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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몸에서 나오는 노폐물도 공적으로 여겨야

김희재의 〈나이 듦에 대한 변명〉을 읽고서

by 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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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중반이라 그런지 몸을 살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네요. 몇 달 전엔 이빨이 아프고 아려서 치과엘 갔죠. 의사는 이빨을 빼고 임플란트를 심자고 했어요. 나는 이빨을 더 쓰고 싶다고 했죠. 그랬더니 이빨 속 죽은 신경을 긁어내고 아말감으로 덮어줬어요. 네 번 치료를 받았는데 지금까지도 편하고 좋네요.

얼마 전엔 안과도 갔었죠. 새벽에도 눈이 침침하고 평일에도 책을 보는 게 좋지 않았어요. 눈도 뻑뻑하고 눈곱에 뭔가 끼는 것도 같았죠. 의사는 내 눈을 보면서 몇 가지 정밀검사를 요청했어요. 시력검사는 기본이었고 망막과 황반과 시신경 검사까지 받았어요. 그랬더니 다른 것엔 이상이 없고 ‘노안’이니 돋보기를 쓰는 게 낫겠다고 했어요.


나이가 들면 이런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일까요? 이러다 노년에 접어들면 다른 모습들이 또 나타나겠죠? 올해 93살인 제 어머니도 그랬으니까요. 중년을 지나 노년에 접어든 우리 어머니도 어느새 허리가 구부정했고 귀도 안 들리기 시작했죠. 지금은 식사할 때 밥맛이 없다면서 숟가락으로 한술 뜨고는 곧장 놓아 버리죠.

그런 어머니의 손가락은 이미 깊게 팬 대나무 뿌리가 돼 있어요. 그 손가락으로 칠 남매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마디마디가 굵고 휘어 있으니 말이죠. 어머니의 젖무덤도 쪼그라든 채 축 처져 있고요. 이빨도 위아래 틀니를 해서 부정확할 때가 많죠. 가까이 가면 왠지 모를 노인 냄새도 풍겨나고요. 그것이 중년을 넘어 노년으로 가는 노화된 몸의 변화겠죠. 나도 머잖아 자식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거고요.

“어쨌거나 꽃향기를 피우며 세상에 왔다가 몹쓸 냄새를 남기고 가는 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꽃향기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제 예쁜 것을 자랑하며 사랑으로 자라는 유년기가 있었다면 사람들과의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고요하게 혼자의 시간을 가지는 세월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196쪽)


김희재의 〈나이 듦에 대한 변명〉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인생의 중년을 넘어서면서부터 방귀도 자연스레 새어 나오고 몸에 노폐물도 흘러나오는데 그것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냄새를 풍긴다는 거죠. 그것이 자식들을 키우면서 살아온 인생의 공적일 텐데 오히려 자식과 주변 사람들에게 핀잔을 듣는 경우가 많다고 하죠. 그래서 거리를 두기도 하고요.

이 책은 중년을 넘어 노년에 접어드는 시기에 몸과 마음에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게 해요. 언젠가부터 작은 일에도 참을 수 없이 치솟는 울화도 그렇고,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들, 자꾸만 가려운 피부, 씻어도 사라지지 않는 고약한 노폐물 냄새 말이죠. 젊었을 땐 알 수 없었던 증상들이 노년에 들어 극심해지는데 어떻게 자신과 자식들이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지, ‘변명’이라는 형식을 빌려 공감과 연민을 불어넣는 글을 쓴 거죠.


사실 나이가 들수록 몸에서 풍기는 냄새가 있죠. 땀을 흘린 후에 강렬한 바디용품으로 노폐물을 닦아 내는 이유도 그 때문이죠. 밖에 나갈 땐 진한 향수로 냄새를 덮기도 하죠. 하지만 젊을 때 곧잘 열리던 땀구멍도 나이가 들수록 노폐물을 내보내는 조절이 쉽지 않다고 해요. 강한 향수도 자칫 더 역한 냄새를 풍길 수 있고요. 여름철 땀을 흘릴 때 가장 좋은 건 물로 그냥 씻어내는 거라고 하죠. 그런 모습을 나이 든 자신과 자식들도 자연스레 받아들이면 좋을 텐데 말이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욥42:13∼15)


