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채널톡의 피드 포워드
작년 하반기에 대한 전사적인 평가와 피드백 기간이 끝나고, 나의 결과물을 드디어 받아보았다.
사실 이 '전사리뷰'라고 부르는 일련의 성과평가와 피드백이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질까 상상이 잘 되지 않았는데, 피드백 리포트라고 해야하나, 읽어보면서 혼자 (또!) 폭풍 감동이 밀려왔다.
이 감정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두고 싶다. 며칠 또 현실을 살다 보면 최초의 감상은 아무래도 좀 깎여나갈테니까.
뒷통수 치는 얘기가 하나도 없다. 대부분 주기적으로 동료들과 또는 매니저와 상의해왔던 내용들이고, 나 스스로도 이미 충분히 납득하는 단계에 와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평가와 피드백은 대부분 반기 아니면 연간으로 한두 번 간신히 하는 일이었다. 주된 내용은 해결 안되는 현업이나 팀내 사람 문제로 하소연이 끝나지 않던지, 아니면 평소 못마땅했던 부분에 대한 지적과 반성의 점철.
면담이 있는 날은 위아래로 뜻밖의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서면 평가는 평소 마음에 담아두었던 걸 익명성에 의존해서 리더와 동료와 후배에게 남기는 타이밍이었다. 결과에 대한 당황스러움은 당연히 혼자 삭혀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내가 이번에 받은 피드백 리포트에서는 충격도, 당황도, 무안함이나 민망함도 없었다. 칭찬만 있었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그만큼 우리가 특별히 찌꺼기 남기지 않고 최선을 다해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상기했다. 아쉬움과 격려로 가득한 문장들이 너무 좋아서, 열두 번 쯤 읽고, 읽다 잠이 들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 생각보다 동료들은 나를 더 좋게 봐주고 있다는 사실이 자명했다. 나름 십수 년의 습관들을 털어내면서 여기까지 왔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칭찬하려면 의지를 가져야 하는데, 동료들은 나보다 더 나의 노력을 제대로 봐주고 있었다.
막상 나는 어느정도 포기한 부분들을 나보다 더 안타까워하고, 내가 가려는 방향에 도움을 주고 싶어 고민하는 동료들의 리뷰를 읽으며, 나는 그들을 그만큼 사랑하고 아끼고 그들을 위해 고민하는가 싶어 많이 부끄러워졌다. 안 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내가 기울인다고 기울인 관심이 동료들의 마음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것 아니었나 싶은 거다.
문득 스치는 생각은, 이거 HR에서 다 워싱해주셨을까? 그렇다면 그 정성도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워싱을 하더라도 없는 이야기를 덧붙일 수는 없는 건데, 내 동료들 정말 감사하다. 어떻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을까. 내가 더 잘해야겠다, 내가 더 잘하고 말 그대로 더 잘 섬기고 돕고 지원해야겠다.
아무도 나를 노친네 취급하지 않아서 정말 좋았다! 헤헷. 사실 젊다 못해 어린 업계에 나처럼 늦게 건너오는 사람들은 둘 중 하나일 거다 - 이렇게 경험도 없는 것들이, 하면서 권위 부리거나, 아 나는 왜 이것도 안되지, 하며 움츠러들거나.
나는 다행히 정체를 숨기고 사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인 듯 싶다. 하나는 무분별하게 선 넘는 위계가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조직의 특성 (아메리칸 스타일 사랑해요) 덕분,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몇년 전 총체적으로 나 자신을 해체하고 완전히 재조립하는 과정의 경험 덕분.
나이도 연차도 경력도 새로운 배움 앞에서는 전혀 내세울 것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내가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될 뿐. 어떤 위기의 순간에 내공이 발휘되면 그 자체로 좋은 것이지만, 그 뿐이고 일상은 늘 가볍게 살아야 하는 법. 최선을 다해 과거의 찌꺼기를 버리고 낮추려는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동료들이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고마웠다.
이번 결과 리포트를 읽으면서, 본받고 싶은 리더 한 명을 만나기가 참 쉽지 않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런 리더 옆에 공감하고 따르는 구성원들이 모이기도 쉽지 않고, 리더의 DNA를 구성원들이 잘 이어받기는 더더욱 (마음처럼) 쉽진 않다.
나는 운이 좋아서, 그렇게 좋은 리더들 곁에 모인 좋은 구성원들에게 진심의 DNA가 어떻게 전파되고 있는지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훌륭한 개개인이 모여, 모두가 조금씩 부족하기에 팀을 이루어 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자며 애쓰는 과정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중이다.
이제 곧 개별 면담들로 이어지겠지. 그 때는 또 어떻게 신선하게 나를 깨뜨리는 순간이 다가올까,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