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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tle Creatures May 24. 2024

그때는 그런 줄 알았어

The Road Not Taken

Robert Frost의 "The Road Not Taken"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과 내가 선택한 그 길로 인하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세대 간(젠더 간) 갈등의 출발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대한 이해 부족”과 “내가 겪은 상황에 대한 이해 강요”가 아닐까?

[하루 이틀된 세대갈등이 아닌듯 하다]

"덜 젊은 세대"젊은 세대를 대하는 바람직한 마음가짐은 "젊은 세대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함"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들의 나이대를 지나왔지만, 다른 시간대에 살았기 때문이다.


▪︎6.25의 고초를 겪은 우리 부모 세대는 우리 세대가 어릴 적 밥을 깨끗이 다 먹지 않는다고 혼내었다. 숟가락으로 한 톨 남기지 않고 긁어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아깝다고 다 먹는 것” 보다는 건강과 다이어트를 생각해서 “차라리 남기는 것”이 낫다는 것으로 변했다.

▪︎예전에는 취업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회사생활이 쉽지는 않았다. 나의 해외 현장 시절은 평일 오전 7시에 출근해서 밤 10시에 퇴근하였고 토요일은 오후 5시 일요일은 격주로 쉬었다. 그렇게 사는 건 줄 알았다.

지금은 주 5일, 40시간 근무를 하고 있고 최근에는 주 4일 근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일부 선생님들의 폭력적인 체벌이 있었다. 그 체벌의 형태나 강도가 “사랑의 매”라고 하기에는 많이 지나친 감정 섞인 폭력이었다. 억울했지만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지금은 오히려 선생님들이 교권침해로 인한 불만이 제기되고 있고, 가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학생들 사이에서 나이키와 프로스펙스 신발이 뜨겁게 유행했었던 적이 있었다. 나는 항상 짝퉁인 “나이스”나  그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 “스펙스” 한 켤레만으로 해질 때까지 신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 젊은 세대" 그렇게 갖고 싶었던 나이키 급의 신발을 여러 켤레 신발장에 넣어두고 골라가며 신는다.

▪︎예전에는 겨울에 시어진 김장김치와 그 김치로 만든 김치찌개로 끼니를 때웠다. 계란프라이 하나를 곁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지금은 “끼니 때움”이 아니라 골라서 먹는 “식도락”의 시대가 되었다.


위의 일부 사례가 해당 시대의 해당 세대 상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다만, 선택할 수 없었던 시대를 살아 "덜 젊은 우리 세대"는 저렇게 살았었고 그냥 저렇게 사는 줄 알았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더 빠르게 계속 바뀌고 있다.


"덜 젊은 우리 세대"는 지금의 풍족한 시대를 우리의 젊은 나이 거쳐오지 못한 불만은 없다.

오히려 우리의 자식들이 이를 누리고 살 수 있음에 만족하고, 지금의 풍요를 이루는데 일조했다는 보람도 느낀다.

하지만, "덜 젊은 세대" 이런 생각을 알아주지 못하는 젊은 세대가 가끔 야속하기는 하다.


젊은 세대는 예전시대를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풍족한 시대를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생기는 어려움과 불만족을 이해하지 못하는 "덜 젊은 세대"가 만족스럽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덜 젊은 세대" 젊은 세대에게 "라때"의 그때는 그랬더라도 지금은 그렇지 않게 되어버린 사고와 행동을 강요하며, 생색내고 존중을 강요하면 “짱”이 나기도 할 것 같다.




그건 그 맞았, 이건 지금 맞다.

같은 나이대를 지나왔지만 "긴" 시간의 개념이 도입된 다른 세대의 상황을 진정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다만

▪︎현시대를 "덜 젊은 나이"대로 살고 있고 젊은 새대의 나이대를 이미 경험해 본 "덜 젊은 세대"의  더 큰 포용과

▪︎현시대를 현재 나이대로 살고 있는 젊은 세대의 "덜 젊은 "에 대한 약간의 자발적 존중으로

세대 간의 갈등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상호 간의 포용과 존중의 정도와 포용과 존중사이의 균형에 대해서는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어머니의 힘들고 어렵게 버텨온 40년 넘는 억압받은 시집생활의 하소연을, 나는 겨우 몇 달에 한 번 들으면서도 5분이 넘어가면 불편해진다.


20년 이상을 오롯이 딸과 아들을 귀하게 보살펴 온 RJ가 가끔 아이들을 소재로 감성적으로 다가오면, 나의 사회생활 기준으로 냉정하게 대응해 버린  많이 아쉽다.


나는 생각과 말과 행동 그리고 글까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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