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유치원 땡땡이 치는 날.

-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보호자가 될게.

by 꼬마물고기

<오늘의 메뉴>

아침은 아이가 남긴 밥, 그 이후 딸기, 오렌지, 사과


휴직 전에 일을 할 때 20년도 코로나가 시작되고 나의 일도 무척 바빠졌다. 그 전엔 가정과 일의 양립이 대부분 가능했지만, 코로나 19가 터지면서 주말이나 야근이 늘어났다. 다행히 집 근처에 도보 10분 거리 안에 친정과 시댁이 있어 도움을 요청했지만 피곤함은 어쩔 수 없었다.

유치원 준비물을 잊는 날이 생겼고, 아이의 손톱을 정리하지 못한 채 등교시킨 일이 발생했다. 어릴 적부터 알림장이나 숙제, 준비물에 철두철미(?) 했던 내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도 늦게 퇴근해서 부랴부랴 아이를 찾아 목욕을 시키는데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콧물나?"

"응. 아침에 내가 말했잖아. 근데 엄마가 나 막 보냈잖아."

아무렇지 않게 물장난을 하며 말하는데 마음이 아렸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조금의 감기 증세가 있으면 등원을 시키지 않아야 하는데 미처 체크를 하지 못했다.


"승범이랑 우석이는 요즘 잘 안 와. 친구들은 조금만 아파도 유치원 안 오는데 나는 가야 해. 엄마가 일하니깐."

"가고 싶지 않은 날이 있어?"

"응. 몸이 아플 때는 나도 집에 있고 싶어."

"엄마한테 말하지. 그럼 할머니 집에 데려다주는데."

"엄마는 맨날 나한테 '빨리빨리'라고 하잖아. 내 말은 안 듣고."


조금 잘못되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루하루 나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정말 늦은 밤 이불 자리에 누우며 오늘 하루도 치열하게 보냈어.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며 1분 1초도 낭비하지 않는데. 정작 아이는 행복하지 않는구나. 나 역시 행복하지 않는구나. 그럼 무엇을 위한 하루였지?


휴직을 하고 가장 만족스러운 건 아이와의 대화나 관계다. 아침에 더 이상 재촉할 필요가 없고, 화를 내며 빨리빨리라는 말을 안 해도 된다. 양말을 스스로 신도록 기다려주고, 오늘은 단추 채우기를 느긋하게 기다리며 가르쳐준다. 숟가락에 밥을 한가득 담아 아이 입에 급하게 넣지 않아도 된다. 국에 밥을 말아주지 않고 반찬과 음미하며 먹으라고 권한다.


"나 오늘은 유치원 가기 싫어. 엄마랑 있고 싶어."

"그래? 우리 땡땡이 치고 시장이나 가볼까?"


곧 돌아갈 직장이 있고 이런 여유가 한정적인 시간이긴 하지만, 치열한 지난날을 보내봤기에 지금이 더 소중하고 더 즐겁다.

조금 더 크면 방문을 닫고 나랑 대화하기 귀찮아하겠지.

엄마가 뭘 알아? 그만 말해.

요런 못된 말을 하다 나한테 혼나겠지만 그 날이 온다는 건 또 아이가 자랐다는 거겠지. 내가 앞으로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조금 더 줄어들었다는 거겠지.


지금을 잘 즐기자. 누군가는 아이의 오늘과 매일 이별하는 거랬다. 오늘의 아이는 내일 또 자라 없어지고 매일매일 지금 아이와 이별하는 일이라고 했다. 오늘의 아이가 사라지기 전에 더 사랑해줘야지.

아이는 오직 내 선택으로 세상에 나왔으니, 적어도 이 세상에 왜 날 태어나게 했냐 원망하지는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지. 나는 결혼도 출산도 내가 선택한 일이지만, 아이는 그런 선택권 없이 내게 왔으니 책임감을 가지고 보살펴줘야지. 이 세상이 비록 매일매일 열심히 해야 할 일이 한가득이고 즐거움보단 억지로 하는 일이 더 많지만 그래도 가끔 오는 그 행복은 진짜 벅찬 일이라고 가르쳐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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