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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Dec 08. 2021

코라의 도전 실패기

갈 길은 멀지만 깃발이 보이니까

이 글은 제가 2021년에 새로운 도전을 하고, 그 도전의 과정과, 도전의 결과로 실패한 것에 대한 일종의 회고입니다. 멋진 성공이나 대단한 인사이트가 아닌데 이를 기록하고 공유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이유는 두 가지가 있어요.


우선은 이 과정이 저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었기에 또렷하게 기억하고 싶어서 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실패가 좀 부끄럽긴 해도 특별히 감출 일이 아니고, 실패의 레퍼런스조차 누군가 용기를 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예요.



저는 20년간 바이올린 전공자로 연습하고 연마하고 무대에 서는 일상을 살다가, 다양한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다른 길을 찾겠다면서 공연기획자-예술교육가-유통경매회사-경력단절을 거쳐 스타트업 씬으로 넘어왔습니다. (많이 물어보시는데 악기는 팔아서 없음)


지금의 회사 이전에는 O2O 플랫폼 서비스에서 소비자이자 기획자이자 운영자로 3년간 함께했고 (직장으로는 2년 반) 과도기를 모두 포함하더라도 스타트업 이력은 이제 갓 4년 될까말까 해요. 그래서 어디 가면 나이 생략하고 '4년차예요' 라고만 말하기도 합니다, 후후.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데에는 항상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누는 스타트업인들의 문화가 정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제가 용기내서 손을 내밀었을 때 누구도 그 손을 거절하지 않았어요. 저 역시 비록 시행착오 스토리이지만 조금이나마 얻은 것을 나누고 싶습니다.




혼자 묻고 혼자 답하니 좀 머쓱하긴 해도 역시 생각을 편하게 풀어놓기에는 인터뷰 형식이 최고다 싶습니다. 워낙 저 자체가 옆구리 쿡 찌르면 하염없이 얘기 늘어놓는 사람이라서 그런가봐요.


1. 그래서 도대체 무엇에 도전을 했던 거죠?

크게 두 가지인데요, 알고 도전한 것이 하나, 모르고 도전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일단, 알고 도전한 것은 제가 완전히 새로운 분야로 들어갔다는 것이예요. B2B SaaS - 비투비 사스, 라고 말했을 때 여전히 제 주변에는 한 번에 알아듣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저는 태생이 B2C입니다. 온 세상에 가장 흔한 구조, 상품을 만들어 고객에게 파는 일이요. 그 상품이 한때는 공연이었고, 어떨 때는 공산품이기도, 희귀한 앤틱이기도, 온라인 교육이나 비대면 서비스이기도 했지만 개인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파는 일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었어요.


그러니 아는 B2B라 해봤자 B2C 회사들이 큰 단위의 매출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이나 정부를 대상으로 계약을 맺는 방식에서의 경험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제가 어쩌자고 B2B SaaS 회사를 선택했을까요.


그건 바로 '해보지 않은 영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안 해본 일 하겠다고 덤벼드는 저를 주변에서 좀 만류하기는 했습니다. 그 나이 쯤 되었으면 이제껏 해온 일을 더 잘 하는 쪽으로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뭘 또 새로 배우고 성장하겠다고 난리냐고. 제 대답은 이랬습니다 - 늘 했던 일은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다고요.


채널톡 프로덕트가 오퍼레이션을 위한 솔루션인 것도 중요했습니다. 스타트업 4년차에게 사업의 지속 가능성은 운영에서 나온다는 것이 뼛속 깊이 새겨져 있었거든요. 제품의 개선 속도가 빠르다는 것도 한몫 했고요. 2년 전과 지금의 채널톡은 거의 다른 제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잘 모르고 도전한 것은 제가 굉장히 강한 조직문화를 가진 팀에 합류했다는 것입니다. 입사 전 나름 팀빌딩에 대한 자신감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 때로 돌아간다면 나님의 등짝을 후려치면서 말해주고 싶어요. 네가 본 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예요.

