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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Mar 13. 2022

나를 지켜준 5가지 말들

나는 팀으로 일하는 것이 좋다

쉽지 않은 10개월의 여정을 지나오고 있다. 스스로 유연하고 회복탄력성이 좋다고 자부하는 편이지만, 나도 사람이어서 목에 걸린 가시같은 일들은 소화해내는 시간이 필요하고 할퀸 흉터는 아물어야 덜 아프다. 중요한 건 내가 쓰러져 뒹굴었다가 다시 일어나려면, 두 발로 지탱할 바닥도 필요하지만 손으로 붙잡고 몸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받쳐주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돌이켜보면 위태로운 순간마다 누군가 내게 말을 건넸다.


끝이 아닐까 생각했을 때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의 시선을 돌려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말이 내게 들어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본인들은 끝끝내 모를 수도 있지만, 나는 아마도 사회생활을 이어가는 한 또렷하게 기억할 것이다. 정확하게는 그들의 말 덕분에 내 안에서 일어난 화학변화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판을 깔아줄 수 있지만,
문 밖으로 나와 날개를 활짝 펼치는 건 코라가 해야 해요.
그건 아무도 도와줄 수 없어요.


말 그대로 내가 '바닥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생각하던 날이었다. 과거의 조직생활로 미루어 볼 때 내게 긍정적인 선택지는 하나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어떤 이야기에도 동요하지 말자 생각하며 면담 자리에 앉았는데, 뜻밖에도 이 말을 들었다. (물론 긴 대화가 이어진 후의 일이다)


작은 회의실 공간 안에서의 비현실적인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반신반의 했다. 신뢰하고 의지하던 마음을 쉽게 깨뜨리면서 '너 너무 순진했네' 하는 말로 밀쳐내진 경험이 내게는 훨씬 많이 누적되어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 말을 건네던 리더의 눈빛과 마음을 나는 믿고 싶었고 믿기로 했다.


경직되어 있던 내 사고의 빗장을 풀게 해준 건 '응원할게' '잘 할 수 있어' 같은 간편한 말이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고민해보고 같이 애쓰자고 내게 손 내미는 리더의 진솔한 언어였다. 한쪽이 떠안지도 않고 서로 미루지도 않는, 개선을 위한 진짜 노력을 요청받으면서, 비로소 나는 이 팀에 머무르는 이유를 찾았던 것 같다.



기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러지도 않아.
어떤 바라는 기대치가 있기 때문에 더 그렇게 하는 거야.


꽤 중요한 실수를 저질렀던 날. 정말 오래간만에 혈관 속 피가 남김없이 증발하는 기분을 맛보는 순간이 있었다. 실수의 크기가 아니라 상황이 그랬다. 동시에 내 오랜 트라우마가 동작했다. 십대와 이십대의 시간들로부터 패인 흉터는 비슷한 상황을 마주치면 어김없이 욱신거렸다.


내 표정이 어땠는지, 겉모습이나 타이핑하는 손가락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다 말고, 여기 와서 배운 '도움을 청해라, 생각보다 좀 더 빨리 도움을 청해라' 가 떠올라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 동료를 붙들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자초지종을 들은 동료가 어깨를 두드리며 그랬다. 괜찮아, 수정할 수 있는 일이야, 다음을 잘 챙기면 되지. 이어서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믿는 사람에게 더 강하게 말하는 법이야. 놀랍게도 그 순간 누가 내 트라우마를 발로 뻥 찬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말이 진실이었든 아니었든 내게는 상관 없었다.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날선 피드백은 관계의 끝이 아니라 함께 더 잘 해나가기 위해서 필요했다는 관점의 전환이었다. 동료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갑자기 내게 그걸 주고 가버렸다. 아마 그 무렵부터였지, 이 팀은 사람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정말로 실감하기 시작한 것은.



코라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어요?


뜻밖의 동료가 뜻밖의 순간에 고민 한 쪽을 가져왔다. 내가 뭔가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평소 우리 둘이 고민을 나누던 사이도 아니었다. 그런데 동료의 얘기를 들으며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저런 말을 건네다 문득 깨달았다. 아, 어쩌면 나 고비를 잘 넘은 건가봐.


내가 여전히 늪에 반쯤 잠겨있는 동안에는 입만 열면 '맞아, 나도 그래, 진짜 힘들어'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일단 늪에서 빠져나오면 아무리 만신창이 상태에서도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오긴 하는 거다. 누가 도움을 요청하면 '거기 오른쪽 위에 나뭇가지가 있어, 왼쪽 바위로 손을 뻗어봐!' 하고 소리쳐줄 수 있게 되는 거다.


