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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Mar 26. 2020

나는 달라졌을까?

아이 생일 그리고 짧은 휴직 25일 전의 글.

역시 마감 기한만큼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없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는 요즈음이다. 휴직 날짜를 정하고, 그 날짜 이전에 마쳐야 할 프로젝트들이 명확해지고 나니, 일의 난이도나 분량에 상관없이 에너지가 샘솟고 진도가 팍팍 잘 나간다. 물론 나의 속도가 빨라지는 바람에 바로 다음 단계에서 받으시는 분들이 괴로워하는 사이드 이펙트가 있긴 하지만... 이 또한 다 잘 되자고 함께 애쓰는 과정 아닌가!


오랫동안 나는 내가 규칙을 좋아하고 꼼꼼하고 빈틈없이 채우려는 성향의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삶의 어떤 시기를 겪으면서 (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본래 나의 성향은 소위 말하는 '한량'으로 그저 놀고 먹고 게으르게 살다가 심심할 때쯤 덕질할 무엇인가가 필요한 수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생각보다 내겐 충격적인 깨달음이었다. 그동안 나를 갈고 닦으며 좀 더 '틀림없는' 결과를 내기 위해 쉬지 않고 한 곳만 바라보고 달리던 세월이 허무해지는 기분이었다. 무얼 위해서? 아니, 누굴 위해서?


하지만 허탈한 기간을 조금 지나자 다시 생기가 돌아왔다. 일상이 활력을 되찾은 건 바로 '내가 주도적으로 내린 결정'이라는 확신이 들 때였다. 숨도 못 쉬게 몰아칠 때에도, 남들이 걱정할 만큼 하염없이 느려질 때에도, 그게 내가 원해서 나의 판단으로 내가 책임지고 내린 결정이면 괜찮았다. 그로 인해 뒷수습할 일이 밀려들더라도, 탈진해서 주저앉더라도 원망은 없었다. 이 경험이 조금씩 쌓이면서 나는 비로소 내 어린 시절 - 학창 시절 - 언제나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비난의 화살' 효과가 점차 사라지는 걸 느꼈다.


지금의 조직에서 내가 일하는 모습은 5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필요하면 밤을 새고, 해야 하면 어떻게든 채운다. 하지만 그렇게 움직이는 나의 내면은 150도 달라졌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차마, 180도라고 말할 수 없는 건, 인간은 언제나 빈틈이 있고 오랜 습관은 버리기 어려우니까) 언젠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진 장면들을 조각 조각 뜯어모아 비교표처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는데, 그건 아무래도 휴직 이후의 프로젝트로 잠시 미뤄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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