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뒷문 말고,정문으로 당당하게 들어가라.

by 꼬마물고기

<오늘의 메뉴>

머위나물무침, 양배추 샐러드, 양파 장아찌


"그만 부지런 떨어라."

"그만 움직여."

"좀 가만있어봐."


대학시절. 유독 친구들에게 많이 듣던 말이었다. 우리 학번 때 인턴, 공모전 단어 자체가 생소한 시기였다. 우리가 졸업할 무렵 '알파걸'이라는 단어가 생기고 자소서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덩달아 그 내용에 쓸 수 있는 인턴, 프로젝트, 공모전 경험이 중요시되었다.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놀아도 된다 파와 일치감치 휴학해서 공무원 준비하자 파로 단순히 나뉠 때 그 생소했던 인턴, 공무전에 응모하며 바삐 지냈다. 학기 중보다 그러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방학 시기가 더 바빴다. 한두 달 그 회사에서 간접적으로 사회생활도 해보고 임시였지만 그 회사의 사원증을 목에 걸로 광화문을 걸어 다녔다.

그 사원증을 임시로 목에 걸고 다양한 학교, 지역의 사람들과 지내기 위해서 학기 중 나는 끊임없이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봐야 했다. 그때 내가 쓴 ktx 요금이 포인트 적립이 되었다면 몇 번은 공짜로 기차를 탔을 텐데.

방학의 그 경험 하나를 위해 학기 중에 과장을 조금 보태 5-60개의 지원서를 냈어야 했다. 그럼 겨우 1-2개가 연락이 닿았고, 어떤 방학은 모두 불합격되어 그냥 집에서 아르바이트나 여행을 하며 보냈다.


어릴 적부터 한 가지 직업만 생각했지만 현실은 높고 내가 그 높은 벽을 간단히 넘을 주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 한 다리를 늘 취업하기 그나마 유리한 상경대에 넣고 있었다. 당시 상경대 한 선배가 너같이 한쪽 발 담그고 우리 과에 다니는 애들 재수 없다 그런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때 나는 내가 너무 열심히 살아서 질투하나? 나 그 정도로 열심히 살고 있는 거야? 그러면서 넘어갔다.


그런데 이 인턴의 신분증의 뿌듯함은 길어야 2 달이었다. 나갈 때 항상 반납해야 하는 내 것이 아닌 빌린 물건이었다. 내 노력과 능력은 고작 두 달짜리 인 것 같아 인턴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내려올 땐 늘 마음이 헛헛했다. 인턴을 시작하면 인턴 동기들 사이에서 가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 그거 알아? 인턴 기간 동안 눈여겨보고 공채 때 바로 채용한다더라. "

그런 게 어딨어. 하다 정말 모두 전투적으로 열심히 했었다. 그러다 보니 일이 아닌 조직 안에서 사적인 부탁도 열정을 다했다. 그냥 단순한 회식도 근무의 연장이 되어 노래방 선곡까지 며칠 고민했었지.


그냥 좁은 세상에서 나아가 다양한 사람들을 사귀고, 여러 계열 직군의 업무를 경험하며 내 진로를 명확하게 설계해야지 했던 목표는 사라지고 점점 치사하고 유치해져 갔다. 더 눈에 들어야지. 30분 일찍 출근하면 더 좋아하시겠지? 이번 회의 준비는 완벽하게 세팅해야지.

대리님은 오후에는 커피에 시럽 들어가시는 걸 꼭 먹으셨지.

별 일 아닌 거에 의미를 두고 작은 일에 열정을 쏟으니 결국 고갈되는 때가 오고 내 기대대로 나의 입지가 튼튼하지 못하면 좌절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인턴들의 그런 불안하고 불안정한 마음을 이용하는 조직도 참 많았다. 괜히 시키면 다 할 줄 알면서 '이런 것도 부탁해도 되나?' 하면서 불편하고 하기 싫은 일을 주는 사람들이 꼭 있었다.


나중에 우리 회사에 청년인턴이 와서 몇 개월 할 때 너무 열심히 해서 보는 내가 짠했다. 나도 저랬지. 고작 생수병 옮기기에도 성의를 다했지. 동료가 쟤는 너무 열심히 해서 부담스럽더라. 좀 속이 시커먼 애 같아. 하길래 내 이야기 마냥 욱했었다.

