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아침 9시면 카톡으로 영어 회화를 배우고 있어요.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Steve Lee로부터 말이죠. 그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했어요. 지금은 그곳에서 일하면서 가정도 꾸리고 자녀들을 키우고 있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보 수준의 영어 회화를 배웠어요. 인사말과 각종 요일과 날씨와 여행에 필요한 것들 말이죠. 그런데 지난 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영어 회화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내 삶을 자유롭게 나누면서 대화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그게 훨씬 빠르게 배울 수 있다면서 말이죠.
오늘은 주중에 먹었던 새우 요리에 관한 이야기를 내가 꺼냈어요. 어느 분이 나를 포함해 몇몇 분들을 대접한 새우 요리에 대해서 말이죠. 새우를 튀겨 몸통을 먹은 후에 머리 부분은 잘라서 버터에 발라 구웠는데 그 맛이 ‘난생 처음 먹어 보는 맛이었다’고 하면서요. 그러면서 그런 표현은 영어로 ‘관용구’가 없냐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스티브 리는 관용구라는 말을 처음 듣는 말이라고 하면서 사전을 찾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그가 내게 한마디 했어요. 자신도 영어 회화를 가르쳐 주면서 생소한 한국말을 많이 배운다고 말이죠. 생각해 보면 세상 이치가 다 그렇지 않나 싶어요. 상대방과 뭔가를 함께 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말에 경청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말이죠. 소통은 경청으로부터 시작되고 경청하면 서로가 평안하게 지낼 수 있죠. 그것은 부부의 삶도, 하나님께 맡기는 삶도 마찬가지죠.
“자신의 세계가 흔들릴까봐 그에게서 영감을 얻는 것도 피하면서, 가사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도둑질하듯이 자신의 세계를 조금씩 조금씩 구축하느라고 늘 바둥거렸다.”(140쪽)
강인숙의 〈만남: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70년 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이어령을 남편으로 만나 한평생 살면서도 자신의 역량을 잃지 않으려 애를 썼다는 것이죠. 그만큼 서로 다른 남녀가 부부로 산다는 것은 서로에게 맡기고 기대는 삶임과 동시에 상대방의 관점을 존중하는 일임을 알 수 있죠.
이 책은 ‘시대의 지성’이라 불린 이어령 선생의 공적인 모습보다 아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 이어령’에 충실한 회고록이에요. 1933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월남한 그녀는 스무 살의 대학 신입생 때 충청도 출신의 동갑내기 이어령을 만났죠. 이후 결혼해서 2남 1녀를 키우기까지 학자와 동반자로 20세기 격변기를 함께 항해한 셈이었죠.
양반 출신의 이어령은 누구보다도 가부장제에다 보수주의자처럼 보였겠죠. 하지만 그는 새것을 좋아했고 무엇보다도 추상적이었다고 해요. 아내 강인숙의 약점을 건드리지 않은 것도 그런 연유였고요. 그녀는 이어령과 달리 옛것을 좋아했고 현실적인 사고로 충만했다고 하죠. 집을 뜯어 고칠 때 충돌한 이유도 그것이었고요. 하지만 늘 새것에 몰두고 융합하던 덕에 그는 세상을 놀라게 한 88올림픽을 연출해 냈다고 하죠.
인간은 누구나 자기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이 적은 세상에서 살고 있어요. 그게 즐거운 일이 아니니 외로울 수밖에 없고요. 이어령 선생은 자기 담론에 누군가 귀를 기울이면 무척이나 소리가 컸고 진지했다고 하죠. 부인 강인숙 앞에선 더더욱 성량이 컸고요. 종종 그녀의 머리가 울린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이어령의 창의적인 발상에 그녀가 귀를 기울인 까닭에 그는 우리 시대의 각종 우상을 파괴했고 ‘시대의 창조라’란 별칭까지 얻은 셈이었죠. 그만큼 누군가와 동반자로 살아가는 건 그에게 나를 맡기는 삶이자 동시에 상대방의 주장에 경청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임을 알 수 있죠.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37:5-6)
구약의 시편에 나오는 다윗의 시에요. 인생 황혼기에 접어든 그가 인생 뒤안길을 돌아보며 다음 세대를 향해 권면한 거예요. 15살 무렵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이후에 10년간 사울 왕에게서 도망쳐 다녔죠. 그런 행악자들 앞에서 악으로 악을 갚기보다 선을 좇으며 하나님께 인생을 맡긴 거였죠. 우리말 ‘맡기다’(commit)는 히브리어 ‘갈랄’(גָּלַל)은 ‘구르다’(to roll) ‘굴러떨어지게 하다’(roll down)는 뜻이에요. ‘일이 여호와께 가도록 굴린다’,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굴러가게 한다’는 의미죠.
다윗은 그만큼 광야 도망자로 살던 10년간의 무거운 짐들과 근심 걱정을 하나님의 뜻에 굴러가도록 내어 맡긴 거였어요. 한낮의 뙤약볕을 거닐 때도 광야의 밤이슬을 머금고 잠을 잘 때도 말이죠. 그것이 하나님과 동반자로 사는 삶이자 하나님의 뜻에 경청하는 삶이었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것은 자기 좌표와 자기 시간표를 통보하고 억지 부리는 게 아니죠. 그런 방식으로 신을 어르고 달래는 것은 무당이나 미신을 숭배하는 자들이 하는 모습이죠.
강인숙이 쓴 그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어령과는 또 다른 인간적인 면모와 내밀한 부분까지 드러내 주는 회고록이에요. 성격은 반대되는 면이 많지만 동갑내기 인생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평화롭게 공존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게 해주죠. 상대방에게서 무언가를 배우는 입장이든, 함께 살아가는 부부든,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든, 그 무엇보다도 진지하게 경청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