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고 문득 김밥이 먹어 싶어 졌다. 손도 많이 가고 오늘은 너무 즉흥적인 메뉴라 집에서 할 수 없으니 간편하게 사 먹자.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식당 홀에 우리 아이와 비슷한 또래와 아빠가 이른 시간부터 돈가스를 먹고 있었다.
"그렇게 먹지 말고, 이렇게 고기에 소스를 흠뻑 찍어서. 어때 더 맛있지?"
그 모습이 뭐라고 너무 이뻐서 눈이 시렸다.
부모님은 디즈니 영화가 개봉하면 우리 남매를 예쁘게 입혀 시내 영화관에서 보여주곤 하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이었다.
회사 출근한 아빠를 시내 극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엄마는 시간 맞춰 가기 위해 우리 남매 옷 중에 가장 이쁜 옷으로 입혀 택시를 잡았다.
깜깜한 극장 안에서 아빠 없이 셋이서 영화를 보는데 아빠가 허둥지둥 양복 재킷을 손에 들고 우리를 찾아 앉았다. 한 번도 다른 곳을 보지도 않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우리를 단번에 찾아주셨다.
영화를 보고 항상 정해진 코스는 우리가 사는 곳과 아무 상관없던 '명동 돈가스'였다. 아빠는 나랑 동생이랑 공평하고 반듯하게 돈가스를 먹기 좋게 잘라 주었다. 아빠 엄마가 고기를 안전하게 잘라주는 동안 동생과 나는 잔뜩 흥분하여 좀 전에 본 날아다니는 양탄자, 사람처럼 말하는 주전자와 찻잔, 아빠 사자의 죽음을 서로 주고받았다. 그리고 아빠 엄마가 반듯하게 잘라준 따뜻한 돈가스를 먹으며 편안함을 느꼈다.
집은 내게 안전하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었다. 어릴 적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집은 그런 곳이라고 착각했다. 점점 클수록 나와 동생이 얼마나 운이 좋은 아이였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우리 아빠 엄마는 정말 부모의 자격이 되어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양육한 어른들이었다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기 전에 자격증 시험을 치른다면 단번에 시험을 통과해서 아이를 양육하는 성숙한 어른들이었다.
내 기억에 늘 아빠 엄마는 어리고 덜 자란 우리 남매가 독립할 수 있도록 보호해주고 사랑해주고 지지해줬다. 잘못도 엄격하게 혼냈지만 때리거나 욕하기보다 왜 그랬을까? 너 대체 무슨 마음이었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네가 반성할 수 있을까? 우리가 혹시 너한테 무엇을 잘못했었니? 같이 고민하고 같이 생각해주셨다.
예전 첫 직장에서 상사가
"코뿔소씨 집안은 내가 잘 모르지만 뭐든 넉넉하게 자란 것 같아요. 경제적인 부분이 아니라 마음이 넉넉한 부모 밑에서. 그런 게 팀에서 많이 보입니다. 부모님께 감사해야겠네요."
애정이 넉넉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지만 우리 남매는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했고, 인격적으로도 칭찬받을 만큼의 성인으로 자라진 못했다. 그러고 보면 선천적인, 유전적인 요소가 이미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결정된 것 일까 김새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좋은 부모, 따뜻한 가정에서 성장했으니 그래도 지금만큼의 어른이 되었겠지.
가끔 꿈을 꾼다. 감기에 걸린 여섯 살의 내가 하얀 리본이 달린 잠옷을 폭 젖을 만큼 땀을 뻘뻘 흘리며 아파할 때 젊은 우리 엄마가 물수건을 바꿔주며 날 내려다는 모습을.
열세 살에 전기선으로 장난치다 아파트 동 전체 정전이 되어 쫓겨나 어둑한 저녁 아파트 놀이터에 앉아 있을 때 퇴근길 아빠가 영웅처럼 나타난 일.
" 우리 딸! 오늘 크게 한 건 했다면서? 집에 가자. 우리 밥 먹야지."
지금의 내 나이였을 아빠 엄마는 나보다 더 성숙하고, 더 강했던 것 같은데. 그때의 나이가 된 나는 뭐든 어설프고 깊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흔들거린다.
별 일 아닌 일에 아이에게 화를 내곤 혼자 설거지를 하며 내가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고민한다. 이미 부모가 된 이상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지만, 의미 없는 고민인 줄 알지만 그래도 가끔 스스로 실망스러울 때 어른의 자격, 부모의 자격에 대해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