 

2. 쉽지 않았겠네요. 굳이 말하면 뭐가 제일 어렵던가요?

늘 활용하던 강점들과 업무 스킬셋이 아무 쓸모가 없어진 기분이 들 때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탈출구를 찾고 싶은데 지도는 없고요 (스타트업에 지도가 어디 있겠어요) 현타 쎄게 와서 일단 나동그라지면 혼자 딛고 일어나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으니까요.


사람들 속에 섞이는 일이나 총대 메고 나서는 것, 빈틈을 메꾸고 뒤에서 서포트하는 데에는 경험치가 제법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래서 채널톡에서도 과거의 여느 보편적인 팀에서 그랬듯이 자연스럽게 사람과 업무를 함께 파악하고 탐색하며 주어진 상황에 맞게 실행해볼 생각이었습니다.


웬걸, 여기는 좀 달랐습니다. 누군가를 뒷받침하거나 함께 달리거나 이끌기 위한 기준이 굉장히 높았어요. 저에게 익숙한 세계관과 업무 습관을 모두 바꾸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제품과 맥락에 대한 이해도 예상보다 훨씬 깊어야 했습니다. 채널톡 DNA 수혈이 필요하다고나 할까요.


문제는 처음에 그러한 필수요건의 범위가 잘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 나름의 시도들이 엉뚱한 방향이었다는 걸 너무 늦지 않게 발견해서 다행이긴 했지만, 간신히 궤도로 돌아오느라 그만큼 리소스가 더 들어갔죠. 허탈함도 자괴감 보따리도 늘어났고요.


컴컴한 풀숲(어쩌면 가시밭길 어쩌면 정글)을 헤메는 사이 무슨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고 무슨 큰 그림이 눈에 들어왔겠어요. 저의 작은 결과물조차 누구의 성에도 차지 않는 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변명할 이유를 찾자면 수백가지이겠지만, 뭘 해도 별로인 건 팩트였어요.


3. 그렇다고 꼭 실패라고 결론 지어야 할까요?

저는 제가 명백하게 두 가지에 있어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조직과의 기대치 조율에 실패했고, 제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어요. 꼬박 6개월의 시간 동안 밤잠 설치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한 것과 별개로 이 두 가지는 잘 되지 않았습니다.


회사는 저를 채용하며 기대하는 바가 있었을 것입니다. 저 또한 보이고 싶었던 모습들이 있었고요. 다만 저와 회사가 같은 단어로 서로 다른 것을 상상했던 것 같아요. 결국 수습 기간을 연장하며 시간을 벌었지만, 아무래도 양쪽의 거리감을 좁히는데 저의 노력이 많이 들 수 밖에 없으니 좀 아쉽긴 했어요.


한편으로는 덕분에 채널톡 방식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는데요, 일단 수동적이다, 에너지 레벨이 낮다, 솔직하지 못하다, 제가 이런 피드백을 계속 받는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대체 어디서부터 단추를 잘못 꿰었을까 마음도 상했고, 서운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제 마음을 리더, 매니저, 동료들과 같이 얘기했습니다. 제가 만든 자리는 아니었고 저를 채널톡 커뮤니케이션으로 초대하는 리더들과의 대화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저에게 진심을 보였고, '모든 것을 즉시 정확하게 공유한다'는 의미를 아주 가깝게 실감했습니다.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4. 왜 실패했을까요? 다들 정말 노력한 것 같은데.

