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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영 Apr 07. 2020

일상적인 것에서 나오는 극적인 것을 선호해요

배우 이성민

이성민 만큼 완벽하게 소시민의 숨결을 그려내는 배우는 없다. 그의 한숨, 눈물 심지어는 웃음에도 진한 페이소스가 묻어난다. 트레이드마크인 웃음소리 ‘허허허’는 마치 그를 위해 존재하는 의성어 같다. 첩보 영화 ‘공작’(2018)에 이어 스릴러 ‘목격자’(2018)로 관객 몰이에 나선 그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 ‘목격자’(감독 조규장)를 선택한 기준은?

시나리오가 너무 빨리 읽혀서 신기했다. 잘 만들면 익숙하지 않은 어떤 독특한 영화가 나올 것 같았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일상성이다. 너무 일상적이어서 내 취향하고도 잘 맞았다.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상훈’으로서 가장 염두에 둔 것은?

상훈의 입장을 관객들이 이해할까?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목격하고 신고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까? 상훈의 입장을 공감하고 따라와 주어야 이야기가 진행이 된다고 생각했다. 나의 숙제이기도 했지만, 이 영화를 진행하는 모든 사람들의 숙제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앞에 보험설계사라는 직업,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는 상황이라는 설정이 필요했지 싶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설정은 신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고를 하지 않은 첫째 이유는 ‘방관자 효과’다. 극 중의 층이 6층이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얼굴이 보일 정도로 살인현장과 실제로 가깝다. 이미 그 여자는 쓰러져 있고, 범인은 우리 집을 확인하러 오는 것 같고, 나 아니어도 아파트의 누군가는 신고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갈등한다. 보험설계사라서 신고 이후의 복잡한 과정을 빤히 알아서 신고를 안 했을 수도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지켜야 할 가족들 때문이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감독님과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도입부에 술에 취한 상훈이 맛동산과 캔맥주를 들고 우산을 어깨에 메고 가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우산이 어떤 역할을 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전부였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원래는 와이프가 우산이 비싼 거라고 꼭 가져오라고 한다. 차에서 졸다가 뛰어내렸는데 우산을 안 가져왔다. “아, 우산!” 하면서 그 다음 컷에서 헉헉거리면서 우산을 뒤에 메고 편의점에서 나온다. 상훈이라는 캐릭터가 의외의 집요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잃어버린 우산을 끝까지 가서 찾아오고, 다시 안 잃어버리려고 멘 것이다. 편집에서 빠진 장면들이다.     


영화 ‘목격자’ 스틸컷./ 사진제공=NEW

                                        

태호(곽시양 분)의 경우에는 사람을 망치로 찍을 때보다 층을 세는 모습이 더 섬뜩하게 다가왔는데.

솔직한 이야기로 나는 못 느끼는 지점이다. 집사람에게 ‘목격자’ 예고편을 문자로 보냈더니 “어우, 무서워” 하는데 이게 무섭나 싶었다. 개인적으로 호러나 스릴러를 잘 안 보고, 집사람은 굉장히 즐겨 본다. 청소년의 대표라고 생각하는 딸애는 안 무섭지만 아파트에 불 들어오는 장면은 무서웠다고 했다. 이게 무섭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답들이 나온다. 현실에 대입해서 보는 것인가? 사실 살인현장과 가까운 6층은 감독님이 고민해서 고른 층이다. 만약 19층, 20층이면 범인도 세다가 헷갈려서 말 거다. (웃음) 6층이라는 공간이 묘하게 신고를 못하는 층이다.     


개인적으로 ‘목격자’의 가장 무서운 장면은 가족을 앞에 두고 태호와 대치하는 장면이었다.

상훈와 가족과의 거리, 그놈과 가족과의 거리가 차이가 많이 난다. 상훈이 어떤 제스처를 하느냐에 따라 그놈은 가족에게 충분히 무슨 짓을 할 수 있었다.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도 섬찟했다.      


