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간신히 좀 알 것 같아요, 제대로 일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누가 그랬다. 큰 기업에서는 층층시하 윗사람들 중에 온갖 인간군상도 많고 좋든 싫든 순서가 되면 특정 업무와 관리 역할이 주어지고 끊임없이 조직에서 다양한 교육을 하기 때문에, 개별 구성원이 각자 탁월한 무엇은 딱히 없더라도 주어지는 책임대로 웬만큼 수행할 수 있게 된다고.
반면에 나는 (그 분의 표현에 따르면) 기획사, 사업단, 자영업, 스타트업 등 소위 '체계라는 게 있을 수 없는 아사리판'을 전전했다. 생존 방법과 문제 해결력은 그냥 부딪히며 키웠다. 존경하는 분들은 많지만, 누군가를 롤모델이나 멘토 삼아 스킬이나 가치관을 물려받았다 할 수는 없다. 밀려드는 일들은 사지를 찢어 막아내고 제한된 리소스로 꾸역꾸역 뭔가 완성하면서 존재의 보람을 느꼈다.
고비를 넘을 때마다 한숨 돌리며 중얼거렸다, "다음 파도 어디 올테면 와 봐."
그리고 작년 오늘, 채널톡에 입사했다.
1년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진짜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과거에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하반기를 마무리하며 그 단상을 한번 기록했었고, 그로부터 또 반 년이 더 지나 한 해를 돌아보니 골다공증 걸린 뼈대 같던 내 빈틈을 이제야 메꾸고 있구나 싶다.
채널톡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3가지는 놀랍게도 (1)제대로 보고/공유하는 법 (2)제대로 문제/목표를 정의하는 법 (3)제대로 실행하고 이를 가시화 하는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덤으로 회고하는 습관도 따라왔다. 말하자면 나는 일하는 방법을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는 뜻이다.
살아내기 위해 마구잡이로 칼질을 해온 사람에게 훈련과 기술이 들어가면 몹시 고통스럽다. 때론 룰 없이 닥치는 대로 휘두르던 때가 더 적중률이 높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바닥을 구르며 붙은 맷집에 고도의 체계와 구조화가 더해진다면 그때는 정말로 어떤 경지에 다다르겠지, 내심 기대도 된다.
아, 기대하는 마음은 거창한 득도나 인류의 발전과는 무관하다! 그저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방향으로의 성장이 확실할 뿐. 지금은 그거면 됐지, 그렇게 얻은 내공으로 내가 인생 다음 챕터에 무엇을 써나갈지는 미래의 그 때가 되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대략 1-2주 후면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도전의 타이밍이 다가온다. 잘 준비하고 싶어서 1년 전 입사 전후의 단상과 매월 기록했던 메모들을 열어보았다. 왜 내가 여러 기회들 중에서 채널톡을 선택했는지, 고군분투 하면서도 어떻게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여기서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되새기면서.
지난 회사를 퇴사하면서 단단히 붙잡은 한 가지가 있다.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비즈니스의 지속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것은 운영이라는 믿음이었다. 운영이 제품과 서비스를 리드하며 일하는 세상에 기여하고 싶었고, 그래서 애초에 운영의 가치를 이해하는 팀을 만나길 바랬고, 그래서 여기에 왔다. 모두가 전진하고 있는 이 팀에서 나도 작은 전진을 꼭 만들어내고 싶다.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고민은 내 업무 뿐 아니라 팀과 일상과 삶 전체에 계속 이어지겠지. 부디 또 6개월 쯤 지나 이 글을 본문에 링크하면서 "그 후에 얻은 레슨런, 그리고 성장" 뭐 이런 제목의 포스팅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