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시절 인연'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물건도 내가 필요한 장소와 시기가 있듯이 인간관계 역시 서로가 맞아떨어지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건과 사람을 같이 비교하기엔 뭔가 이상하지만, 친구관계만 보아도, 죽음까지 같이 할 것처럼 화장실도 같이 가다가 취업, 연애, 결혼, 육아를 하는 시기가 서로 맞지 않으면 대화의 몰입이 조금 없어지고 연락의 횟수가 줄어든다. 하지만 그러다 몇 계절이 지나고 만나도 너의 어제는 어땠니? 너의 지금은 어때? 스스름없이 묻고 챙기는 사람들.
지금의 내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면 늘 믿지 않지만, 나는 태생이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면서 받아쓰기 시험지도 다른 친구와 바꿔주는 답답함에 기겁한 엄마의 부단한 노력으로 2학년엔 학급 부회장이 되었고 3학년엔 학급 회장이 되었다.
성격이 바뀐 건 절대 아니고 단지 조직에 잘 어울릴 수 있는 사회성 기술을 습득한 거라 요즘 생각한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 포토 알이 2-30개 그려진 프린터에 그날그날 발표한 횟수만큼 스티커를 붙여주고 그림이 완성되면 원하는 것을 보상받았다. 거짓말로 발표 10번 했다 해도 엄마가 알 길이 없지만, 태생이 소심하고 여린 나는 독립투사 마냥 비장하고 정직했다.'오늘은 한 번도 못했어 ㅠㅠ 내일 대신 3번 손들게.')
우리 세대에는 자소서에 늘 들어가는 멘트가 있었다.
'열정적이고 친화력 좋은 인재'
대학생활의 대부분의 시간을 경험(프로젝트 공모전, 인턴 같은 한 줄 넣을 수 있는 일)과 인간관계 넓히는 곳에 써야만 열정적인 젊은이가 되는 듯한 시대의 분위기였다.
아르바이트까지 미리 원하는 기업 계열사에서 하던 동기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뭔가 중독된 듯이 그 인간관계를 넓히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싸이월드'의 일촌 숫자에도 열 올렸고, 괜히 메뉴 몇 개만 열어두고 시크한 척하면서 스크랩 수와 일촌 맺기 신청을 때때로 확인했더랬다.
몇 마디 안 하고는 " 그런데 너 전화번호 뭐야? 우리 번호 교환할래?" (그 시절 단지 전화번호가 궁금했을 뿐인데 나 여자 친구 있어하던 남자아이들도 꽤 있었지. 그냥 네가 내 전화번호부 347번이 되었음 했는데 말이야.)
지금도 들으면 알만한 기업 면접에서 각자 휴대폰을 꺼내어 지금 저장된 전화번호가 몇 개이냐? 그중에 면접관이 고른 사람과 스피커 통화를 하는 이상한 일도 있었다. 주어진 상황은 상대에게 말 안 하고 내가 지금 면접 대기 중인데 나에게 용기를 줘! 지금은 알 수 없는 오글거림의 극치인 상황극.
(지금도 이런 면접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당시 직렬이 영업직도 아니었다. 독서실에 있던 임용고시 준비하던 진아가 갑자기 소환되어 어색한 파이팅! 을 외쳐주었지. 널 데려가는 회사 아주 운이 좋은 거야. 국어책을 읽듯이 드라마 대사를 외치던 진아. 내가 어설픈 서울말을 쓰는 걸 보고 이거 이상한데 촉이 왔다던 센스쟁이)
그 면접에서 전화번호부 중에 면접관이 임의로 통화버튼을 누르는 것을 보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60명 정도는 삭제했었다. 괜히 다른 면접에 가서 나도 옆에 지원자처럼 창피를 당하면 안 되니깐.
(옆 지원자의 통화자는 끊임없이 ' 올드보이' 최민식 대사처럼 너 누구냐? 했었다)
하지만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날 수 없듯이 인간관계 역시 내가 원하는 것만 엮을 수는 없다. 민원이나 일적인 만남들은 어차피 나의 급여의 대가를 위한 부분이라 감수해야 하지만,
이를테면 아이나 남편과 관계된 인간관계다.
다행히 남편의 친구들, 그들의 와이프들은 나와 꽤 잘 맞아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문득 그런 의심이 든다.) 코로나 전엔 자주 모임을 했었다. 하지만 아이와 관련된 모임은 날 꽤나 난처하게 했다.
"엄마는 왜 준석이 엄마랑 친구 아니야?"
"왜?"
"준석이 엄마랑 지후 엄마는 친구라 유치원 마치면 매일 같이 키즈카페 간대. 매일 다음날 둘이 이야기하면 나만 모르는 이야기야."
