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씨 Nov 11. 2019

김팀장의 마음 (영화 82년생 김지영)

김지영과 조금 비슷한 80년생 마음씨의 기억 조각들

영화의 오프닝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한 장면도 빼놓지 않고 공감했다. 나와, 나의 친구들과, 나의 선후배들이 지금도 매일매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순도 200%의 현실로 경험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제목 덕분에 '마치 객관적인 시각인양' 영화나 책 속에 등장하는 상황들을 '옛날'로 치부하는 반응도 여럿 만났다. 하지만 그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82년생 김지영이 보여주는 장면들은 아주 흔하고 보편적이며 잘 감춰져 있는, 지금에 존재하는 엄연한 현실이다.


영화 시작부터 김지영의 숨막히는 일상에 퐁당 빠져 있던 나를 갑자기 과거의 어떤 시점으로 확 끌어당긴 것은 다름 아닌 '양이사'와 '김팀장'의 팽팽한 대화 장면이었다. 출근하는 과일가게 따님 옆으로 사회 초년생 김지영이 스쳐 걸어갈 때만 해도 '아, 나에게도 저런 때가...' 하며 감상에 젖어 있었는데, 회의실 상석에 앉은 양이사가 '박태환이 어때? ...비싸겠지? 하하하' 하는 반말 짓거리와 코러스 같은 직원들의 웃음 장면을 보며 갑자기 익숙한 감각이 밀려들었다. 아주 진저리나는 불쾌한 감각이.


팀 전체를 향해 반말을 거리낌없이 쓰는 양이사, 워킹맘인 김팀장을 향해 (염려를 가장한) 악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는 양이사, 좋게 받아치는 김팀장에게 무서워서 말을 못하겠다고 낄낄거리는 양이사, 옆에서 양이사 눈치를 보는 직원들, 끼어들어 고나리질 하려는 어느 남자 팀원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존중을 생각하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제 회의 시작하셔야죠?' 하며 판을 엎지도, 울며 숨지도 않고 사람들을 업무 영역으로 환기시키는 김팀장. 나는 그녀의 마음 속 피눈물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경계를 지키며 살아남기까지 그녀는 얼마나 속으로 쓴 마음들을 삼키며 치열하게 견뎌야 했을까? 


82년생 김지영 영화 장면 중에서, 유튜브 영상 캡쳐


그런 상황을 순진한 눈으로 지켜보던 김지영이 '저도 잘할 수 있어요, 팀장님처럼' 이라고 말했을 때, 김팀장의 마음에는 어떤 서늘함이 있었을까. 기획팀 배치가 되지 않아 서운해하는 김지영에게 '장기적 팀 구성에 여성 직원들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하면서, 김팀장 스스로 가슴 속에 고여드는 자괴감은 어찌했을까. (과연 그 자괴감을 흘려보낼 여력이나 있었을까) 


문제와 잘못은 김팀장의 것도 김지영의 것도 아닌데 상처받거나 감내하는 것은 결국 그 두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김팀장이다. '지영씨 잘못이 아니에요'라는 상담사의 말조차 가 닿지 않는 낭떠러지에서 간신히 줄타기를 하고 있었을 김팀장이다. 그녀는 차마 그 절망적인 진실을 김지영에게 설명할 수도, 그렇다고 그 길로 김지영을 끌어들일 수도 없었을 것이다.


82년생 김지영 영화 장면 중에서, 유튜브 영상 캡쳐


영화의 중반쯤 김팀장이 회사를 나와 자신의 사업을 시작한다는 낯익은 이야기에 나의 선배들을 떠올렸다. 규모가 큰 조직에서 한참 허리와 척추를 맡고 있을 법한 그녀들은 잠시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어느 틈에 개인사업자로 변모하여 되돌아왔다. 그 때는 그 과감한 선택이 새로운 야망 표출과 영역 확장에의 용감한 도전으로 보여 내심 질투와 부러움이 뒤섞인 감정을 가지곤 했었다. 그녀들이 삶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 포기할 수도 없고 몰입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환경을 최적화시키고자 안간힘을 쓴 결과였다는 사실을... 나는 아주 오랜 후에서야 알게 되었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나? 되물어본다. 10년 전 내가 만났던 아재들은 여전히 단단한 울타리 안에서 여전한 모습으로 일터와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단 한 명도 승승장구 대로에서 고꾸라졌거나 모습을 감췄다는 소문은 들은 바 없다. 오히려 아름다운 승진과 멋진 정년 퇴임 소식이 전해질 뿐이다. 가끔 뉴스 기사에서 이름도 보이고 다른 이들의 온라인 포스팅에서 존경과 찬사가 담긴 수식어가 그들의 지난 시간을 장식할 뿐이다. 순간 솟구치는 나의 사소한 분노 따위는 어차피 그들의 인생에 먼지 한 톨 만큼의 영향도 미치지 않는, 과거의 어떤 순간에 속한 것일 뿐이다. 


반면 '살아남은' 언니들은 고유한 모습을 많이 잃거나, 감추거나, 지우고 살아가는 데 더 능숙해졌다. 스스로 무엇이 자신의 모습인지 분별하기 힘들어하기도 하고, 몸에 맞지 않는 가구를 평생 사용하다 마디 마디가 병드는 사람처럼 겉은 멀쩡한데 마음의 여기저기가 아프기도 하다. 그럼에도 어렴풋이 보이는 작은 변화는, 차츰 "나도 그랬는데 당연히 너도 그래야지" 보다 "나는 비록 그랬지만 너는 그러지 마라" 가 조금씩 늘고 있다는 것이겠지. 나 역시 점점 더 '언니'가 되어갈텐데, 다음 세대 여성들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지금의 내 선택이 뒤에 올 여성들에게 어떤 갈림길을 만들어주게 될까. 영화에서 김팀장이 등장하는 장면마다 내내 마음이 복잡하였다. 


덧.

여전히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대체 왜 사회에서 만난 사람에게 아무렇게나 반말을 쓰는 것일까? 언어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 정말 가까이하기 힘들다.


이미지 출처 : 유튜브 영상 캡쳐 https://youtu.be/oGe-AoeoZ7Y

매거진의 이전글 82년생 김지영 두번 본 기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