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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의 참혹한 현실을 소설로 풀어내다

「소년이 온다」 한강

by 호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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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엄청난 이슈에 오른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는 한강 작가님의 또 다른 작품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상작인 「채식주의자」를 먼저 읽어보려 했으나, 이 책을 먼저 보게 되었다. 사실 「소년이 온다」는 가슴 아픈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읽기를 망설였다. 읽으면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남을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강 작가의 책을 읽어보고 싶었기에 「소년이 온다」를 끝까지 읽었다. 역시나 마음 아픈 이야기들이 이어졌고, 한 번에 이어 보기에는 감정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어 끊어 읽기를 반복했다.


안타까운 한숨을 뱉으며 책을 읽었는데, 여기서 나온 일들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사실일까 봐 걱정하며 읽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하기도 겁이 났다. 그저 소설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을 뿐이었다.





초반 부분은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화자는 '너'라고 지칭하며 남을 관찰하듯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 부분이 굉장히 특이하게 다가왔다.


보통 주인공의 이름을 언급하거나 '나'라고 지칭하는데 '너'라는 단어 하나로 소설의 쓸쓸한 분위기를 알려주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남이 아닌 주인공을 잘 아는 사람이 그의 관찰일지를 기록한 느낌이 들어 친근하면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한강 「소년이 온다」 17p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한강 「소년이 온다」 45p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소설을 읽으며 정말 안타까웠던 점은, 죽은 사람뿐만 아니라 산 사람도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다. 누구 하나 잘못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다들 저마다 본인을 자책하고 원망하며 슬픔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가는 모습이 마음 아팠다.


한강 「소년이 온다」 107p
나와 똑같은 짐승이었던
그의 차갑고 공허한 두 눈.
한강 「소년이 온다」 117p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수많은 고문을 당했던 그들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짓을 당한 그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어떻게 피폐해지고 변해가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 모습을 상상하면서 읽으니 너무나 끔찍해 눈살을 찌푸리며 글을 읽었다. 그런다고 글을 안 읽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강 「소년이 온다」 135p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감히 물어보기도, 함부로 판단하기도 어려운 순간을 겪었던 그 사람들에게 과연 우리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위로와 행동으로도 그들을 악몽이라는 감옥에서 해방시켜 줄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그 순간을 겪었다면 나 또한 그들처럼 오직 죽음만이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 같다.


한강 「소년이 온다」 175p
우리들을 희생자라고
부르도록 놔둬선 안돼.

그들의 자유를 향한 움직임은 희생이 아닌 투쟁이고, 국민의 자유를 함부로 건드린 어리석은 짓을 향한 올바른 행동이었다.


한강 「소년이 온다」 191p
젖먹이 적에 너는
유난히 방긋 웃기를 잘했는디.
한강 「소년이 온다」 215p
동생이 운이 좋았다고.
총을 맞고 바로 숨이 끊어졌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내 주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마음이 미어지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질지 감도 오지 않는다. 자식을 키워왔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 자식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을 실감을 할 수나 있을까?


차라리 한숨에 죽어버리는 편이 나았다고 말할 정도면, 이게 정말 맞는 걸까?


한강 「소년이 온다」 206p
특별하게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다.
한강 「소년이 온다」 212p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그 시절을 상상하노라면 난 항상 떠오르는 궁금증이 있다. 가해를 했던 이들도 '사람'이었을 텐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물론 지시하는 자가 몇십 번 몇천 번 셀 수 없을 만큼 잘못한 것이겠지만, 그것을 실제로 가행했던 사람들은 어떤 정신으로, 생각으로 그것을 행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 시절을 겪어보지 않아 함부로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유난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더 많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껴졌다. 볼드모트 마냥 언급하면 안 되고 숨기기 급급한 이 말도 안 되는 시대에 소극적인 군인들이 많았기에 그나마 이 정도에서 끝났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참담했던 현실을 소설로 풀어낸 「소년이 온다」 리뷰를 남겨봤다. 전체적으로 소설의 구성 방식과 화자의 표현이 독특해서 더 기억에 남는데, 한강 작가만의 문체는 묘하게 끌어들이는 힘이 있어 다음에 다른 책도 읽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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