이런 비슷한 일들이 되풀이되면서 나도 부단히 노력했지만 내가 교육에 관심이 없는 것인지, 내가 독특한 사람인지 도통 겉돌기만 했다. 여섯 살이라 아직 영어 과외가 필요한지 모르겠고, 한글을 완벽하게 습득해야 할지 모르겠다. 코로나 때문에 아직 태권도 도장이 조심스럽고, 그냥 저녁 먹고 2-30분 스티커 붙이는 학습지 2-3장 나랑 도란도란 풀고 동화책 3권 읽는 것으로 충분한 나이인 것 같다.
거기다 남편과 친정, 시댁에 대한 이야기도 내 인생에 주된 관심사가 아니라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도통 없다. 남편의 성과급에 대해 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 지 모르겠고 성과급은 대출금 상환과 미래를 위해 비축해뒀기에 무슨 가방을 받았냐 물으면 그런 거 없다 말하기도 이제 내가 어색해진다. 웃긴 건 가방에 전혀 관심도 없다 괜히 저녁에 죄 없는 신랑이 밉게 보여 트집을 잡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그런 여자들처럼 가방을 못 받을 건 뭐야 하면서. 사실 그런 가방 몇 개 사봤지만 어디 가방이 다칠 까 들고 다니기 조심스럽고, 가방을 메면 내가 단지 가방걸이 같아 잘 사지 않는 건데.
모든 아이 엄마들의 모임이 이런 소재만 대화한다는 건 아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의 대화 취향이 그저 나랑 안 맞았음을 알아주길 바란다.단지 내가 이 모임의 사람들과 서로 안 맞았을 뿐이다.
아이 때문에 연결된 모임이지만, 엄마로서 나, 어제 괜찮게 본 프로그램 이야기를 하려다 너무 동떨어진 주제라 다시 조용해진다. 그래도 이런 것도 내가 부모라면 애써야 할 부분이지. 아이를 위해 노력하자.
그러다 양희은 님의 인터뷰를 우연히 읽었는데 열심히 가장으로 20대를 보내다 30대 결혼을 하고 이제 나로 살아야지 했는데 난소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지금은 잘 이겨냈는데 그때 생각한 것이 많은 인간관계나 오지랖 넓은 것이 다 소용없다는 것이었다. 인생은 한 두 사람 잡고 사는 거다.
맞는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다.
전화번호부를 열심히 채우던 20대에는 정작 내가 못나 보이는 날, 한심함을 털어놓을 목록이 몇 개 없었다. 그룹 설정도 몇 개만 즐겨찾기로 등록하고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쓰지 않는 그룹으로 넘어갔다. 어쩔 땐 도대체 누구인지 몰라서 저돌적으로 그의 번호를 묻고 수집할 때 메모에 만난 모임과 날짜, 그 사람과의 대화를 대충 기록해두기도 했다.
엄마랑 얼마 전 둘이서 캔맥주를 마시며 나의 이런 고민을 말하자 환갑인 엄마가 '부질없데이' 말했다. 조금 의외였다. 우리 엄마는 늘 마당발이었다.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학급 친구들 엄마들이 우리 집 거실에 매번 한가득 앉아 커피를 드시고 계셨다. 그리고 아침에 별로 친하지 않던 아이가 내게 와서 너희 엄마랑 우리 엄마랑 친하대. 그러니 너도 나랑 친하게 지내자 그런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부질없다 하다니.
엄마 말로는 아직 삼십 대인 내가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면 나의 세계도 좁아지니 너무 좁게 문을 닫지는 말고 누군가를 위한 인간관계는 안 해도 된다는 것이다.
"내가 너희 학교 다닐 때 그렇게 발이 넓어 교육정보도 듣곤 했지만 결국 타고 난데이. 뭔가를 위한 인간관계는 결국 끝이 좋지 않고, 남는 것도 없다."
마당발이라고 생각했던 엄마도 결국은 보니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원하는 사람이었고 그 옛날 자식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학부모회 임원도 맡아봤지만 환갑이 된 지금 후회하는 부분이라 했다. 물론 동생과 내가 소위 명문대를 졸업해 사회에 유명인사가 되었다면 엄마의 대답은 달라졌을지 모르나, 아무튼 무언가를 위한 인간관계는 별로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요즘 나는 조금 불편한 모임은 정중히 거절하고, (코로나의 핑계는 꽤나 유용하다)
몇 번 만나봤지만 어색함이 도저히 줄지 않는 관계라면 굳이 노력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관계를 정리하니 지금의 일상도 많이 가벼워졌다. 휴대폰에 의미 없는 전화번호는 삭제했다. 그게 비록 친척이라도 남보다 연락하지 않은 기간이 더 길다면 삭제했다. 굳이 그도 나의 사진을 카톡에서 보고 싶진 않을 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나의 세계가 더 발전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한다. 내 취향이 무조건 좋은 사람만 골라낼 수는 없으니 완벽하게 문을 닫고 엄격하게 만남을 제한할 필요는 없다.
후반이지만 아직 삼십 대이고, 좀 더 배우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으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돼 누군가를 위한 만남은 굳이 하지 않아야지. 목적을 가지고 시커먼 속을 손안에 숨기고 만드는 인간관계가 과연 순수하다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