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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Mar 29. 2020

오랜 고민, 아이와 스마트기기!

아이 생일 그리고 짧은 휴직 22일 전의 글.

제목과 같이 22일 후면 아이가 만 8세가 된다. 그리고 바야흐로 우리 집에도 아동용 디지털 기기 상시 비치 시점이 임박하였다. 아직 '블랙홀'은 열리지도 않았는데 왜인지 후유증이 벌써 나타나는 것 같아, 오늘따라 늦게 잠든 아이의 방문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수많은 유혹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우리 세 식구 사이에서는 '스마트폰은 엄빠의 것'이라는 규칙이 아주 잘 지켜진 편이었다. 애초에 콘텐츠 노출을 고려하기 전 아이가 정말 아기이던 시절부터 남편과 나의 스마트폰을 각각 엄마의 소지품, 아빠의 소지품으로 아이에게 각인시켜 둔 덕을 많이 보았고 (부모=타인의 소지품에 함부로 손을 대는 일은 정말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을 냈었다), 규칙을 정해두면 자신의 충동을 억눌러가며 어떻게든 지키려고 노력하는 아이의 착하고 여린 성품도 큰 기여를 했다. 외출 시에도 엄격한 통제에 잘 수긍하는 편이었고 가방 안에 언제나 놀잇감을 한보따리 들고 다닌 덕에 굳이 식당 등 집 아닌 곳에서 아이에게 영상 콘텐츠를 들이밀 필요도 거의 없었다.


그러다 두 돌 무렵 아이가 독하게 수족구를 앓게 되면서 (통증을 잊게 하는 마취제 격으로) 집에서 큰 화면으로 TV를 보여주기 시작했는데, 이는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리모콘은 엄빠의 것'이라는 룰이 적용되었다. 부모가 없으면 TV 역시 꺼져있는 것이 당연했고, 방법을 알려주거나 자유롭게 만지도록 놔두면 금방 다루는 법을 습득하게 될 것이 자명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아이는 그 때문에 지금도 TV를 보고 싶으면 스스로 켜는게 아니라 부모에게 허락을 구하고 무엇을 볼 것인지 함께 상의하면서 대부분 틀어주는 대로 보는 편이다. 자조능력을 키워주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각종 디지털 기기를 아무렇게나(?) 접근하도록 승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벌써 2년 전부터 또래의 친구들은 하나 둘 키즈폰과 폴더폰이 생겼고, 고급 사양은 아니더라도 아동용, 어학용 태블릿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남들 다 있는데 왜 나만 없느냐'는 아이의 항의를 맞서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사람마다 속도가 다른 법이라고, 집집마다 규칙이 다른 법이라고, 너에게 꼭 필요하다 생각되면 엄빠도 사줄 것이라고, 설명하고 달래는 것도 하루이틀이라 때론 "그럼 그 집에 가서 살던가!" 하는 아주 유치하고 못난 협박으로 대화를 끝맺곤 했다. 아이가 갖고 있는 알러지같은 '틱'과 '생각이 뛰어다니는' 현상에 대한 설명도 덧붙여봤지만, 아침마다 먹는 약과 '친구들 중 나만 스마트폰으로 오락을 하면 안되는' 이유 따위의 상관관계는 아이에게 턱없이 부족한 이유였다. 


이번 학년부터 학교에서도 태블릿을 통한 연습문제 풀이 등 전자기기를 이용한 활동 시간이 부쩍 늘었다. 심심치 않게 주말 선택과제에 '학교에서 하던 앱 문제풀이' 같은 것이 등장했다. 아이도 나를 볼 때마다 '학교에서 했던 그 퀴즈게임'을 하고싶다고 졸랐고 고민 끝에 나는 아이와 '8세 생일'을 약속했다. 사실은 내게 익숙한 기능을 가진 기기로 오디오북과 학교 퀴즈 정도에 활용할 겸 중고 아이패드를 구해두었는데, 다만 어떻게든지 '그' 시기를 미뤄보려고 생일날이 되어야 태블릿이 도착한다는 비겁한 변명을 내세워둔 것이 벌써 두어달 전의 일이었다. 이 와중에 코로나 사태를 맞아 모든 학습과 과제가 말 그대로 HOME-WORK 으로 전환되면서 우리 집의 규칙은 최대 난관에 부딪혔다. 


매력적인 아이패드를 지금 꺼내줄 수는 없고, 그렇다고 한 달이 되어가는 기약없는 방학 기간도 대책이 없어 결국 어제 밤새도록 나는 오래된 아마존 파이어(아마존 전용 태블릿)를 찾아내 오디오북과 무료로 할 수 있는 영어 게임 몇 개, 그리고 Ted-Ed를 깔아 오늘 낮 아이에게 내어주었다. 생일이 되어야 진짜 너의 태블릿이 오는데, 그 전까지 네가 숙제도 해야하고 퀴즈도 하고싶어하니 엄마가 특별히 오래된 기계를 고쳐 쓸 수 있게 만들었다는 말도 안되는 설명과 함께. 아이는 군말 없이 1시간 동안을 신나게 쓰고, 군말 없이 내게 기기를 반납했다. 새로운 규칙은 '하루 1시간' 그리고 반드시 '엄마가 있을 때 쓴다' 였는데, 잠시 생각하던 아이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주말에밖에 안되잖아!" 그렇다, 나는 매일 저녁 아이가 잠들 시간이 다 되어 들어오는 일하는 엄마였다.


내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가 등교를 한 후에 출근할 수 있는 늦은 출근 늦은 퇴근을 하는 직장을 다닌다. 아이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면 등교 전 2시간 이상 충분하게 나와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표이다. 물론 아이는 '아침에는 엄마가 필요 없으니 밤에 자기 전에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하지만... 우리네 삶이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만족스러울 수는 없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내일 아침을 위해 일찍 자야겠다고 방에 들어간 아이는 마치 소풍 전날 설레어 잠 못 이루는 것처럼 평소보다 무척이나 늦게까지 뒤척이고 '잠이 오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다 겨우 겨우 잠이 들었다.


내일 아침 해뜨는 시간이 되면 나는 아마 깊이 갈등할 것이다. 모자란 잠을 충분히 자고 일어나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아이가 원하던 시간에 일부러 깨워 약속한 대로 태블릿을 쥐어줄 것인가.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아이와 나 사이에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나는 이렇게 선택할 수 없는 결정들을 고민하게 되겠지. 어차피 아이의 생체리듬과 아이의 감정이 이 새로운 자극과 규칙 앞에 어떻게 적응하고 진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말이다. 내려놓아야지, 그리고 성의를 가지고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려 애쓰는 아이에게 그저 고마움이나 가지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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