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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tle Creatures Mar 19. 2020

가족 발리여행

그래서 가족

[시기:2014.10 / J:초5 / 장소:호주]


우리는 호주 생활에 적응 중

나는 벌써 2년이 되었지만, 가족들은 생면부지의 땅 호주로 온 지 10개월이 되었다.

이제서야 가족들은 호주의 낯선 생활에 조금은 적응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가족들 모두 각자의 노력과 수고가 만만치 않았음을 알고 있다.


RJ는 우리나라의 학교급식으로 탱자탱자 하다가, 갑자기 아침마다 도시락을 2개씩 싸야 한다. 게다가 학교와 등교시간이 다른 P와 J를 아침과 오후에 각각 따로 실어 날라야 했다.

P와 J는 한국 학생도 거의 없는 호주 학교에 준비 없이 던져져서, 새로운 학교환경과 영어에 적응해야 하고 호주애들과 힘들게 부대끼며 학교생활을 해야 했다. (P는 1998년 태어나서 2002년 귀국 때까지 홍콩/이집트/싱가포르에서 생활했었지만 애기였고, J는 해외생활이 처음이다.)


수고한 자여 떠나라

그래서 반짝 기획된 발리 여행

어느 날, 에어아시아로부터 받은 저렴한 발리 특가와 게다가 새로 지어져 특별 프로모션 중인 리뷰가 아주 좋은 풀빌라까지...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아빠로서 해외여행의 큰 틀인 항공과 호텔을 결정하고는, 당연히 이후의 세부 일정은 또 나의 몫이다. RJ와 P/J는 계획의 진척사항만 가끔 확인하고는 무관심하다. 그리고 여행 중에 불편한 일이 발생하면 나에게 책임을 묻는다. 일괄책임제다. 하지만 이 또한 아빠로서 즐겁고 행복한 의무이다. 아직까지 그렇게 믿고 있다.....


이번 여행 테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액티비티를 최소화하고 스파/마사지를 매일 1회 배정하고 나머지는 수영장에 P와 J를 풀어놓고 맥주와 맛난 음식을 먹으며 널브러져 있기로 했다. 그래도 P와 J가 심심하지 않게 래프팅과 펀쉽 그리고 J는 서핑 레슨을 추가했다.

J는 그동안 어려서 이러한 여행 계획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컸는지 혹은 호주의 학교생활이 힘들었는지 무심한 척하면서 가끔씩 속내를 내비치며 이번 여행에 잔뜩 기대하는 눈치다.

출발 1주일 전에서야 어렵게 가족들의 여행 계획 최종 승인을 받아 냈다.


드디어 출발하나?

출발 전 날 저녁 다들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모두 약간의 기대감과 들뜬마음으로 여행가방을 싸면서 기분 좋은 저녁을 보냈다.

출발하는 날, J는 풀빌라에 도착하면 바로 수영장에 뛰어들기 위해 속옷 대신 수영복을 입고 가겠단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빠는 "안전"에 대해서 잔소리를 했지만, 귀 기울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벌써 마음은 발리에 있는 듯했다.


적어도 공항에 도착해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인도네시아 입국을 위해서는 6개월 이상의 유효기간이 남은 여권이 있어야 하나, RJ/P/J의 여권은 유효기간이 4개월만 남아있었고, 그래도 뭔가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와는 달리 여행을 취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

가장 들떠 있던 J는 공항 카운터에서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나 보다. 그래도 기대를 가지고 계속 눈으로 나를 따라오며 안타깝게 쳐다보는 모습이 언듯 언듯 보였다.

막내스럽게 공항 카트 여행가방 위에 올라 않아 있던 J가 마침내 소리를 삭이며 운다. 차라리 소리 내 울면 덜 미안했을 텐데...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과 한국식당에서 저녁 먹는 내내, 아빠 엄마 누나는 한마음 한뜻이었다.

즐겁게 J를 달래주었고, 아빠의 실수를 유쾌하게 하지만 쉬지 않고 비난했다. 그 와중에 나는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을 재미없게 했다고 더 심한 추궁을 당한다.

[호주 한국식당 앞에서]

여행은 준비하는 즐거움이고 떠나는 순간부터 고생이라고 한다면, 나는 즐거움은 온전히 누리고 고생은 피한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 어이없고 엄청난 실수를, 이렇게 유쾌하게 참고 넘겨준 우리 가족에게 곧 다시 발리에 놀러 갈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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