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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Nov 18. 2019

그 앞치마! (영화 82년생 김지영)

김지영과 조금 비슷한 80년생 마음씨의 기억 조각들

많은 분들이 실제로 영화관에 앉아서도 신음과 탄성(=기쁨의 감탄 아니라 한탄, 탄식, 기가 참, 기타등등의 감정)을 내뱉었던 찰나였는데 예고편이나 각종 스포일러 콘텐츠에서 찾아내기 참 어려웠던 장면이 있었으니...


바로,

'앞치마' 순간이다.


출처 : 스타뉴스


웹툰 '며느라기'의 한 장면으로도 나왔던, 수없이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연출되었던,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서도 숨쉬듯 등장하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시댁에서 잠든 다음날 새벽, 바깥 소리에 잠이 깬 며느리가 방 밖으로 서둘러 나가보면 깜깜한 주방에서 시어머니가 홀로 부지런히 무엇인가 하고 있다. '더 자지, 왜 나왔냐' 는 시어머니의 물음과 '다 잤어요' 하는 며느리의 대답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짝궁.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무심한 듯 건네주는 일감.


https://www.instagram.com/p/BZtPNtlgv6I

https://www.instagram.com/p/BZvl_JrgYoy


그런데 영화는 여기에 '진짜'를 하나 더 가미하고 있다. '내가 너 줄 거 있다'며 시어머니가 은행 사은품으로 나온 방수 꽃무늬 치마를 건넸을 때, 며느리는 그걸 펼쳐 자신의 몸에 가져다 대며 말한다, "너무 예뻐요."


그 순간 나는 사실 며느리 김지영에게 감정이입 되었다기 보다, 배우 정유미에게 진심으로 감탄해 '아아' 소리가 튀어나왔다. 노곤한 새벽 시어머니의 의외의 선물을 받아들며 불안과 기대가 뒤섞인 눈빛, 그녀의 취향이 아닐 게 뻔한 꽃무늬 방수 '사은품' 앞치마를 마치 진심으로 좋아하는 듯 말하는 '어색한' 자연스러움 - 어쩔 줄 모르겠는 찰나의 망설임까지 어떻게 그렇게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지난 삶에서 '앞치마 순간'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기득권자였음이 틀림이 없다.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상대방이 혹시 '앞치마 순간'을 마주하는 건 아닌지 고민해보지 않았다면 이미 당신은 주변에 '앞치마 순간'을 수없이 선사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을'들과 '약자'들에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앞치마 순간들이 생긴다. 가족 안에서, 직장에서,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학창 시절의 공동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내 기억 속에도 수없이 많은 앞치마 순간들이 존재한다. 


남자친구가 선물이라고 건넨 상자 속에 내가 절대로 하지 않을 크기와 모양의 목걸이가 들어 있던 귀여운 때를 포함해서, 전혀 좋아하지 않는 음식도 맛있다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싹싹 비워내던 자리들, 단지 '예쁘다', '좋다', '멋있다' 하는 배경음악을 내기 위해 동원되었던 시간들, 얼마나 많은 순간 원치 않는 '혜택'과 '배려'와 '선물'을 받으며 '취향'을 강요당했던가. 나의 경우는 원가정보다 집 밖에서 혹독하게 이를 겪으며 '인생 공부' 제대로 했다. 어떤 경우에도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뼈저린 가르침을 얻었지, 이건 너무 긴 이야기니까 나중에.


82년생 김지영 제작 비하인드 캡쳐, 출처 유튜브 영상


영화에서 앞치마 순간이 인상적인 다른 이유는 시어머니 역시 같은 사은품 앞치마를 두르고 일하는 장면 때문이었다. 윗세대 분들은 악의로 아랫세대를 괴롭히려고 무언가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진심으로 그 방식이 유용하고 쓸모있으며 효과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권유와 추천이라는 이름으로) 주입하는 것이다. 덕분에 아랫세대는 '모두가 그렇게 살고' '대부분 그렇게 참으며' 그런 '참음'이 지혜와 덕목이라는 메시지를 늘 받는다. 셀 수 없이 많은 관습과 침묵의 강요들과 함께.


영화를 봤다던 누군가 그랬다. 어머니 세대들이 겪었을 고초야말로 말로 다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정말 세상 좋아지지 않았느냐, 라고. 그렇다면 좋아진 세상에 감지덕지하며 적당히 만족하고 조용히 순응하여 살면 되는가. 70년생 김나정도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고 58년생 김정순도 힘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92년생 김지아도 고생하는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이 세상을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게 맞지 않을까? 내가 너보다 더 고생을 했지만 그럭저럭 살고 있으니 너도 그만 침묵하라는 억압은 단 1센티미터도 우리를 더 나은 세상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다시 되새겨본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얻게 하는 것이 배려이고 애정이다. 수용하는 것은 동의 혹은 절대적 공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게 좋다고 해서 누가 봐도 좋은 것은 아니다.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똑같이 적용해야 하는, 동등한 인격체 간의 기본 규칙이지. 다음 번에 마주하게 될 앞치마 순간에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감사히 쓸게요"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용기를 내보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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