앞선 얘기의 연장선으로, 적재적시에 적합한 방식의 소통을 하지 못한 것이 실패의 가장 큰 이유라고 봐요. 그렇다고 이 책임을 저 혼자 떠안지는 않는다는 걸 이해하고 있습니다. 솔직한 대화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지고 용기도 많이 생겼어요.


https://brunch.co.kr/@littlechamber/170


채널톡에서의 커뮤니케이션 흐름에 올라타는 것은 꽤 어렵습니다. 대단히 복잡해서가 아니라 해보지 않은 방식이어서 그렇습니다. 감정을 섞지 않고 이슈를 공유하고 피드백을 하는 법, 감정 섞인 반응에서도 필요한 팩트만 걸러내는 것을 다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채널톡에 오래 몸담은 분들에게는 숨쉬듯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저처럼) 평범한 대한민국 조직 생활을 하다가 갓 랜딩한 사람들에게는 외계의 교신처럼 두렵고 낯선 방식입니다. 지금? 언제? 누구에게? 정말 이렇게까지? 6개월이 지난 지금도 한번씩 망설일 때가 있어요.


중요한 건, 제가 웅크리고 있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리더들로부터 받았던 피드백 하나 하나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그 피드백을 듣기 위해 제발로 문을 두드렸던 스스로도 제법 기특하고요. 물론 완전히 적응하려면 아직 더 올라서야죠. 어차피 해보지 않은 것을 하기 위해 채널톡을 왔으니 괜찮습니다, 좋습니다.


5. 그만큼 얻은 것도 있을 듯 해요.

다리찢기가 예전보다 더 잘 돼요! (네?) 맷집이 더 좋아졌다는 얘기예요.


일단 의사소통 하는 데 있어서 '짐작하는 것'만큼 독이 되는 것도 없다는 걸 제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저는 평생 눈치 역량을 키우며 살았어요 - 눈치껏 만들어 대령하고 될 때까지 수정하고. 그게 그다지 올바른 방법이 아니었던 거죠, 최소한 채널톡에서는요. 제가 별달리 뭘 감추는 사람이 아님에도 '알아서 처리'하던 습관을 버리는 것에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최근 들어서야 채널톡 DNA 이식을 받는 기분입니다. 채널톡 유전자를 몸에 새기려면 기존에 5년 10년 빨간색으로 일해왔다 해도 채널톡의 파란색 방식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해요. 제 친구는 웃으며 '채널교'라고 하는데, 좀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다행히 제 강점이 저를 살렸다고 봅니다. 바이올린 하면서 20년간 레슨받고 연습하고 고치고 또 고치던 인내심으로 저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새로운 것과 저의 고유한 것이 단단하게 결합하여 더 나은 무언가로 꽃피게 하는 걸 꼭 만들어보고 싶어요.


6. 왠지 즐거워 보이는 것 같아요, 실패했다면서?!

자신을 부수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희열을 맛보게 합니다. 예를 들면 헬스장에서 웨이트 트레이닝 할 때나, 지긋지긋한 연습실의 시간이 짜릿한 무대로 완성될 때나, 난생 처음 접하는 충격적인 지식이나 해석을 맛볼 때가 그렇고요. 뭐랄까, 마약 같아요.


음악을 그만둔 후 저는 늘 뭔가 굶주려 있었고 더 충족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인정인 줄 알았어요. 너무 일찍 경쟁에 내몰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해지고 칭찬 듣는 맛에 하루하루 살긴 했었는데요, 어느 정도 인정의 그릇이 채워졌는데도 계속 허기가 지더라고요. 그 이유가 어디 있는지 채널톡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의 지경을 넓히는 것에 정말 큰 만족을 느껴요. 


당장의 퍼포먼스가 형편없을지언정 (조직에 죄송합니다) 새로운 것을 만나면 정신없이 빠져듭니다. 그리고 80%의 훈련에 10%의 자신감과 10%의 긴장감이 채워지면 가장 '신선하게' 좋은 결과물이 나옵니다.


생각해보면 바이올린 할 때도 무대에 설 때도 똑같았어요. 올해 초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냈던 책에도 그 이야기를 한 줄 넣었죠. 새로운 레퍼토리를 마음껏 탐구하게 놔두었다면 지금까지도 계속 음악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고.


