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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말년에 꼰대가 아니라 스승이 되려면

고미숙 외 5명의 〈나이듦수업〉을 읽고서

by 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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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100세 시대 인생이라고 하죠. 100세를 4등분으로 하면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요? 1∼25세까지를 인생의 봄날로, 26∼50세까지를 인생의 여름철로, 51∼75세를 인생의 가을날로, 그리고 76∼100세까지를 인생의 겨울로 말이죠.

인생의 봄날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며 성인의 삶을 준비하는 때죠.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탐색하고 인생에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계획하게 되죠. 물론 부모의 바람과 자기 자신의 방향 때문에 갈등하는 시기이기도 하죠.

인생의 여름은 푸른 산천과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땀을 흘리는 시간이죠. 본격적으로 자기 자신의 삶을 구축하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열정과 넘치는 에너지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역동적인 때죠.

인생의 가을은 열매를 맺고 단풍이 지는 시기에요.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여름날의 열기를 식히면서 차분히 자기 자신과 삶의 의미를 찾는 시간이기도 하죠. 직장과 사회에서 주어진 자기 역할을 점검하고 젊은 시절과는 다른 모습으로 곳곳에 헌신과 봉사를 하죠.


인생의 겨울은 앙상한 나무처럼 이파리들이 하나둘 떨어지는 때죠. 마지막 잎새처럼 사람들의 시야에서 자기 존재감이 점차 사라지는 시기예요. 하지만 겨울이 봄을 잉태하듯 인생의 겨울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때죠. 그들의 열정과 패기를 응원하고자 묵묵히 밑거름을 자처하는 시기이고요.


그런 인생의 사계를 잘 살아왔다면 인생의 말년 역시 풍요롭지 않을까요? 뭔가 이루고 성취해서 풍요로운 게 아니라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성찰해 왔다는 뜻에서요. 그런 인생의 말년을 맞이했다면 누구에게라도 이해할만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스승이 될 수 있겠죠.


“현대인은 완전히 양적으로 계산합니다. 그래서 100세 산다고 하면 ‘지금 내가 50대야. 50년이나 남았네?’하고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그럼 남는 시간에 뭘 합니까? 술을 마시죠. 육식을 하고 성욕을 채웁니다. 다 이렇게 살고 있죠.”(21쪽)

고미숙 외 5명의 〈나이듦수업〉에 나오는 이야기예요. 은퇴 후에도 50년이나 남은 인생을 고민하거나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동물적인 본능에 이끌려 산다는 거죠. 자연의 흐름처럼 인생의 봄·여름·가을·겨울을 지혜롭게 헤쳐 나온 사람만 100년을 살아도 보람차게 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말년을 맞이한 노인들은 젊은이들이 하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그들에게 귀한 멘토가 될 수 있다고 하죠.


미국의 카터 대통령도 그 중 하나라고 해요.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서도 환경 운동에 매진했다고 하죠. 더욱이 90대에 접어들어 자기 몸에 종양이 번졌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마음을 편안하게 가졌고요. 그 종양을 ‘치병이 아니라 친병’처럼 받아들였다는 거죠. 그것이 봄·여름·가을·겨울의 인생을 지혜롭게 한 노년의 모습이죠.

물론 인생 말년이 됐어도 그렇지 못한 노년들이 참 많다고 해요. 봄에서 여름을 거쳤으면 가을로 가야 하는데 계속 여름에만 머물려고 하는 것 말이죠. 청춘을 흉내 내 성형을 하면서까지 나이가 드는 걸 부정하는 모습이 그렇죠. 젊은 세대에게 말없이 밑 거름이 되기보다 매번 참견하니 꼰대 소리를 듣고요. 그러니 몸도 정신도 아파 현재의 가을은 물론 노년의 겨울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겠죠. 죽음을 맞이해야 할 인생의 말년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끔찍할 거고요.


이 책은 그렇듯 고령사회로 접어드는 사회 속에서 나이듦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나이가 드는 게 지혜로운지 명강사 6명이 한 강의를 한 데 묶어 놓은 책이에요. ‘중년 이후, 존엄한 인생 2막을 위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있어서 인생의 겨울과 말년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에요.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욥42:12)

성경의 욥기서 말씀이죠. ‘말년’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하리트’(אַחֲרִית)는 ‘후일’, ‘나중’, ‘끝날’을 의미해요. 인생의 가을을 지나 종착역을 향한 시점이죠. 하나님께서 욥의 말년에 처음보다 더 복을 주셨다고 하니 사람들의 관심은 소유물에 쏠릴 법 해요. 하지만 그 인생 말년에 누린 복은 거기에만 머물지 않죠.


사실 욥의 인생 봄날과 여름날은 모든 게 풍족했죠. 하지만 가을날은 자기 생일까지 저주할 정도로 모든 걸 잃고 온몸에 악창이 들끓었죠. 그때 친구들이 찾아와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냐?’ ‘괜히 하나님께 네게 벌을 주는 거겠냐?’ 하면서 비난을 퍼부었죠. 그때 욥은 자기 의로움을 강변하다가 친구들과의 관계가 뒤틀렸고,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의로움을 내세웠죠. 물론 그 마지막에 모든 관계가 회복되었고 소유물까지 누리게 된 거죠.


그러니 욥의 인생 말년에 누린 복은 소유보다도 사람 사이의 관계가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어요. 인생의 가을날 커다란 실패를 겪었을 때 친구들조차 비난하고 조롱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있으니 말에요. 힘든 시기를 지날 때 신앙인이라면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는지도요. 그런 과정을 통과한 인생 말년이었으니 욥의 인생은 젊은이들에게 꼰대가 아니라 참된 스승이 될 수 있는 거죠.

〈나이듦수업〉이 책을 보면 노인이 되면 꼰대 소리를 듣는 이유를 알 수 있어요. 인생의 겨울이 되면 눈도 귀도 닫히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고 하죠. 고집불통이 되는 이유죠. 더욱이 한국의 노인들 경우 10명 중 3∼4명이 우울증을 앓는다고 해요. 그만큼 노인 고독사가 큰 이유죠. 그러니 인생의 겨울이 다가올수록 사람 사이에 관계를 더욱 잘 맺고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 말년을 맞이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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