" 열심히 안 하면 뭐라 하실 거면서. 오히려 우리가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인턴 선생님과 둘이 짐을 나르면서 "열심히 하는 거 너무 감사하지만, 그럴 필요 없는 자리다. 그 시간에 본인 이력서도 쓰고 본인 일에 더 집중해라."라고 하려다 그만뒀다. 꼰대처럼 오지랖 부리는 거 같아서. 그리고 이 분은 내 이십 대처럼 시커먼 속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순수하게 열심히 하는 사람일 수 있다.


지 버릇 개 못 준다고 나 역시 지금 자리에 오기까지 그냥 열심히 했다. 남들이 부지런 그만 떨어라 해도, 내 속은 비록 시커먼 마음일지라도. 마음 한편엔 열정 같은 소리 집어치워라. 하면서도 오늘도 열심히. 내일도 열심히. 그냥 어제오늘 열심히 눈높이 3장 풀었는데 내일도 3장 풀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대학생활을 했지만 취업시장에 정식 사원증을 드는 일은 동기들보다 늦었다. 동기들도 의외라는 소리가 내 뒤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학과실에도 들어가기 싫어 복수 전공하는 상경대 사물함을 신청하기도 했다. 왠지 책을 꺼내러 들어가면 내가 나가고 "쟤는 그렇게 부지런 떨더니 아직 뭐 된 게 없냐." 할 것 같아서. 자격지심이다. 정작 남일에 관심 없는 졸업반 처지였는데.


어느 날 밤. 거실에 대장곰(아빠)이 티브이를 보고 엄마와 동생은 자고 있는 밤.


뜬금없이

"아빠 주변에 아시는 분 있지 않아? 아빠 동기 분들 이미 높은 자리 올라갔으니 내가 이력서 접수하면 연락 좀 해주면 안 될까?"


지금도 그 말은 쉽게 나온 게 아니라 무척 절실했다. 양심적으로 살아야 해. 사람은 신념을 지켜야지 온갖 깨끗한 척 고고한 척하던 내 입에서 나온 더럽고 냄새나는 말이었다.

내 말이 끝나고 0.1초도 안되어 대장곰이 날 쳐다보지 않고 티브이를 보며 말했다.


" 코뿔소야. 정문으로 들어가라. 치사하게 뒷문으로 들어가지 말고. "


얼굴이 너무 화끈거려 거실에 아빠와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얼마나 더럽고 치사한 말이었으면 아빠가 내 눈도 보지 않고 저런 말을 하실까. 열심히 일해서 대학 공부시켰더니 저런 수준 떨어지는 말을 하는 게 내 딸이라니. 이렇게 생각하실 까 부끄러워 벌떡 일어나 방으로 냉큼 들어왔다. 그때부터 내 마음에 치사함이 생기면 아빠가 말했던 "정문으로 당당하게 들어가자." 수없이 되새겼다.


요즘 부정 채용에 대한 뉴스를 보면 그때 일이 많이 떠오른다. 우리 대장곰이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바르지 못했다면 우리도 뒤늦게 저 뉴스의 주인공이 되어 불명예스러웠겠지. 그리고 그땐 내가 어떤 비열한 방법을 쓰더라도 나만은 합격해야지 했었다. 조금 어른이 되어보니 비열하게 내가 뺏은 자리를 누군가는 억울하게 도둑질당했겠구나. 얼마나 나쁜 짓이야.


지나와보니 나의 미련한 부지런함이 무기가 되는 순간들이 있다. 원했던 부서에서 익히 부지런한 거 알고 있어요. 같이 일할래요? 하기도 하고, 남들을 외면한 아이디어나 공모전에 되어 생각보다 큰 상을 탄 적도 있었다. 그러니 젊은 그대들도 열심히 하세요. 하는 건 아니고, 그 열심히를 나를 위해서 하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를 위해, 어떤 자리를 따기 위해 한 열심히는 결과에 따라 무척 실망하게 만들었고 내 노력은 고작 수준이 이정도 였어 평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 뜻 없이 그냥 열심히 하는 건데? 어제도 눈높이 3장 풀어서 그냥 오늘도 3장 풀어두려고.

그런 의미 없고, 목적 없는 열심히는 결과가 좋든 나쁘든 그 자체로 만족감이 든다.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진짜 쿨하고 멋진 말이다. 이십 대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이 말을 진짜 전해주고 싶다. 그렇다면 당시의 나는 아마 진정 나를 위해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했을 것이고, 그렇게 좌절하거나 스스로 실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흔들거리는 청춘들을 이용한 시커먼 어른들의 부당한 요구에도 웃으며 속으로 욕해줄 테지.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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