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씨 Apr 01. 2020

동료의 퇴사를 앞두고

아이 생일 그리고 나의 짧은 휴직 19일 전.

앞자리 숫자가 1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오늘은 여러가지로 안간힘을 쓰는 날이었는데, 집에 도착하니 아이가 이미 잠들어 있어서 1차 행복하고, 어제 택배로 받아 열심히 손질해서 꽂아둔 프리지아 꽃 두 다발과 노란 튤립들이 나를 반겨줘 2차 행복하고, 다행히 칭따오 맥주 한 캔이 남아 있어 칙- 따면서 3차 행복하고, 적정 안주를 생각하고 있는데 캔옥수수가 딱이다, 그런데 없다. 사러 나가긴 귀찮고, 할 수 없이 캔옥수수와 캔옥수수를 좋아하는 그녀를 생각하며 그냥 맥주만 마시기로 한다. 아, 아쉽다.


캔옥수수를 좋아하는 그녀는, 처음 만나는 날에도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개인적인 만남이 아니었던 탓에 그녀는 내 존재조차 알 수 없었는데 나는 수십 명의 대중 속에 한 명으로 앉아 빛나는 그녀의 에너지에 완전히 반했다.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나는 내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전달했다. "처음 뵈었을 때부터 생각했어요,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 우리 팀에 합류하시면 어때요?"


전기 불꽃 튀는 것 같은 호응과 공감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그녀는 나와 한 팀이 될 수 있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우리 팀 사람들도 모두 그녀를 환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결국 모두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는 햇살처럼 환하고, 물방울처럼 신선했으며, 애정과 열정이 넘치고 심지어 이해력도 빠르고 업무력도 좋았다. 장담하건대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녀를 질투하거나, 밝은 것을 가만 놔두지 못하는 못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틀리지 않다는 걸 스스로 확신하게 된 최초의 경험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365일을 채 채우지 못하고 팀을 떠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어쨌든 애정을 애정어린 방법으로 전달할 줄 모르는 관계들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그녀가 떠나면서 남겨진 사람들은 모두 조금씩 각자의 입장에서 상처를 받을테다. 그럼에도 내가 '운이 좋다'고 느끼는 것은, 그녀와 멀어질 걱정을 조금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 약간 팀에서 반칙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할까. 우리는 여전히 가까울 것이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서로의 생각들을 나눌 것이다. 나는 남고 그녀는 떠나지만 우리는 계속 같은 팀에 머무를 것이다. 이 신기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불과 5년 전 같았으면 세상 끝날 것처럼 괴로워하거나 불필요하게 애를 쓰며 힘들어했을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물 흐르는 대로' 지나가는 일들의 아름다움을 매일 매일 경험한다. 그녀가 먼저 떠나고, 곧이어 나도 휴직에 들어간다. 바쁘게 굴러가는 인생에 그녀는 마침표 하나를 찍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고, 나는 쉼표 하나를 찍고 문장을 이어갈 것이다. 만나진 것이 감사한 사람, 그녀의 다음 문장, 아니 다음 페이지를 응원한다. 공개적인 글에는 다 담을 수 없는 수많은 사연들과 고마움들은 먹지 못한 캔옥수수와 함께 마음 속에만 간직하겠다. 


추신. 더 늦기 전에 캔옥수수 주문 완료.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나가고 다음 번 함께 여행갈 때는 처음부터 캔옥수수는 짐에 넣어가야지. 어딜 가든 관광지 편의점은 세상 비싸다.


매거진의 이전글 용기와 회고에 대한 짧은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