성경의 욥기서 이야기죠. 욥기서엔 욥의 중반부까지 인생은 나오지 않죠. 다만 유대인의 행동을 규제하고자 법과 조례로 만든 〈할라카〉에선 욥을 이집트 파라오의 왕실 고문으로 추정하죠. 충분히 설득력이 있죠. 유대전승 토라를 해석한 〈미드라쉬〉에선 아브라함의 몸종 하갈을 파라오의 딸로 여겨요. 파라오가 아브라함의 아내를 취할 때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는데 그걸 무마하고자 아브라함에게 많은 소유물을 주죠. 그때 고대근동의 풍습처럼 자기 딸도 결혼지참금으로 내줬다는 거죠. 하갈도 하나님의 우산 속으로 들어가는 게 보호받을 수 있다며 아브라함을 따랐구요. 그 무렵 파라오는 이집트 왕실의 안녕을 꾀하고자 아브라함과 동시대 인물인 욥을 왕실 고문을 불러들였다는 거죠.

그런데 인생 중반기를 넘어 욥은 수많은 재산을 잃고 열 명의 자식도 한날 한시에 죽죠. 그때 세 명의 친구들이 욥을 정죄하는데 끝까지 자기 의로움을 항변하죠. 하지만 절대자 앞에서는 그것조차 온전치 못하다는 걸 깨닫고 회개하죠. 급기야 인생 후반부에 이전의 소유물과 자식들까지 하나님께서 회복하게 해 주셨다는 이야기에요.


그런데 욥은 인생 말년에 딸들의 가치를 훨씬 드높이는 모습이죠. 중반기까지만 해도 생일이나 번제는 온통 아들들 중심이었죠. 하지만 고통을 통과한 인생 후반부에는 작고 연약한 이들에게 마음을 쏟아붓듯 딸들을 더욱 소중히 여기죠. 첫째딸 이름 ‘여미마’(יְמִימָה)란 ‘날들의 날들’로 고통의 날들을 믿음으로 통과한 욥의 인생을 비춘 이름이겠죠. 둘째 ‘긋시아’(קְצִיעָה)란 번제 의식에 사용된 계피향의 일종으로 욥의 신앙을 빗댄 이름이고요. 셋째딸 ‘게렌합북’(קֶרֶן הַפּוּךְ)은 ‘물감의 뿔’을 뜻하는 눈 화장용 가루로 욥의 추한 모습을 아름답게 꾸며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한 이름이겠고요.


아브라함이 파라오의 왕실을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욥이 왕실 고문 역을 맡았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요셉과 다니엘도 이집트나 페르시아의 왕실 세력들로부터 많은 견제와 모함을 받았으니까요. 욥도 그런 상황에서 신앙을 지키며 자식들을 키우고 아브라함의 가신(家臣)보다 더 많은 종을 거느렸으니 얼마나 뼈가 닳고 휘었을까요? 더욱이 고통의 날들을 통과한 인생 후반부에 자식들을 새로 낳아 키웠으니 그 몸에서 훨씬 많은 노폐물이 흘러나왔겠죠? 씻어도 씻겨지지 않는 그 냄새 말이죠. 하지만 하나님과 그 자식들은 ‘게렌합북’처럼 인생의 아름다운 공적으로 받아들였겠죠.

이 땅에 느티나무와 같은 열매 없는 나무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청춘의 자태를 자랑하죠. 하지만 이 땅의 유실수들은 저마다 마디마디가 굵고 뒤틀려 있어요. 대나무 뿌리처럼 말이죠. 모든 어머니의 손가락이 마디마디 굵고 휜 것처럼 말이죠. 그 유실수들이 더 이상 열매를 내놓지 못할 때가 되면 기꺼이 베어내듯 인생도 냄새나는 노년을 넘어 죽음에 처해 시체 썩는 냄새가 날 때면 땅에 묻게 되죠. 그러나 그때가 가장 숭고한 인생의 공적이죠. 그러니〈나이 듦에 대한 변명〉에서 말한 노년의 노폐물 냄새도 이제는 기꺼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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