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란다에서 일했던 기록) 아이 생일 그리고 나의 굵고 짧은 휴직 3일 전
사무실은 오늘 모두 정리하고 나왔다. 회사 출입키와 노트북도 깨끗하게 정리하여 반납하고, 대부분의 협업툴에서도 계정 로그아웃을 모두 마쳤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명의 동료에게 작은 손편지를 건넸고, 당분간 사무실을 떠나서도 백업을 해주고픈 동료들과는 (비밀리에) 단톡방을 열었다. 내가 하던 것처럼 누군가의 '동앗줄'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한 동료에게는 무거운 짐을 맡기고 나왔다. 몇 달 떠나있을 뿐인데 기분은 마치 "엄마 돈 벌어올 동안 잘 지내고 있어" 하는 느낌이다.
당분간 이사 전까지 2주 정도는 빈틈없이 바쁠테다. 평일 낮에 처리하지 못했던 온갖 관공서 일정을 쫓아다녀야 하고, 이사 때마다 낡은 싸구려 가구를 버리고 새로운 싸구려 가구를 사들이던 습관대로 딱 맞춘 날짜에 마음에 드는 가구가 도착하도록 쇼핑도 해야 하고, 한달 반을 방치했던 아이의 온라인 과제도 메꾸어야 하고 그 와중에 같은 시기에 퇴사한 햇살같은 그녀의 가족과 마음의 고향으로 바람쐬러도 다녀와야 한다. 딱 일주일 사이에 이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나면, 드디어 이사를 한다.
이사 후 휴일과 주말이 연달아 다가오니 그 때는 집안 정리를 해야겠지. 내 살림이어도 내가 손대지 못하고 남의 집처럼 살았던 시간이 어느새 일년 반이 넘었다. 그런 나의 관심의 정도가 고스란히 반영이 되어 이 집은 (정말 좋은 위치에 간편한 시설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남의 집 같았다. 퇴근하여 집에 들어오면 관광을 끝내고 돌아온 장기투숙 중인 에어비앤비에 몸을 뉘이는 기분이랄까. 새로 이사가는 집은 아이가 학교를 다니기에도, 늘 다니던 학원이나 편의점을 다니기에도 조금 멀고 불편하다. 그렇지만 집 안에서의 생활은 조금 더 나아질 것이고 등교나 놀이터를 오가는 것도 곧 적응이 될 것이다.
어떤 말로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내가 다음 주에 그대로 출근할 것처럼 대하고, 어떤 사람들은 마치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될 것처럼 모든 의사결정을 해놓고 가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 돌아갈 준비와 떠날 준비를 같이 하라고 한다. 나의 솔직한 심정은 최고전력으로 팽팽 돌고 있던 몇 개의 전력 엔진 중 하나를 당분간 꺼놓고 싶은 마음이다. 최대 갯수 최고 전력을 방출 중인 기분이 지속되고 있어 '잠깐 멈추어야 할 때' 라는 강력한 신호라고 생각했다.
햇살같은 그녀가 오늘 내게 물었다. "작년 하반기 그 때 팀을 옮기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맘씨님은 여전히 휴직을 선택했을까요?" 나는 잠시 생각하고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어서 사실 무척 기뻤다. "아마 원래 일하던 사람들과 원래 일하던 자리에서 계속 하던 일을 했다면, 휴직까지 요청하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나는 아마도, 아니 절대로, 지금처럼 저쪽 끝부터 이쪽 끝까지 살펴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없었을 거예요. 아무 원망도 후회도 없고, 아주 필요한 시간이었다 생각해요." 시간을 되돌린대도 아마 나는 팀 변경의 제안을 또 받아들일 것이고 또 그렇게 전력으로 몰두할 것이다.
그 모든 순간이 고맙고 귀한 것도 맞고, 지금이 잠시 틈을 만들어야 하는 때도 맞다. 한참을 집중해서 미로 퍼즐을 풀다가 어느 순간 책을 탁 덮고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며 탁자에서 일어나면 여기 저기 관절이 아프고 펴지는 근육은 시원하듯이, 나의 일상도 당분간 그러할테다. 그리고 다시 유연함을 되찾고, 충분한 산소와 단백질을 공급하고, 그리고 다시 퍼즐책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래야 그 책을 끝까지 다 풀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