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힘든 퇴근길에 위로가 되는 치킨.

- 모두 사이좋게 지낼 필요는 없어.

by 꼬마물고기


<오늘의 메뉴>

양배추, 파프리카 샐러드, 마늘 양파 장아찌,

순살 치킨(에어 프라이기 요리), 흰 밥


유독 퇴근길이 힘든 날이 있다. 지금은 남편과 맥주 한 캔을 먹으며 털고 잠을 자겠지만 이십 대에는 마냥 술로 지나가긴 어려웠고 특히 가족들에게 힘듦을 내색하기 싫었다.


대학생이 되어 과외 아르바이트가 제일 편하고 고효율 알바라고 했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사이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점이 잘 맞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당시 어려운 아이를 맡아서 그럴 수도)

그러다 동네 친구가 마침 던*도*츠에 알바 중이었는데 내가 비는 주말 타임에 급하게 사람을 구하고 있다며 권했다. 근무시간도 부담스럽지 않았고 서비스직은 해본 일이 없어 흔쾌히 면접을 보고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상상을 초월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도대체 이런 이상한 인간들은 그동안 어디 숨어 있다 이렇게 도넛을 사 먹으러 오는 거야."


같은 타임에 일하는 친구에게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거였다. 사십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당시 만났던 진상들을 떠올려 보면 아직도 저절로 고개가 흔들린다. 커피를 미지근하게 해 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아이가 손가락으로 쑤신 도넛을 당당하게 뭐가 더럽냐고 따지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당연히 도넛 값은 지불하지 않았고 사장님은 꺼내서 폐기하라 하셨다)


가장 기억나는 여자는 당시 30대 정도 보였는데 별일 아닌 걸로 시비를 걸다 결국 내가 도넛 가게에서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것을 무슨 범죄자인 것처럼 모멸감을 주던 사람이었다. 애써 웃으며 보냈고 뒤에 서있던 다른 손님에게 괜찮냐 위로받았지만 집에 가는 길은 모든 게 미워 보였다.

한 번도 직업에 귀천이 있단 생각을 안 했고 오히려 열심히 대학생활을 하며 친구들 자는 시간에 조금 더 사회생활하며 알차게 보나는 내 자신을 자랑스럽다 여겼는데, 내 일이 그렇게 보였나.


그런 이상한 사람을 만나 세상 모든 게 미 워보이는 날은 근처 치킨 집에서 한 마리 포장해서 집에 갔다. 휴일이라 날 기다리는 아빠, 엄마, 동생이 왔어? 힘들었지? 맞아주면 냉큼 치킨을 주면 그렇게 셋이서 즐겁게 먹었다.

"너는 안 먹어?"

"응. 하루 종일 단 냄새 맡아서 그런지 식욕이 없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 치킨을 먹는 가족을 보면 그 이상한 여자도 어느덧 기억에 희미해졌다.

힘든 일이 있었겠지. 애인하고 헤어졌나. 그 애인이 나랑 좀 닮았나?

아님 부모님이 많이 아프신가. 그런데 병원비가 없고 빌릴 곳도 없어서 절망스러웠나.

그 사람이 내게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한 이백 개를 만들어 봤다.

애써 말도 안 되는 그 사람의 변명을 내가 상상하며 잊지 뭐. 너그러운 내가 용서해준다. 그랬었다.

아버지들이 유난히 힘든 날 퇴근길에 무언가를 사서 가족들이 먹는 모습을 보며 고단함을 잊는다는 말을 이십 대 내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날은 퇴근해서 현관에 덩그러니 놓인 지쳐 보이는 아빠 엄마의 신발을 보며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나서 다행이야. 우리 아빠 엄마 , 우리 꿀돼지(남동생)가 겪지 않아 천만다행이야.

내가 만나서 잘 지나갔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야. 그렇게 내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신발을 벗었다.


아침에 치킨에 밥을 먹으니 이십 대 내가 유난히 힘든 날 포장했던 치킨이 생각났다. 가끔 그런 날이며 아빠는 별로 먹지 않았고 괜히 내 기분을 살피셨다. 돌이켜 보면 아빠도 내가 왜 치킨을 사 왔는지 알았을 테지.

그리고 자식이 같은 서글픔을 갖고 집으로 온 날, 부모로서는 유쾌한 날을 절대 아녔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성장하기 위해 겪을 배움이라면 마음 아프지만 모른척하고 지켜봐 줘야겠지.

비록 넘어져서 상처 난 것은 알지만 애써 뒤에서 달려가지 않고 일어서서 툭툭 털고 다시 걸어 나갈 때까지 지켜봐 주는 마음.


사람이 태어나서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모두 선택의 문제이지 인생에 필수한 과정은 아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아이를 양육해보니 인간관계의 넓은 포용력이 생긴 기분이다. 지나와보니 내가 좀 더 무심히 넘겨줄걸, 나는 미숙한 인간이라 너그럽게 받아들이진 못했지만 비난할 필요는 없었는데.

조금의 인내심이나 기다림이 생긴 기분이다.


인과응보라고 했다. 인생에 원인과 결과는 서로 물려 있으니 그녀도 내게 나쁜 것을 뿌렸으니 아마 다른 곳에서 그걸 본인이 거두어 갈 것이다.

아니면 어쩔 수 없고. 그것까지 생각하며 그녀를 떠올리고 싶진 않다.

아이에게 공부도 뭐든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적당히 하면 되겠지만 사회 구성원으로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사람이 되어라 말한다. 시간이 지나 나 역시 다른 게 변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말이나 행동으로 남에게 상처 주지 말라고, 어쩔 수 없이 실수를 했다면 바로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아줄 때까지 천천히 기다리며 반성하라고.

그리고 모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낼 것 없다고 말한다. 노력해봤지만 도저히 나랑 맞지 않는다면 사이좋게 가깝게 지내지 않아도 된다고, 누구나 맞고, 안 맞는 사람이 있는 거라고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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