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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Mar 25. 2020

끊기, 그런데 코로나는 말고...

아이 생일 그리고 짧은 휴직 26일 전의 글.

반가운 분들 몇을 함께 만난 자리에서 올 여름의 계획 이야기가 나왔다. 실은 내 짧은 휴직의 핵심적인 이유이기도 한 '여름방학'과 휴가 계획은 COVID-19의 후유증이 어떻게 남을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현재 시점에서 4-5월 여행을 취소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 것은 당연하다 싶으나, 애매하기 짝이 없는 8월의 여행은 항공권만 예약하고 숙소는 찾다 만, 어정쩡한 상태로 남아 있다. 


이번 여행이 내게 주는 의미는 여러가지이다. 잊을 수 없는 2018년 여름의 시간을 재현하고 싶기도 했고, 평생 살면서 '끊고 간다'는 말을 실천해보지 못했던 나의 최초의 도전이기도 하다. 몸은 멀어도 마음은 여전한 동생네 가족들을 만나고 싶기도 하고 2년 전보다 좀 더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것 같은 아이와 조카의 재회도 기다려진다. 아직도 눈에 선한 공원과 강가와 놀이터와 산책로들, 느릿느릿 움직이면서 그만큼 나의 몸과 마음의 속도를 늦추던 그 때. 


그 때에도 나는 사실 '끊기'에 도전하려 한 것이었지만 정확히 말하면 전혀 성공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꼭 멈춤의 순간을 잘 누리고 싶었는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원래 오래 머무르려던 동네는 안전하고 괜찮을지 몰라도 나의 이십대 추억을 되짚으려던 경유지들은 지금 이미 상황들이 암담하기 때문이다. 아쉬움이 커서 아직 항공권도 일부 예약한 숙소들도 그대로 두고 있지만 5월까지도 달라지지 않으면 결국 취소해야 되겠지. 언제 또 다음 기회가 올 수 있을까?


이번 휴직은 사실 'pause가 필요하다'는 온갖 시그널을 온몸으로 느끼던 나의 절박함이 찾아낸 결과였다. 고민했지만 솔직하게 내 상태를 회사에 전달했고 회사는 그런 나를 비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었다. 누군가에게 '온전하게' 수용되는 경험이 살면서 정말 소중한 것인데, 휴직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나는 회사로부터 그런 경험을 얻었다. 고맙기도 하고 이 시간을 헛되지 않게 보내고 싶은 마음도 컸다. 결정한 김에 미리미리 준비하고 싶어 차근히 전체 여정을 그리고 있었는데, 아이고, 코로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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