상훈이 부르짖는 에필로그가 인상적이었다. 앞의 상황이 복기되면서 감정의 소용돌이가 있지는 않았는지?

상훈의 입장에서, 죽은 여자의 심정이 되어본 것이다. 그녀가 살해당한 그 자리에서 아파트를 바라보면서 그녀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겪어보는 것이다. 많이 안타까웠다.      


극중 아내로 나온 진경과의 호흡은?

현장에서 굉장히 편했다. 연륜이 있는 배우와  촬영하면, 서로 약속하지 않고 들어가도 빈 공간을 채워가면서 서로 만들어지는 것이 있다. 그런 화학작용이 있었다.      


살인마 태호 역의 곽시양은 어떠했는지?

사실 김성균이 하면 딱인 역할이다. 김성균의 무표정이 대한민국 최고인데 이미 다른 작품에서 했고. 감독님은 몸집이 큰 사람과 마주쳤을 때 느껴지는 압도적인 존재감이라는 측면에서 곽시양을 캐스팅했다. 그래서 시양이는 캐릭터를 위해 살을 더 찌웠다. 평소에도 시양이의 눈빛이 좋았다. 영화배우로서 극적인 눈빛을 가진 배우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이가 어렸다. 천상 아기였다. (웃음)     


배우 이성민./ 사진제공=NEW


같은 스릴러 장르인 ‘방황하는 칼날’(2014)에서는 쫓는 자(형사)였으나 이번에는 쫓기는 자다.

‘방황하는 칼날’은 스릴러보다는 드라마에 가까웠다. 제대로 스릴러다운 영화는 처음인 듯싶다. 쫓기는 역할이다 보니 심리적인 압박도 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장면마다 극단적인 상황이 많아서 연기할 때 소비되는 에너지도 컸다.     


대척점의 태호 같은 살인마 캐릭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는지?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너무 안 어울려서…. 나보다 더 나은 배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만일 내가 태호를 했다면, 좀 더 잔인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한다. 촬영하면서도 계속 감독님에게 태호를 좀 더 잔인하게 묘사해달라고 했다. 그래야 상훈이 두려움을 가지고 신고를 못하는 것이 설득력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간격으로 먼저 개봉한 ‘공작’에서 굉장했다. 카메라가 옆얼굴을 훑는 장면에서는 배우 이성민이 사라지고, 오롯이 극중 역할인 ‘리명운’만 보였다.

배우들 모두 정말 열심히 했다. 고통스러울 만큼. 처음에는 나만 그런 것 같아서 창피하고 그랬는데 다들 그랬다. 심지어는 윤종빈 감독님도. 영화 거의 후반쯤에 감독님 방에서 나는 커피를, 감독님은 맥주를 마실 때였다. 감독님이 “선배님, 저도 무서워요” 하는 거다. 매일 현장에 나갈 때마다 그 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간다면서 감독이라서 차마 티를 못 낼 뿐이라고 했다. 그때 굉장한 동지애를 느꼈다. 배우들끼리 누가 NG를 내면 짜증이 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했다. 쟤도 사람이구나 하면서. 그것에 대한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노소를 불문하고 어떤 여배우와 연기해도 ‘진짜 남편’ 처럼 보인다. 상대역 여배우 입장에서는 굉장한 이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웃음) ‘목격자’에서 부녀회장 역의 황영희도 예전에 드라마에서 나의 부인이었다. 그 드라마의 연출자 결혼식에 갔던 적이 있다. 딸이 초등학생이었는데 데리고 갔다. 거기서 황영희를 만나서 자연스럽게 같은 테이블에서 밥을 먹는데 누가 “따님이신가봐요?” 하고 묻는 거다. 우리를 다 부부로 아는 것이다. (웃음)     


많은 이들에게 소시민의 숨결을 불어넣는 캐릭터로 사랑을 받고 있다.

내 성향이 말이 되는 것을 좋아한다. 평범한 캐릭터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나오는 극적인 것을 선호한다. 관객들에게도 그런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 같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342576

*텐아시아에 실린 인터뷰를 다듬어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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