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나의 결혼 이야기

- 코뿔소 같은 여자와 토끼 같은 남자의 결혼

by 꼬마물고기

<오늘의 메뉴>

땅콩샌드, 아이스 아메리카노


남편과 처음 만난 날은 토요일 특근을 마치고 저녁 8시가 된 밤이었다. 우리 집 아파트 앞 작은 커피숍에서 딱 1시간만 차를 마시고 헤어졌다.


휴일에 근무도 했지만, 초여름이 다가오는 계절이라 모든 게 지친 하루였다.


"한 번만 만나라. 거절도 이제 못하겠다. 대충 차만 마시고 와."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나간 자리가 지금 내 가족을 만들게 되었다. 배우자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이었다. 물론 가족의 형태를 이제 단정 지을 수 없고, 나 역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혈연과 결혼이라고만 생각지 않는다.

부모, 형제 모두 내가 선택한 가족은 아니다. 그저 태어나보니 이 울타리 안에 구성원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배우자의 선택에 있어 신중했다. 모든 사람들이 신중하겠지만 나는 그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첫 가족이 될 사람이니 아무것도 생각지 말고 인간대 인간으로 만족할 사람이길 바랬다.

직업이나 돈은 나도 벌면 되는 거지. 그건 열심히 일하면 내가 만들 수 있지만 사람 그 자체는 내가 만들 수 없고 그저 만들어진 것을 선택해야 하니 더 어려운 것이었다.


그 날은 지친 하루였기에 나는 과묵했고 남편은 끊임없이 본인 이야기를 했다. 추후에 남편은 내가 본인의 이야기를 너무 잘 들어줘서 호감이 갔었다 했다. 하지만 연애 시작부터 요점만 말하라 다그치는 코뿔소가 될 줄을 몰랐을 테지.

시아버지는 가부장적인 분이셨고 시어머니는 그런 시아버지 말에 대부분 순응하셨다. 연애시절 그런 집안 분위기에 결혼을 다시 고민해야겠다 생각했었다. 우리 집은 엄마가 어릴 적 가정주부셨지만 아버지와 위치가 동등하셨다. 마치 아빠는 우리 엄마의 가정주부를 직업으로 인정해주시는 것 같았다. 엄마는 아버지를 스스로 존중해주셨고 주체적으로 가장으로 인정해주셨다. 집안에 문제나 고민이 생기면 네 명이 앉아 늘 이야기했고, 선거 시기가 오면 서로 다른 정치색을 가졌지만 지지하는 후보의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님은 자녀의 정치색이 다름을 인정했고 오히려 너희와 이런 주제로 이야기하니 뿌듯하다 하셨다.

한 번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네 명이 모두 지지하는 후보가 달랐는데

아빠는 내가 열심히 일해 너희 대학공부를 시키니 정치에 대해 서로 토론할 수 도 있고 가장으로 보람이 크다고 말하셨다.


결혼 6년이 다 되어간다. 아직 남편은 남편 그대로일 뿐이다. 우려한 대로 시댁의 가부장적인 분위기는 풍기지 않지만, 드러낸다 해도 나는 끊임없이 부당함을 요구할 테지.

처음 내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사고 쳤냐? 물었다. 그게 첫마디였다. 5월에 만나 그다음 해 10월에 결혼식을 했으니 이른 감은 있었지만 사람대 사람으로는 참 잘 맞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결혼 전 연애에도 굉장히 신중했던 내가 친구들은 의외였다고 했다.


직장, 차, 집 그런 시시한 것 말고,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말고, 사람 자체로 고르니 선택은 쉬웠고 신속했다.

둘 다 LP카페에서 맥주 마시는 것을 좋아했고 올드팝을 좋아했다. 집순이 집돌이 기질이 다분했고 야구 경기장에서 먹는 캔맥주를 즐겼다. 응원하는 야구팀까지 동일하니 완벽했다. 영화 취향은 서로 달랐지만 한 번은 이거, 다음은 저거.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고 지겨웠지만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시간을 내어 봐주는 수고를 해주었다. 정치색은 달랐지만 서로 지지하는 후보를 욕하지 않았고 선거철이 오면 진지하게 토론했다.


아직은 6년밖에 되지 않아 이 결혼의 결말을 모른다. 남편은 코뿔소 같은 나의 모습에 질려 토끼 같은 여자를 사랑할 수도 있고, 나는 어느 삶의 위기에서 남편이 질려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연애 때는 없었던 단단한 맹세가 있고 (아플 때나 힘들 때나 서로를 사랑하겠다는 약속) ,

어느 하루 주변 사람들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모이게 만든 수고스러움 속에 한 약속이 있으니 책임감도 있다.

그리고 둘이서 만든 가족에서 아이가 생겼으니, 그 아이가 적어도 독립할 때까지 존경할 수 있는 어른과 부모가 되어주어야 한다.


결말이 나오지 않는 소설을 읽어가는 기분이지만, 어떤 결말이든 정해지지 않았기에 오늘도 나는 성실히, 열심히, 즐겁게 보내길 노력한다. 열심히 한다 해서 결과가 무조건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으니깐.

내 삶에 지대한 지분을 차지하는 지금 이 가족의 울타리를 크고 웅장하진 않지만, 작아도 따뜻한 곳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열심히 가꾸고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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