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아홉, 남자의 결혼
이것은 인터뷰다.
월화수목금토 연재를 하고 홀로 남은 '일요일'에 대한 배려.
매주 일요일 점심 먹을 때 쯤 발행되는 <막간 인터뷰>는,
결혼을 앞둔
결혼을 생각해 보았던
결혼을 왜 해야하나 싶은
결혼은 남 얘기 같은,
이 세상의 모든 여자남자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결혼에 대한 질문을 막 던지는 인터뷰이다.
자, 이제 시작한다. 떨린다.
막간 인터뷰 _ 그 첫 번째 이야기 <스물 아홉, 남자의 결혼>
안녕하세요. 본격적인 질문에 앞서 간단히 자기 소개 먼저 부탁할게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의 성별과 나이를 밝히는 거예요..
왜냐고요? 쑥뽕삼은 여성 3명으로 이루어진 모임이거든요.
안녕하세요. 어쩌다보니 스물 아홉이 된 남자, 김선호 입니다. 반갑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어떻게 되나요? 참고로 저는 서울의 노동자로 절 소개하고 다닙니다.
제 직업은 여러분들에게 조금 생소하게 느껴질 것 같아요.
저는 현재 '정신보건사회복지사'로 인천 소재지의 한 사회복귀시설에서 근무하고 있고요.
정신 장애인들의 사회복귀를 위해 '직업재활'을 담당하여 미약하게나마 도움을 드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쑥뽕삼의 '쑥'작가와 인연이 있어서 막간(맛간이 아니에요) 인터뷰에 응했다고 하던데, 어떤 사이인가요?
글쎄요. 어쩌다 보니 우연히 반 오십살에 만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인연이랄까요?
당신은 24~25살 전후로
좋은 말로는 '내 의지대로', 나쁜 말로는 '내 멋대로'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실천에 옮겼다면서요?
내 멋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군대 전역 후 쑥 작가를 만날 때 인 듯 싶습니다.
저 나름대로 대학 생활을 충실히 해냈고, 주위에서 인정받으며 장학금을 받고 학교 생활을 했었어요.
그때는 왜인지 불현듯 <박수칠때 떠나라> 라는 말이 뇌리를 스치던 시기였죠.
그리고 저는 곧장 휴학했고, 환상의 나라 에버랜드로 훌쩍 떠나 1년간 기숙생활을 했어요.
어디 갈 곳도 없고, 쓸 일도 없으니 돈은 버는대로 생각보다 잘 모아졌고요.
저에게는 캐나다에 가 있는 후배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나도 500만원만 벌어서 캐나다로 간 다음에 불곰이나 보자"가 목표가 되더라고요.
저도 참 어이없는 놈이죠. 그러다가 에버랜드에서 알게 된 누나 한 명이 호주로 간다길래,
그럼 나도 호주나 가볼까? 싶어 캐나다를 잊고 호주로 가게 되었어요.
제정신이었나요? 한 잔 하고 인터뷰에 응하면 곤란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 또렷하고, 동시에 진지합니다.
그렇게 호주에 도착하고 나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떻게든 호주를 시작으로 대충 한 바퀴 돌자 싶었어요.
그리고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이 곳 저 곳 떠돌아 다니며
주방 보조일부터, 농장 허드렛일까지 마다하지 않고 덤비게 되었죠.
결국 주머니를 채워 꼬박 1년간 여행하게 되는데요.
저는 호주를 시작으로 발리 - 말레이시아 - 태국 - 캄보디아 - 싱가폴을 찍고,
다시 발리부터 호주 - 뉴질랜드 - 호주를 반복하는 코스를 다니게 되었지요.
그 순간을 담은 사진 몇 장, 공개해 줄 수 있나요?
그럼요. 몇가지만 엄선해서 공개해드릴게요.
그리고 여행을 끝내고 다시 돌아왔죠?
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뒤 1년 간은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죠.
저 역시 토익도 공부하고, 각종 자격증 취득 공부도 하면서 미뤘던 대학 졸업도 했죠.
그리고 취업도 했어요. 연봉을 쫓아 전공과는 무관한 서울의 한 회사에 입사했고,
입사 하루 만에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덜컥 들더군요.
하루만에요?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소주 한 잔 하고, 다시 현실을 받아들였나요?
아니요. 전 일을 정리하고 다시 대전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한 달 남짓 흔히 말하는 '잉여생활'을 누렸죠.
그리고 전공을 살려 수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취업했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야근을 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저는 이상하게 야근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 편이더라고요.
