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란다에서 일했던 기록 - 짧고 늦은 육아휴직에 대하여
작가의 서재에 이 글을 묻어둔지 한 달도 더 지났다. 서두만 읽어도 처음 휴직을 결정하던 시절의 내 마음은 참으로 촉촉했구나 싶다. 휴직의 첫 날을 마무리하며, 이 글도 어서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싶어 접어두었던 노트를 펼치는 기분으로 꺼내들었다. 다시 읽어도 그 때는 상냥했고, 지금은 그러지 않는 내 마음이 느껴져 따끔따끔하구나.
동료들에게만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에게도 너무나 의외의 결론이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생각해낸 나 스스로가 몹시도 기특하였다. 더불어 약 10년 전, 5년 전, 몸과 마음이 재와 같이 부스러지던 시절이 떠올라 조금 울컥하기도 했다.
그렇다. 나는 올해 갓 9살(한국나이)이 된 아이 한 명을 두고 있는 직장인 엄마이며 맞벌이 부모다. 출산 당시 휴직은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던 아득한 기억을 뒤로 하고, 올해 마지막 육아휴직 신청의 기회를 흘려보내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하는 일을 완전히 그만둘 생각은 아니어서, 회사와 타협하고 딱 '휴식' 만큼 쉬기로 했다.
앞뒤 생각하지 말고 다 긁어 쓰라는 지인들의 말에 살짝 흔들린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휴직 기간 끝날 때가 되면 후회하려나? 육아휴직의 유일한 단점은 당사자가 더 놀고 싶어지는 거라는, 아이 병원의 의사 선생님 말씀이 내내 남는다.
본의 아니게 아껴두었던 육아휴직 카드를 이제서야 쓰게 된 이유를 잘 저장해 두고 싶어서 이 글을 시작했다. 다시 없을 휴직을 준비하는 나의 마음도, 휴직 후 현업으로 돌아가는 때의 나의 변화도 (혹은 변하지 않은 모습도) 기록하고 싶어졌다. 줄을 세운 이유들이 사실 뻔하고 흔하기도 한데, 정말로 결심을 도운 것은 분명하다.
당연하게 거론될 최대의 원인이자 이유이자 근거다. 솔직히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와 맡아서 하고 있는 일들은 그간 다사다난한 사회생활 중 가장 나답게 일하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의 특성상, 그리고 애정을 가질수록 자발적으로 나 자신을 갈아넣는 나의 고유한 특성상 번아웃과 빠르게 가까워졌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렸더니, 출근하는 길도 퇴근하는 길도 허무했다. 아,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 싶었다.
특히 내 주된 힘겨움의 원인은 작년 하반기 팀 전환에 있었는데, 어느 하나가 특별한 문제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총체적 난국이 사방으로 나를 에워싸고 있는 느낌이었다. 두려움은 없었지만 숨이 가빴다. 매일 감정이 파도를 쳤다. 에너지 스위치를 꺼버릴까 하다가, 이렇게 놓아버리는 건 아니지 했다가, 밤새 채용 사이트를 뒤졌다가, 이튿날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야근을 했다가... 그랬다. 그렇게 허덕이고 있는데 누구도 나를 토닥여줄 겨를이 없었다. 다들 그만큼의 무게를 지고 '어른'으로 살고 있었으니까. 어리광부릴 형편이 못 되었다. 알고 있었다.
도무지 곁을 돌아볼 틈이 없었다. 호흡을 충분히 하고 살지 못하다 보니 평소 같으면 변화나 충돌을 어렵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멘탈이라고 자부했는데, 정말 작은 부침도 견디기 어려웠다. 내 얼굴에 괴로움이 가득했는지 점점 '오늘 피곤해 보인다'며 인사 건네는 동료들이 늘었고, 급기야 대표님이 '슬퍼 보인다'고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멀쩡한 상태가 아닌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다만 누구도 내게 답을 줄 수는 없었다. 충동적으로 끈을 끊기 전에 잘 살아남을 방법을 찾고 싶었다.
원격근무를 요청해볼까 무급 장기휴가라도 쓸까 하던 차에 우연히 어느 온라인 기사에서 (심지어 육아 관련 내용도 아니었던 것 같다) '만8세'까지의 육아휴직 신청,이라는 문장을 읽게 되었다. 만화의 장면 중 전구가 딱 켜지는 그림처럼 그렇게 육아휴직은 갑작스럽게 나에게 옵션으로 등장했다. 더 나은 대안은 아무리 고민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틈이 필요했고, 오래 일하고 싶었고, 좋은 성과를 내며 성장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시점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멈춤'인 건 분명했다.
앞선 이야기와 양면처럼 붙어있는 마음이랄까. 무슨 일을 겪고 돌아서도 내 의지는 '이 회사에 머물며 서비스를 키우고 나도 성장하고 싶다'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이런 면을 안팎의 사람들 모두 신기하게 여길 지경이었다. 여러 번 이 특수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지금 회사의 생존이 나의 일상과 너무나도 직결된 상태라는 것이다. 월급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우리 아이의 시간의 30% 이상은 우리 서비스로 채워지고 있다. 서비스가 잘 되어야 나의 일상도 아이의 일상도 풍요로워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개선) 주유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나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이를 도와야 한다.
