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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가 된 딸이라도 마음이 통할 때 모두를 움직인다

영화 〈좀비딸〉을 보고서

by 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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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서울에서 원인불명 곧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창궐하게 돼요. 감염자를 좀비로 만들어버리는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은 없고요. 그 까닭에 정부는 모든 좀비를 없애기로 결단을 하죠. 그와 같은 '좀비청소 대작전'으로 수많은 인명 피해가 나고 좀비 사태는 진정이 돼 어느새 1년이 지나가죠. 세상의 모든 좀비가 사라졌다면서 안심할 그때 시골의 어느 마을 가정집에 좀비가 등장하죠.


영화 〈좀비딸〉이 시작하는 모습이 그거에요. 좀비가 등장하고 모든 좀비를 없애는 장면 앞에 공포물처럼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영화 초반을 넘어가면 가족 간에 벌이는 코미디와 따뜻한 인간애를 느끼게 돼요. 웹툰 원작은 비극적인 결말을 그렸다고 하지만 영화 속 앤딩은 치유와 소망을 선물해주고 있고요. 나와 같이 이 영화를 관람한 세 분도 그렇고 뒷좌석에서 함께 본 수많은 분들도 배꼽 잡고 웃다가 또 울기를 반복했죠.


〈좀비딸〉의 딸 역을 맡은 최유리는 순한 좀비 모습을 보여줬어요. 몸짓은 좀비여야 하고 표정은 어색해야 했으니 그 역을 소화하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았겠죠. 〈좀비딸〉의 아빠 역을 맡은 조정석은 동물원 조련사였어요. 조련사로서 좀비가 된 딸을 훈련시키는 게 황당했겠죠. 더욱이 친딸도 아닌 조카를 자기 딸처럼 키우고 훈련시키고 사랑을 쏟는 모습은 너무나도 애잔했죠.


주연배우들의 몫이 그랬다면 조연 배우들도 톡톡 튀는 명연기를 보여줬어요. 할머니 역을 맡은 이정은은 조정석보다 더 무서운 할머니였지만 손녀 사랑은 누구보다도 뒤지지 않는 따뜻함을 지녔어요. 동네 약사를 맡은 윤경호는 토르 분장을 하면서까지 만능 조력자로 등장하죠. 조여정은 좀비가 된 예비 신랑을 망설임 없이 제거한 시원한 캐릭터였고요. 거기에 ‘애용이’까지 상황에 맞는 표정을 지어주니까 너무나도 재밌고 웃겼어요.


“수아야. 아빠 물어.”


결말로 치닫는 영화의 한 장면인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명대사였죠. 좀비가 된 딸을 추격하던 군인들이 아빠와 함께 죽이려던 그때 아빠도 좀비가 되어 마지막 생을 딸과 함께 끝내려던 모습이었죠. 이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던 동료도 눈물을 훔치는 것 같았어요. 영화가 끝나고 나올 때 그분이 그런 말을 했어요. “아빠의 모습이 마치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 같았어요”하고 말이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마13:8)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명대사예요. 여기에 ‘좋은’이란 말은 헬라어로 ‘칼로스’(καλός)에요. ‘좋은’(마3:10,마12:33) ‘선한’(요10:11,딛2:14) ‘착한’(마5:16) ‘아름다운’(마7:17)을 뜻하는 말이죠. ‘좋다’는 말이 헬라어로 두 단어가 있는데 하나는 ‘아가도스’(ἀγαθός)로 도적적인 관념의 선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칼로스’처럼 인간관계를 뛰어넘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선을 말하죠.


예수님께서 좋은 밭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와 대조되는 ‘길가밭’과 ‘돌짝밭’과 ‘가시떨기밭’에 대해 이미 말을 했죠. 그런 밭들은 다들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려는 마음이라고 말예요. 그런 이들은 예수님의 말이나 타인의 말을 품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거죠. 그러니 뭔가를 기대할 수도 없고 열매를 맺을 수도 없는 거라고 말이죠. 오직 좋은 마음밭을 지닌 사람에게만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창26:12)의 결실을 맺는다고 했죠.


영화 〈좀비딸〉의 조정석도 처음엔 좀비가 된 딸을 죽이려고 했어요. 하지만 친딸처럼 키운 조정석의 마음 밭은 결코 그럴 수가 없었죠. 그래서 사람으로 회복시키고자 조련을 결정하는 거였죠. 그런 그의 진실함과 간절함에 할머니 역을 맡은 이정은도, 동네 약사 역을 맡은 윤경호도 결국 동참하여 협력한 것이죠. 좋은 마음밭이란 그만큼 사랑에 진심인 마음밭인 걸 알 수 있죠. 그 마음이 통할 때 모두를 움직였던 것이고요.


영화 〈좀비딸〉은 처음에는 전형적인 좀비 아포칼립스의 형식을 보여줬지만 찬찬히 보다 보면 좀비를 소재로 한 ‘개그 육아용 영화’이자 ‘가족애를 담은 따뜻한 영화’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어렵다거나 무겁지도 않아서 누구랑 봐도 어색하지 않을 거예요. 더욱이 정부가 정한 ‘문화가 있는 날’ 덕에 6천원 할인을 얻어 단돈 1천 원에 관람했으니 모처럼 영화관도 가득 찬 느낌이라 좋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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