그의 고민 토로에 나는 대충 '살면서 죽을 것 같던 순간들이 내 수용의 폭을 넓혀준 것 같아요'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오래 묵혀둔 원망들과 왠지 기진맥진했던 마음이 함께 스르르 녹는 것을 느꼈다. 동료의 어깨를 토닥이며 나는 오히려 너무 큰 격려를 받고 말았다. 그는 내가 극복했다고 믿고 물어봤고, 그의 믿음이 나를 극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코라는 지치지 않아요?


누구보다 에너지가 넘친다고 생각했던 동료가 어느 날 기운이 다 빠진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생각한 것은 '내가 지치지 않는다고?' 였다. 하긴, 낙담하거나 긴장하거나 또는 흥분하거나 설레였던 적은 있어도 지친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은 맞더라.


물론 나도 나가 떨어질까 염려가 찰랑이던 날들도 있었다. 늦은 시간 현관문 소리에 자다 깬 남편에게 이렇게 팽팽한 긴장이 오래 가다가는 언제 끊어질지 모르겠다고 말했던 밤도 기억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치고 무기력해지고 에너지가 떨어지는 순간은 거의 미미해서 잘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동료가 이 말을 건넸던 날에는 두서없이 횡설수설 했는데, 다른 날 다른 동료와 '막막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답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 에너지는 명확한 목적과 주도적인 선택에 대한 책임, 이 두 가지에 단단히 기대어 있었다. 이 팀에 머무르는 목적이 꽤 뚜렷한 편이기 때문이다.


꽤 긴 방황의 시간을 통과해 지금에 이르렀다. 그래서인지 웬만한 파도와 골짜기를 만날지라도 건너는 기쁨이 있다. 심지어 좋아하는 일을 찾아왔기에, 짧은 기간에 나를 불태워 재로 만들고 싶지 않다. 중요한 가치와 결과물을 꾸준히 이어가려면 균형감은 필수인 것이다.


동료에게 말을 하면서 스스로 좀 깨달음이 있었다. 막상 그에게는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렸을지도 모르는 '내가 여기 있는 목적,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을 정말 좋아하는 마음' 이 두 가지 덕분에 나는 지쳐버리기 보다는 내 상태를 최대한 잘 감지하고 팀에 나누며 균형을 지키려고 노력할 수 있다.



코라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밖에 없어요,
코라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리고 다섯번째는 앞에서도 말했던, 좋아하는 일을 일깨워주는 연장선이기도 하다.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사랑이 어떤 열매를 맺지 않더라도 누군가 이를 알아봐줄 때 얼마나 활짝 필 수 있는지 한번쯤은 겪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나를 비롯해서 우리 팀 많은 멤버들은 회사 덕후다. 팬이다. 우리 프로덕트를 좋아하고 동료들을 좋아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좋아한다. 게다가 나는 뭐 하나 좋아하기 시작하면 동네방네 그 사실을 알린다. 써보니 좋았다, 먹어보니 맛있다, 가보니 최고다, 너도 해봐, 너도 써봐, 같이 가자...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은 걸 경험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서다.


그런 성향의 나에게 채널톡은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입사한지 한달 쯤 되었을 때는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다 해도 된다'는 말을 들었고, 10개월차인 지금까지 리더들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일이 없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이 튀어나오고, 주위에 온통 (주먹쥐고) 좋아요, 한번 해봅시다! 하는 사람들 뿐이다.


솔직히, 처음 합류해서 몇달간은 나 답지 않게 진짜 조용히 있었다. 팀 사람들에 비해서 나는 너무 쪼쪼쪼렙 쭈굴이 같아서. 그런데 어느 날부터 동료들이 대신 말해준다, 코라 정말 채널톡 좋아하잖아요. 신기하게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 사랑하기 잘했다' 라는 마음이 드는 걸 어쩌면 좋지.


누군가는 싫어서 학을 떼고 떠나고 누군가는 좋아서 홀딱 사랑에 빠지는, 호불호가 선명한 채널톡 라이프에 콩깍지가 벗겨지려면 한참 멀었다. 내가 나를 아는데 애정에 금 가는 건 99% 사람 때문이거든. 아직까지는 '속 끓게 만드는 사람'보다 '산사태처럼 밀려드는 일'이 더 중요하고 매력적이다. 다른 건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충분히 좋다.


회사 밖 친구들은 처음에 나를 나쁜 남자와의 연애에 빠진 눈 먼 여자 정도로 치부하더니, 지금은 채널교 부흥회를 담당하는 안수집사 정도로 취급한다. 아무려면 어때, 내가 원하는 일이고 진심으로 좋으면 됐지.




인스타그램에 매주 기록하고 있는, 일하며 배운 것들


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때로부터 맺음하고 발행하기까지 무려 두 달은 걸린 것 같다. 그 사이 일상은 여전히 다이나믹했고 내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졌다. 우리는 조금 더 발전했고, 그 과정에서 조금 더 성장했다. 우리 조직의 모든 이들이 나처럼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 광활한 온라인 세상 어딘가에 지금의 나를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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