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로마의 휴일
- 이루어지지 않아 더 아름다운 법이지.
<오늘의 메뉴>
대패삼겹살 김치볶음, 양파 장아찌, 진미 쥐포 무침
내 기억에 초등학교 6학년 무렵 KBS에서 흑백영화를 몇 편 저녁에 방영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티파니에서 아침을, 로마의 휴일 등이었는데 꽤 늦은 저녁 엄마와 열세 살의 나만 거실에 남았다.
그 날은 어쩐지 엄마가 내게 빨리 자라 재촉하지 않았고 나도 흑백영화를 흥미롭게 시청했다.
너무 유명한 이야기지만, 앤 공주의 유럽 순회 중 작은 일탈을 그린 영화다. 오드리 헵번의 아름다움은 말할 수 없고, 영화 속의 배경 역시 말하는 법을 잊고 영화를 보도록 만들었다. 특종을 쫓는 기자 조와 우연한 만남에서 결국 사랑하게 된다는 진부한 러브스토리이다. 지금은 너무 진부해. 시시한 이야기지만 15세 시청 관람가에서 대부분의 미디어를 제한당했던 열세 살에겐 정말 흥미롭고 가슴 두근하는 영화였다.
그때는 컴퓨터가 있었던 집도 드물었고 휴대폰(TTL 스무 살의 자유란 익숙한 광고)도 중학생이 되어 가질 수 있었으니 텔레비전은 정말 요술 상자였다. 공중전화에서 딸깍딸깍 동전 넘어가는 소리에 친구와 다급하게 용건만 말하기도 했고 연말이면 크리스마스씰을 구입해 친구 편지에 우표와 함께 붙여 보냈었다.
매체의 기술이 다양하지 않아 접할 문화도 한정적인 시대였지만 뭐든 하나를 꾸준히 집중해서 느꼈던 것 같다. 지금은 워낙 접한 것들이 눈 깜짝하는 사이 쏟아지는 때라 드라마도 친절하게 요점만 편집되어 중요 장면만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만 보다 보니 주인공의 세심한 감정을 읽기 어려워졌고 드라마나 영화의 줄거리 의도도 깊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에 앤 공주가 유럽 방문 중 가장 즐거웠던 도시가 어디였냐 묻자
"살아있는 한 이곳의 방문을 기억하겠어요." 답한다. 기자 조와 앤 공주의 신분으로 돌아가며 영화는 끝이 난다. 열세 살의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 나중엔 화가 났다.
"왜. 헤어지는 거야? 어떻게 헤어질 수가 있어? 무조건 함께 하고 끝나야 하는 거 아냐?"
그때까지 내가 본 동화책이나 만화는 모두 해피엔딩이었다. 마지막에 늘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이 났었다. 당시 나는 해피엔딩 중독자였는데 어떤 이야기이든 시작 전에 마지막을 먼저 보고 새드엔딩이면 시작도 하지 않았었다. 뭐든 끝은 좋게, 아름답게 끝나야 했다.
열심히 노력한 주인공은 무조건 성공해야 했고, 배신당한 여주인공은 마지막에 철저한 복수가 이루어지고 행복해야 했다. 인물들의 모든 오해는 누군가 죽기 전에 후련하게 해소되어야 했다. 출생의 비밀 역시 완벽하게 해소되어 누군가는 죄의 대가를 달게 받고 끝나야 했다.
방방 뛸 정도로 엔딩에 불만을 갖던 내게, 당시 서른 후반의 엄마가 말했다.
"이루어지지 않아 아름다운 거야. 너는 아직 모르겠지만."
엄마 아니야. 이루어지지 못한 건 슬픈 거야. 두 사람이 헤어진건 무척 안타까운 일이고, 오래오래 둘이 행복하게 살 수 없게 된 건 비극이야. 사랑하는 사람은 무조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같이 늙을 때까지 살아야 해.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분한 마음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엄마의 나이가 된 나는 이제 그 말을 안다. 이루어지지 않아 아름답다는 말을 이제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이렇다고 모든 이별이 아름다운 건 아니지만, 적어도 앤 공주와 조 기자가 함께 했다면 그 뒤에 현실은 무척 척박하고 구질구질해지겠지. 로마의 추억도 새까맣게 바래져 서로 사랑이 아닌 증오만 남을 수 있겠지.
사랑은 아름답지만 때때로 두 사람의 집으로 날아오는 고지서들은 서로를 밉게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굳이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이 곳을 기억하겠다는 앤 공주도 그때의 이별이 있어 가능한 대사이겠지. 가끔 교복 입었을 때 좋아했던 소년들이 떠오르면 그중의 누군가와 결혼하지 않아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나에게 영원히 넥타이 교복 입은 소년이듯 그들에게도 나는 리본 교복 입은 단발머리 소녀겠지.
지금 남편에게 코뿔소 같은 여자가 되어 매사에 진지하고 치열하게 사는 모습을 들키지 않아 다행이야.
쉬는 시간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소니 cdp로 듣던 여자아이로 남아 더 아름다울 수 있지.
그렇다고 사회인이 되어 만나 결혼을 한 남편과 나의 현실이 매사 각박하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서로에게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되는 짝사랑이나 풋사랑의 추억 정도는 마음속 상자에 깊이 넣어뒀다가 삶이 각박해질 때 잠시 안주 삼는 것도 좋은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 마음속에 달리기를 하며 내 운동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닌 소년들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그 소년의 달리기를 지켜본 내가 그리운 거겠지. 그때의 미성숙했지만 용감하고 서툴지만 지금보다 정의로웠던 내가.
그때 내 운동장에서 열심히 달리기를 했던 소년들도 행복하기를.
늘 건강하고, 좋은 일만 가득한 앞날이 계속되길 빈다.
'둘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를 같이 쓸 수 없었지만,
'각자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