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관리자로 일하는 법을 새로 배우다
출근이라는 것을 처음 시작한 후 어느새 16년. 그 사이 나는 분야를 (아마도) 다섯 번 옮겼고 직무는 (아마도) 열 번 정도 바꾸었다. 경계가 애매하여 통합해버린 영역들도 있는데, 주로 작은 조직에서 일해서 그렇다. 회사 규모 자체가 작았던 때도 있었고, 위계상 큰 조직에 속해 있더라도 종종 '프로젝트성' 팀으로 작고 독립적으로 움직인 때가 더 많았다.
16년간 다양한 모퉁이에서 이런 저런 풍파를 겪어내며 유연함과 인내와 문제 돌파력 만큼은 어느 정도 갖추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웬만한 상황에 내던져진다 한들 솔직히 엉망진창이 되는 일은 드물다. 어떻게든 봉합할 방법을 찾거나 임시방편을 구하거나 나를 통째로 밀어넣어서라도 무언가 멈추지 않고 돌아가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얻지 못한 건 뭘까? 16년간 한 조직에 꾸준히 머물렀다면 무엇을 다르게 배울 수 있었을까? 요즘 들어 한번씩 떠오르는 질문이다. 몸담고 있는 스타트업 씬에서는 '전통적인 스타일, 대기업 스타일' 이라며 가끔 약간의 폄하를 가미해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만큼의 규모와 리소스를 갖추었으므로 가능한 체계와 교육이 분명히 존재한다.
나에게 자꾸만 이런 생각을 더한 곳은 뜻밖에도 팀 채널톡이다. 합류한지 갓 1년 정도 되었을 뿐이지만 지난 15년보다 훨씬 더 많은 고민들을 머릿속에 이고 지고 다녔다. 특히 팀과 매니징과 리더십에 대해. '어떻게든 되게 하는' 식으로 골격 없이 일할 때는 사실 난감하긴 해도 닥치는 대로 해치우면서 더 편하기도 했었으니까. 채널톡 덕분에 또 자라고, 덕분에 몹시 힘들었다.
채널톡에서 지난 6개월간 정말 내 뼈에 새겨준 매니저의 역할은 3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1. 팀을 예측 가능한 공동체로 만드는 것
2. 멤버 각자가 태스크를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달성하도록 돕는 것
3. 각 멤버의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하여 효과적으로 돕거나 단호하게 이별을 말하는 것
이 중에 한 가지도 쉬운 것이 없다. 일부는 내가 직접 경험했고 일부는 매니저와 리더들에게서 보고 들은 것이며 내가 구성원으로 직접 겪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1. 팀을 예측 가능한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경영진과 기대치를 조율하여 우리팀이 존재하는 목적을 세우고,이 목적을 드러내는 뚜렷하고 수치화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목표들을 달성하면 우리가 목적에 제대로 부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팀 멤버들에게 전파하고 목표 달성까지 필요한 실행 과제들을 함께 개발하거나 끌어낸다. 그리고 끊임없이 현재의 지점을 공유하면서 우리가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마치 네비게이션처럼.
그러다 보니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매일 해야하는 루틴한 일들도,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타 팀과의 협업도, 구성원들의 에너지 레벨이나 컨디션도, 아직 다가오지 않은 우리의 성과나 실패도 모두 정량화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의 데이터가 누적되어야 우리의 평균 퍼포먼스를 알 수 있을까? 어떤 지표를 기준으로 삼아야 글자(리포트)만으로도 명확한 소통이 가능해질까? 그리고 계속 계속 점검한다. 목표는 목적에 부합하는가, 실행과제는 목표를 달성하도록 만드는가, 과제 완수를 위한 최선의 방법인가.
2. 멤버 각자가 태스크를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달성하도록 돕기 위해
서로 깊이 이해하고 수시로 공유하는 습관을 꼭 만들어야 한다. 처음에는 현황을 점검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반복될수록 잦아질수록 한 번의 체크업(check-up)에 들어가는 시간은 줄어든다. 정밀 종합검진 한 번 하는 데에는 반나절이 걸리지만, 매월 혹은 매주 가는 관리실에서는 '지난 번과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만 정확하게 얘기하면 되는 것과 같다.
멤버들은 각자의 강점을 활용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각 프로젝트는 팀의 목표와 결을 같이하는 것이 필수다. 또한 우리 모두 불완전한 사람이기에 언제든 서로 도울 수 있도록 정보가 막힘없이 흘러야 하고,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은 방해 요소들은 적극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효과를 위해 비효율을 장려하는 것도, 효율 따지다가 효과가 감소하는 것도 모두 좋지 않다. 개인과 팀이 조금씩 전진하고 있음을 멤버 당사자, 매니저, 그리고 리더까지 모두 알 수 있어야 한다.
3. 각 멤버의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하여 효과적으로 돕거나 단호하게 이별을 말하기 위해
생각보다 강도 높은 '연습'이 필요하다. 매니저에게 요구되는 두 가지 영역 즉 태스크 매니징(task managing)과 피플 매니징(people managing) 중 압도적으로 피플 매니징의 난이도가 높다. 잘 된 피플 매니징은 잘 된 태스크 매니징을 포함하고 있기 마련이며 (피플 매니징이 잘 되고 있는데 업무 성과가 나지 않는 것이 말이 안 되니까, 하핫) 팀의 인원 구성을 결정하는 권한과 책임을 함께 가지기 때문이다.
촘촘한 채용을 거치면 정말 온보딩 리스크가 줄어들까? 오래 함께하던 구성원이 이탈하는 이유는 뭘까? 어떻게 감지해야(했어야) 하고 어떤 처방이 적합할까? 조직 입장에서는 내부 고객(직원)과 외부 고객(소비자)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퍼널을 파고들고 리텐션을 높이는 무수한 분석과 시도가 지속되어야 한다. 내부 고객이 더 어려운 이유는 좋은 이별에 대한 노력도 포함되어서가 아닐까. 온보딩, 리텐션, 이별을 잘 만들어내는 진단(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매니저의 핵심 업무인 것이다.
다른 회사가 내가 과거에 지나온 조직들처럼 (닥치는 대로) 일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고 큰 기업들은 얼마나 체계적으로 중간관리자를 육성하는지도 경험한 적은 없다. 다만 상대적으로 작은 조직에서 어느 날 매니저가 되었을 때, 높은 확률로 딱히 보고 배울 사수는 없고 대표님이나 경영진이 내 윗선의 전부일 때, 여기 나의 기록이 작은 기준을 잡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이상, 15년간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팀장 타이틀만도 최소 9년은 달고 있었지만 채널톡에서 일하는 방법을 하나씩 새로 배우고 있는 코라의 매니저 트라이얼 후기 끝. 이 글은 (뜬금) 저에게 원온원 시간을 할애해준 우리팀 모든 리더들에게 바칩니다. 다들 어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