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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tle Creatures Apr 01. 2020

딸이 태어났다

이제는 대학생이 되어버린

딸(P)은 1998년에 태어나서 지금은 대학 2학년이 되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올해 대학 4학년이 되어서 내년부터는 그동안 무이자로 융자해주었던 육아비용의 회수에 들어가야 했으나, 지 멋대로 결정한 반수와 워킹홀리데이로 융자금 반환을 2년간이나 유예해버렸다.

어렸을 때는 나를 너무나 잘 따라서 자발적으로 엄마 라인이 아니라 내 라인을 선택해주었고, 나도 이에 즐겁게 성실히 보답했다. 하지만 계속될 것만 같았던 이런 밀월관계는 서서히 파토가 나기 시작했다. 중학생이 되어 2PM과 인피니트 오빠들 라인으로 갈아타면서부터이다. 응칠(응답하라 1997)에서 성동일과 정은지의 싸우는 장면이 현실에서도 벌어졌었다.

대학생인 지금도 여전히 인피니트의 빠가 되어 활동 중이다. 최근 성규의 전역일에 계절학기 기말고사로 '고성'까지 가지 못한 한을 풀겠다는 듯 내 생각에는 너무 비싼 전역 콘서트 티켓을 날짜별로 사서는 다녀온 바 있다.

그래도 이제는 엄마 아빠가 말다툼을 하면 중간에 끼어들어 논리에 근거해서 잘잘못을 가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문제에는 P에게 중재를 요청했고, 억울하더라도 그 결정에 따르고 있다.


[시기:1998년 / 장소:한국과 홍콩]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만삭이었던 RJ는 출산을 위하여 이미 한국의 친정에서 머물고 있었고, 나는 홍콩에서 현장생활을 하면서 출산할 때 RJ에게 손이라도 내어주고자 예정일에 맞추어 비행기표를 예약한 상태였다.


배가 살짝 아프다고 했다.

출산예정일은 아직 2주일이나 남아있었고 출산까지 생각할 징후는 아니어서 약간 걱정은 되었지만 잊어버린 채 현장을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오전 늦게 장모님께 전화가 왔다. 딸이라고 한다.

홍콩 산부인과에서는 초음파 사진에서 피넛이 보인다고 했었는데 뭐였지?

푸른색 계열의 옷을 그냥 입혀야겠다.

[요만했었다]

부랴부랴 비행기 예약을 변경해서 처가에 도착하니 벌써 출산한 지 3일이나 지나 있었다. 가끔  RJ가 그때 이야기를 하면, 나는 “그 당시만 해도 비행기를 예약하고 변경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고, 또 항공편이 매일 있지도 않았다.”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더 일찍 갈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라고 인정하는 건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고 있는 최근의 형국에서는 더더군다나 안된다.


내 딸인지?

전혀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P를 처음 본다는 기대와 설렘은 있었지만 그 보다는 나는 그냥 한국으로 휴가 가는 기분이었다. P를 첫 대면하는 순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빨간 다라이 목욕통에 들어가 있던 P는 조그맣고 발그래한 목청이 큰 그냥 신생아였을 뿐이다.


바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목욕 중인 P의 몸을 잡으란다. 너무 조그마했고, 또 P를 잡았을때 P의 살에 내 손이 닿았는지 느낌이 없었다. 장모님이 아직 물살이라고 알려주셨다. 바로 혼나고 나에게는 P의 목을 받치는 역할만 주어졌다. 조그만 빨간 다라이통에 3명의 어른이 둘러서 끼여 앉아 목욕을 시키고, 머리도 감기고, 닦이고, 말려서 분 바르고, 기저귀 채우고 나서 다시 옷을 입혔다. 옷을 입힐 때도 손과 팔을 옷에 맞춰 넣는 게 쉽지가 않다. RJ는 며칠 동안 해본 것 같은데 영 엉성했고, 3명의 자식을 낳아서 기르신 장모님은 너무 오래되셨기도 했고 그때 내가 보기에는 P를 막 다루는 듯 느껴졌다. 그렇게 해도 된다는 것을 둘째를 낳고 나서야 알았다.

어쨌거나 힘들었다. 목청이 커서 더 힘들었다. 지금도 크다.


엄마는 달랐다.

난 쓸데가 별로 없었다. 난 그냥 근처에서 아무 의미 없이 허둥대기만 했고, RJ는 P의 작은 움직임에도 즉각 반응하며 씻기고, 기저귀 갈고, 울면 달래고, 젖 물리고, 재우고, 또 자면 젖병 소독하고, 기저귀 빨다가, 틈틈이 쓰러져 곯아떨어진다.

나에게는 그냥 애를 밟지만 말아달라고 한다.

나는 P가 뱃속에 있는 동안 책도 읽어주고, 말도 걸어보고, 기도도 하고, 배에 손을 올려서 P의 움직임을 느껴보기도 하는 등 아빠들이 일반적으로 해야 하는 여러 가지 행동들을 성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10달을 온전히 뱃속에서 키워온 엄마와는 다른 것 같다. 엄마는 P를 10달 전부터 보아왔다는 듯 이미 모녀지간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나는 그때서야 느끼기 시작했다.

나도 휴가기간 일주일을 P와 함께 하면서 그때서야 부녀지간임을 조금씩 느껴가기 시작했다.

나는 가끔 웃어주면 마냥 마음이 녹아내리게 만드는 P와 애기였다가 갑자기 엄마가 되어버린 애틋한 RJ를 마음껏 사랑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애는 누워있을 때가 가장 편하다는 사실도, 육아생활이 얼마나 길어질 지에 대해서도 그때는 인지하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언제 끝날지 기약없는, 시간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육아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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