상당히 힘이 들어서 고민끝에 3개월 근무를 정리하기에 이릅니다.
혹시... 당신은 제가 모르는 부잣집 아들인가요?
아니라는 건 쑥작가가 더 잘 알고 있지요?
저는 수원에서 강남으로 옮겨 한 정신보건 센터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제 길을 고민하여 지금은 강동구에서 정신보건 수련을 받고,
정신보건사회복지사로 정착하게 된 겁니다.
어찌되었든 내가 내 인생을 선택 하긴 했네요.
저는 제 삶이 가장 다이나믹했다고 자부하며 살았는데, 당신도 만만치 않네요.
지금 나이가 스물아홉, 결혼 적령기의 사내인데 향후 1~3년 내로 결혼 할 생각이 있나요?
네. 드디어 내년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축하합니다. 저보다 먼저 어른의 길로 걷게 되었군요.
이런 당신의 어깨를 괜히 축 쳐지게 하는 질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었어요.
생각해보면 대한민국 남자에게 결혼은
어깨에 무거운 짐을 겹겹히 올리는 듯, 복잡한 무게감으로 다가온다고 하던데 동감하나요?
음... 어.... 제 어깨가 좁은 편이라 짐을 올리기는 무리가 있겠네요.
(말 없이 눈물을 훔친다)
지금껏 살아온 시간을 되돌려보니 마음에 박힌 가장 큰 돌덩어리 하나가 떠오르네요.
이건 나중에 쑥작가와 술 한 잔 하면서 얘기할까봐요.
네. 울지 말고요.
혹시 결혼의 무게가 점점 무겁게 느껴지거나, 현실이 부담스럽게 다가올때마다,
그때 한국을 떠나지 말고 일찍 취업할걸 싶은 생각이 들 때는 없었나요?
앞서 말한 것 처럼 저는 요즘 자주 제 인생을 돌아보고 있는데요.
그럴때마다 힘들고 복잡미묘한 감정이 소용돌이 칩니다.
제가 한국을 떠났던 일년 반이라는 시간은,
저의 인생에서 정말 행복하고 재미있던 시간인 동시에,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도 기억되네요.
인터뷰를 하면서 떠올리니 갑자기 마음이 울컥해서 더 이상 글을 이어가기가 힘들 정도네요.
나이가 드니 울보가 다 되었군요.
우리 예비신부의 허락하에(함께) 술 한 잔 기울이며 얘기 나눠봅시다.
자, 이제 인터뷰도 마지막을 향해 가네요.
결혼은 뭐다, 한 줄로 말하긴 어렵겠지만 지금까지 삶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철학을 담아 짧게 표현한다면요?
결혼은 내가 하는 건데,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 같은 거랄까요?
네. 그는 좋은 사내 친구(또는 울보)였습니다.
혹시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더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해주세요.
마법의 손으로 마법같이 편집해 드릴 것을(악마의 편집) 약속합니다.
이 글을 읽는 구독자 분들이 많이 많이 늘어나서 번창(?)하시고,
항상 파이팅 넘치는 쑥작가의 앞날에 무궁한 영광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세상을 살아온 시간은 30년.
부모님 말씀만 듣고 정해진 길만 가던 10대가 지나고,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밍숭밍숭한 시간을 보내던 20대 초반을 보내고,
어느덧 self choice를 할 수 있는 나이를 맞이했네요.
하지만 그것도 찰나의 시간이었다 싶어요.
나이를 점차 먹어가며 더욱더 이상과 현실을 저울질 하며, 더욱 신중히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왔습니다.
이제 선택하면 책임이 항상 제 뒤를 따르고 있다는 걸 잘 아는, 그런 나이가 되었네요.
아, 그런데 말이에요.
이 글을 쓰다 보니 다시 여행을 가고 싶어졌어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선택, 마음껏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으니까요.
자신을 인터뷰 하고 싶다는 말에, 재미있겠다며 기꺼이 인터뷰이가 되어준 친구의 마음.
질문지를 보내고, 답변지를 받아 읽으면서 괜히 가슴이 뭉클했다.
살면서 내가 내 주위 가까운 사람에게 '당신의 철학'을 묻는 일이
이렇게 날 뜨겁게 만들지는 모르고 시작한 일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철학을 저마다 갖고 살아간다.
내가 지금껏 모아 쌓아 둔 책 몇 권과 맞먹는 훌륭한 가치다.
바쁜 시간을 쪼개 의미있는 선물을 내게 해준 친구 김선호에게 감사의 마음을 다시 전한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너의 결혼식에서 펑펑 울면 넌 많이 곤란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