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누군가를 위한 음식은 버리기

-나의 식탁 이야기 : 나를 귀한 손님으로 아침을 시작

by 꼬마물고기

<오늘의 메뉴>

아이스 콜드 브루, 토마토, 녹차 초코 조각 케이크


나는 약과 불면증, 만성 피곤을 이겨내며 겨우겨우 올해 1월부터 휴직을 들어가게 되었다. 어느 동료는 몸이 최고라며 그냥 휴직 들어가라 권했고 어느 동료는 그다음 프로젝트까지 끝내고 2월부터 들어가라 말했다.

어릴 적부터 '예쓰맨'이 사회생활의 무기라 생각했던 미련한 나는 고민했지만 내 몸의 상태는 한 달도 힘들다며 시위 중이었다.

팀의 연말 행사를 무사히 마무리해주고 휴직 전 날인 일요일에도 나는 특근을 하며 겨우 짐 정리를 마쳤다.


2주 정도는 잠만 잤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잠을 자다 다시 하교 시간이 되면 겨우 저녁밥을 만들었다. 회사일을 하지 않았지만 남편은 그 전과 같이 식사 후 말없이 설거지와 아이의 양치질을 해주었다.

무엇을 할지, 휴직 기간 동안 내가 할 일이 뭔지 적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학창 시절부터 연말에 나는 1년 동안 쓰면 수첩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다이어리를 심사숙고하여 우리 집으로 데려왔었다. 많은 것들이 디지털화가 되었지만 손으로 쓰는 다이어리 맛을 도저히 버릴 수 없었다. 매끄럽지 않은 LP판이 가슴을 더 울리는 것처럼 다이어리에 내 손으로 적는 그것들은 정말 지켜야 하는 나만의 약속이 되는 것 같아서.


지금의 내 일이 뭔가 맞지 않아 병이 났나. 다른 일을 알아볼까. 다른 공부를 지금이라도 해볼까. 2주 후 몸이 어느 정도 휴식을 갖고 생각이라는 것을 할 여유가 생겼을 때 나는 올해의 '해야 할 일 리스트'를 만들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운전 연수도 해야 하고 미뤄뒀던 아이의 병원에 대한 정보도 수집해야 한다. 나의 분주한 눈빛을 봤는지 어느 저녁 퇴근한 남편이 말했다.


" 여보. 이번은 말 그대로 육아휴직이잖아.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1년을 보내는 건 어때? 물론 당신이 집에서 가족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어쩔 수 없지만, 내가 말하는 건 그 일상의 것 외에 아무것도 목표를 삼지 말고 그냥 휴식해보라고. "


띵. 남편의 한 마디가 머릿속에 큰 종을 울려버렸다. 맞아. 나 너무 열심히 살아서 병이 난 거야. 가정에서 내 자리, 회사에서 내 자리 어디서든 모자라단 말 듣지 않기 위해 빈틈없이 달려왔어. 그런 빈틈없는 일상을 지내는 동안 우리 아이에게도 늘 사랑보단 책임감과 가르침만 줬었지.


그래. 올해는 새 다이어리 친구를 사귀지 말아야지. 그냥 계획 없이 막살아봐야지.


하지만, 그냥 사는 것도 일정한 계획이 있어야 했다. 갑자기 주어진 휴식은 날 혼란스럽게 했다. 휴직 후 1달은 미처 하지 못했던 이삿짐 정리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버리고, 정리하고 닦아냈다.

잠은 아이와 함께 9시에 규칙적으로 잤다. 8시부터 아이와 양치를 하고 다음날 등원 옷을 정하고, 동화책 3권을 읽어주고 9시에 눈을 감았다. 오전 7시 45분에 아침 식사를 만들어 아이를 먹여 유치원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아이가 남긴 밥을 먹으며 아침 식사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올해는 나를 위해 지내기로 했잖아. 그런데 하루 첫 일과인 식사부터 영 모양이 빠지네? 아이가 이리저리 휘적거린 밥을 아이가 먹던 숟가락을 먹고 왜 하루를 시작해야 하지?

그래. 이제 아침식사도 느긋하게 나만을 위한 식사를 만들어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먹는 거야.

작은 생각에서 시작한 내 휴직의 첫 할 일이었다.

오직 나만을 위한 음식. 아침부터 굳이 밥이 안 당기면 안 먹어도 돼. 더 손이 가는 신선한 야채도 괜찮아. 아침부터 생선이나 고기가 먹고 싶으면 구워 먹자. 그릇은 언제나 손님 올 때 대접하던 귀한 것도 나를 위해 꺼내자. 이제 나는 나를 손님으로 대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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