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코뿔소가 아닌, 나무늘보 아침식사.
- 중요하지 않은 마음은 없어.
<오늘의 메뉴>
가지전, 호박전, 김치전
"엄마는 코뿔소 닮았어."
아이가 어느 날 닮은 동물 이야기를 하며 나를 코뿔소라고 했다. 남편을 토끼, 친정엄마를 공작새, 내 남동생을 곰이라고 한 것에 비해 너무 예상밖에 비유라서 충격이었다.
그다음 날 출근을 해서 직장 동료들에게 말하니 다들 깔깔 넘어갔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받아 술을 자주 마셨더니 방심했나. 다시 다이어트의 여정을 시작해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 선배가 옆에서 말했다.
"관찰력이 대단한데? 맞아 너 코뿔소 같아. 뭐든 두두두두두. 다다다 다닥. 급할 것도 없는데 항상 뛰어다녀."
아하. 휴직을 알렸을 때 그 선배는 성격을 바꿀 순 없지만 조금 고쳐서 오라고 권했다. 너는 지나치게 진지하고, 심각하고 급하다고. 회사로 동료로서는 참 좋지만, 너 스스로는 그게 결국 독이 된다며.
아침 식사 메뉴는 늘 아이가 남긴 밥을 후루루 먹고 출근하기 바빴다. 생각해보면 아침 식사의 메뉴는 뭐든 간편하고 그릇이 많이 나오지 않는 것. 늘 국에 말아져 있는 밥이나 죽, 빵이었다.
것도 아이가 먹던 식었거나 딱딱하거나 자극적이지 않는 음식.
유치원에 보내고 비 오는 창을 보며 설거지를 하는데 전이 생각이 났다. 김치는 항상 있고, 마침 냉장고에 가지와 호박이 신선도가 떨어져 가고 있었다.
오늘은 전이다. 아침부터 막걸리 한 병은 많으니 저녁에 남편이 오면 같이 하고 아쉽지만 전을 구워 먹자.
지지직. 차차차찹
맛있고 안정된 소리가 난다. 반죽을 하고, 굽고, 타지 않게 세심히 챙겨야 하고.
코뿔소 엄마와는 어울리지 않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그리고 속까지 익도록 기다려야 한다.
휴직 후 아침을 만들며 나는 기다림에 대해 조금 너그러워졌다. 예전 동료나 가족, 민원이 핵심만 이야기하지 않고 그 겉의 중요하지 않는 말을 길게 하면 그렇게 화가 났다. 감히 회사 안에서는 표현할 수 없었지만 가족들에게 늘 하던 말은
"그래서? 요점이 뭐야? 요점만 말해."
조금 지나와보니 중요하지 않은 말은 없었다. 단지 그러한 말을 하게 된 본인의 상황을 내게 설명하기 위함이고, 어쩔 땐 부탁을 위한 미안함의 표현이었다. 나는 그걸 단지 중요하지 않은 마음이라 여겼다.
천천히 느리게 아침을 먹으면서 요즘 나는 지금까지 놓친 기다림의 중요함에 대해 배워간다. 뭐든 빨리 바뀌고 느리면 도태되는 현대 사회에서 어쩌면 반대로 가고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마음만은 편안하다.
오늘은 전을 먹고 반죽을 한가득 해버렸으니 아이가 오기 전에 빗소리와 전 굽는 소리를 들으며 힐링해야지. 근처에 사는 엄마네, 시댁에 한 접시 드려야겠다. 그리고 오늘 하루는 코뿔소 딸, 며느리가 아니라 전화 통화도 좀 더 찬찬히 들어줄 수 있는 나무늘보 가족이 되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