7. 중요한 건 다음 스텝일텐데,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여기서는 자극이 매일 끊이지 않아서 대체 과거에는 제가 뭘 배웠나 싶거든요. 충격이 있어야 발전이 있고, 발전을 하려면 충격이 있어야 하겠죠? 이번 실패를 통과한 저의 상태는 새로 받은 과제곡을 간신히 완독한 상태와 비슷합니다.


다시 차근차근 해보려고요. 이제 약간 진득하게 연습실에서 구석구석 갈고 닦아야 하는 단계인 셈입니다. 기대치도 조정했고, 피드백도 강펀치도 받을 만큼 받았고, 진단도 받았고 접종이든 치료든 수술이든 필요하면 더 해야 하고요.


충분히 무대에 오를만큼 잘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당분간 채널톡은 제게 계속 새로운 도전과 높은 기대치와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던져줄 것 같아요. 잘 소화해서 채널톡에 맞는 코라(제 닉네임이에요), 그러면서도 저만의 강점을 채널톡에 맞게 발휘하는 리더로 변화하고 성장하고 싶습니다.


더불어서 우리 조직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커질테니, 좀 더 보편적인 방식으로 서로를 아끼고 키우는 문화에 대한 고민도 계속 해보고 싶어요. 한 팀이 되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들을 함께 찾아보면서.




뒤늦은 사춘기라고 부르는 30대 암흑기를 통과하면서 저는 과거보다 좀 더 스스로를 알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자신을 더 이해하기 위해 아낌없이 돈과 시간을 쓰는 편이고요. 아무리 노력해도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라면 결코 무언가를 얻기 어렵다는 깨달음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원하는 것과 견딜 수 없는 것, 왜 그런지 어떨 때 그런지, 그리고 언제 마음이 움직이는지, 어디가 현재의 한계이고 어떻게 이를 확장할 수 있는지, 지칠 때 어떻게 나 자신을 충전할 수 있는지, 멈추기 위해서 그리고 다시 걷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올 한해동안 제게는 정말 많은 옵션들이 주어졌었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곰곰히 돌이켜 보곤 합니다.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이대로 괜찮을까?


나는 지금의 선택을 과연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을 뜻밖에도 '내 선택을 잘못된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애쓴다'고 토로하는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다 찾았습니다. 자신이 어떻게든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믿거나, 심지어 다음에 더 나은 선택을 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그보다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 수정할 수 있는 태도가 건강에 훨씬 더 도움이 됩니다. 어째서 나라는 사람을 실수 따위 할 리 없는 완벽한 존재로 기준을 세워놓고 여기에 못 미칠 때마다 좌절하거나 원망해야 하나요? 물론 같은 잘못을 아무렇게나 저지르겠다는 무책임과는 전혀 다른 말입니다.


저는 아주 오랫동안 '틀리면 안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저와 제 주변을 괴롭혔는데요, 사람이라면 언제나 틀리고, 틀린 걸 또 틀릴 수도 있고, 망가졌을 때 이를 고치면 되고, 다음에 더 잘 수정하면 된다는 삶의 비밀을 받아들인 후로 엄청 많이 자유로워졌습니다.


올해 들어와 저는 새로운 꿈이 생겼습니다. 창업하지 않고, 큰 조직의 임원도 아니면서, 스타트업의 월급쟁이로 워킹맘 라이프를 이어가는 하나의 사례로 남고 싶어요. 일반적인 조직에서는 종종 찾을 수 있지만 스타트업 씬에서는 여전히 발견하기 어려운 워킹맘 동지들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고요.


2021년 하반기의 저는 실패했지만,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2022년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거예요. 그 과정에 함께 격려하며 의지할 더 많은 분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같이 틀리고, 같이 고치고, 같이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옛날 얘기, 회사 얘기, 장래희망 뒤섞인 긴 글 진짜 끗 - 채널교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연락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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