물. 그래서 차가운 물속에 개구리를 넣고 서서히 물의 온도를 높이면, 개구리는 자신의 몸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도 모르는 채 물속에서 죽어간다고 했다. 개구리처럼 죽고 싶지 않아서 오랫동안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모두 말렸고, 나도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나 그만두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만이 모든 이유였다. 따뜻한 물속에서 나와, 걷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믿을 것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사라바>의 아유무처럼.
오늘 아침에 문득 생각했다. 계속 걷고 있는 내 마음을 멈추고 싶다고. 지쳐버렸는지, 이유도 모르게 계속 눈물이 나왔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의 멜로디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 앉아 있고 싶다. 어린 시절, 내 방에는 다락방이 있었다. 작고 불투명한 유리창 사이로 부드러운 바닐라 빛 햇살이 들어오는 곳이었다. 나는 좋아하는 책을 들고 다락방에 올라가 읽곤 했다. 먼지가 잔뜩 쌓인, 쓰이지 않고 잊힌 물건 틈에 앉아서. 먼지 냄새가 났고 조용했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게 책에서 읽었던 평화로움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마티아스와 안나는 마지막으로 회색 빛 꼬마 들쥐같이 숲 속 눈길을 달렸어요. 그 해 겨울 중 가장 추운 날이었습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에서 하얀 김이 나왔고 손톱과 발톱은 심하게 갈라졌어요. 안나는 숄로 어깨를 단단히 싸매고 말했어요.
"춥고 배고파. 이렇게 춥고 배고프기는 처음이야."
마티아스와 안나는 추우면 추울수록 순난앵 마을로 자신들을 데려가 줄 빨간 새가 더 빨리 보고 싶었어요. 빨간 새는 늘 같은 장소에 앉아 있었어요. 빨간 새를 본 안나가 반가워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어요.
"마지막이지만 순난앵 마을에 갈 수 있어서 참 좋아."
짧은 겨울 해가 저물고 있었어요. 곧 밤이 올 거예요. 하지만 빨간 새는 활활 타는 횃불처럼 전나무 사이를 날아갔어요. (...) 마침내 마티아스와 안나 앞에 낯익은 문이 보였어요.
"어딘가에 이렇게 오고 싶었던 건 처음이야."
안나가 말했어요.
"이제 다 왔으니까 괜찮아."
마티아스가 대답했어요.
마티아스와 안나는 손을 꼭 잡고 문 안으로 들어갔어요. 항상 봄인 곳, 어린 자작나무 잎사귀에서 그윽한 향기가 나고 수많은 작은 새들이 즐겁게 노래하는 곳. 순난앵 마을.
안나는 빠끔 열린 문 밖에서 느껴지는 추위와 어둠에 몸을 떨었습니다.
"문이 왜 닫혀 있지 않을까?"
안나가 물었어요.
"이 문은 한 번 닫히면 영원히 열리지 않는다고 했잖아."
마티아스가 대답했어요.
"나도 알아. 영원히 열리지 않는다는 걸......."
안나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마티아스와 안나는 오랫동안 서로 바라보다 빙긋 웃었어요.
그리고 살그머니 문을 닫았습니다.
비는 그쳤고, 비슷한 때에 눈물도 멈췄다. 내가 찾아헤매는 것이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가끔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타인의 이해나 공감도 바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 감정을 낱낱이 써버리게 되는데, 별로 아름답지도 유쾌하지도 않아서 쓰고 나면 부끄럽고 지워버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오늘은 가만히 앉아 있겠다. 하나의 멜로디 안에서 왔다갔다 걸어다니는 내 마음을 보면서.
https://www.youtube.com/watch?v=8bneQ26bHX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