내가 멈추는 순간 엔진이 멈출 것만 같은 긴장감이 늘 나의 24시간 속에 공존했다. 장거리 마라톤은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체력 안배와 집중력의 완급 조절이 중요한 법인데, 이를 위한 상태 파악이 반드시 필요했다. 엄밀히 말하면 도착지까지 얼만큼의 거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단박에 모든 열량을 불태워버리지 않아야 하고, 물을 마시며 수분과 영양도 보충해야 하고, 충전하느라 한 장소에 잠시 머무르는 시간도 꼼꼼히 챙겨서 꾸준하게 뛰어야 결국에는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을 터였다. 내가 스스로 멈추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세우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 밤낮없이 돌다가는 과열로 고장날 것이 뻔했다.
휴직을 앞에 두고 정말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았다. 나는 지금 어떤 어려움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하는가? 정말 (회사) 일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당장 거두어들여 방향을 바꾸어 쏟을 만큼 다른 중요한 일이 있는가? 한 배를 탄 동료들에게 노를 맡기고 잠시 갑판으로 빠져나갈 만큼 나의 배멀미가 긴박한가? 아니면 그저... 본능적으로 휴식을 찾는 현상인가...? 과거에 내가 몇 번 좌절했던 경험들을 근거로 평소에 나의 회피 성향을 신랄하게 질타하곤 하는 동거남(?)의 거센 질문들에도 나는 거리낌이 없었다. 무너지는 균형을 일찍 발견해서 다행이고, 이를 감지한 것은 생존 본능에 가깝다는 것을. 휴식과 균형이 제대로 채워져야 나는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더 오래 달릴 수 있다는 것을.
사실 휴직의 사유를 묻는 이들에게는 위에 길게 쓴 내용보다 이 다음에 내가 늘어놓을 이유들을 훨씬 더 큰 요소로 부각시켜 말했다. 성장이 들쑥날쑥한 우리 망아지, 예민한 엄마와 다이나믹한 아빠 틈에서 자라는 불안정한 새싹답게 일곱 살 여름 복합틱(뚜렛)을 시작했고, ADHD 약을 먹은지도 어느새 일년이 넘어간다. 아이의 충족감 자루는 여전히 조금씩 비어있고, 그 빈 공간을 부모로부터, 아니 엄마로부터 채우고자 하는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이 또한)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그 후에는 아이의 등을 보며, 아이를 어떻게 해야 제대로 날려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에미가 되어야 할 테다. 그 중요한 과도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생각하는' 시간이 절실했다. (이번 휴직은 사실 아이와의 시간을 다 채울만큼 길지도 충분하지도 않다, 애초의 목적이 그게 아니었으니)
그리고 몇 년에 한번 돌아오는 우리 집과 돈 문제가 걸려 있다. 분명 우리는 세 식구가 함께 살고 있지만 집과 돈의 문제는 내가 쉬면 아무도 해결하지 않고 문제가 있으면 내가 해결해야 하는 매우 참신한(?) 구조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고, 이는 주5일 하루12시간 출근하면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게다가 아이를 돌봐주시는 이모님의 아들이 올해 고3인데, 올 한 해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가느냐가 나의 올해와 내년을 또 책임져주지 않겠나. 변수 없이 안전하게 지나려면 내가 물리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 그래야 어떤 빈틈도 메꾸고 어떤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에게 맡기고 싶기도 하지만, 그 누군가는 없다, 그냥 내가 할 일이다.
글을 시작한 시점에는 없었지만 지금은 덧붙이는 작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의외로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견디기 힘든 어떤 상황들이 많다. 특정 개개인을 탓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마음이 쓸리는 나머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거나 냉정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자꾸 특정 개개인을 탓하게 되는 '내 자신'이 위태롭다 느꼈다. 끊어주어야, 굴러떨어지는 나의 감정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장담하건대 몇 달 후 반가운 모습으로 팀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에는 똑같은 일 똑같은 상황도 웃으며 대할 수 있을 것이다.
휴직 D-day 이자 D+1 으로 시작하는 오늘의 소감도 남기고 싶다. 실은 종일 은행과 주민센터만 몇 번을 오가고 카페에 잠시 앉아 끝냈어야 하는 책의 자투리 부분을 읽고 곧 이사갈 집에 필요한 이것 저것을 예약하느라 순식간에 지나간 하루였다. 그래도 카운트 해왔던 것처럼 오늘은 아이의 생일이고, 우리는 아침에 귀여운 촛불 세레모니를, 저녁에 맛있는 외식을 했다. 분명 20개월 동안 전혀 다른 사이클로 살고 있었음에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런 패턴으로 돌아왔다. 조금 편안했던 오늘, 내일은 조금 더 편안해지겠지.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