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교진 Nov 18. 2016

스물다섯, 100세 노인을 따라갔다.

[아홉 번째 책]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란다.
-알란의 어머니가 어린 알란에게-


100세 생일날 슬리퍼 바람으로 창문을 넘어 도망친 알란의 이야기.


나이가 세 자리로 넘어가는 때에 탈출을 감행한다? 지난 세월을 지루하게 살아오다 100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렇게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고 진짜 인생을 찾기 위해 탈출을 감행했을 것이다. 책 제목으로만 봤을 때, 우리에게 친숙한 정서는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 책 내용은 친숙함을 깬 유쾌한 내용이었다.




알란은 100세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절대 지루하게 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가 세 자리가 넘어갈 때까지, 그리고 넘어가서도 자신의 삶에 '지루함'이란 용서하지 않은 사람처럼 산다. 상식과 예의를 갖춘 사람, 따뜻한 술 한 잔, 대신 정치 얘기는 안 됨. 이렇게 세 조건만 충족시키면 알란은 누구든 따라나섰고, 그렇게 스웨덴, 스페인, 미국, 러시아, 이란, 북한, 프랑스 등 세계 곳곳을 다녔다.  


그리고 100세가 되어서는 창문을 넘어 도망친다. 터미널에서 트렁크를 훔치기도 하고, 엉겁결에 사람이 죽기도 하고, 내 이름은 '달러'라고 말하면서 갑자기 인도양을 건너기도 한다. 사람이 죽고, 알란이 살던 지역은 사라진 노인으로 인해 한바탕 뒤집어지는 등 노인이 창문을 넘은 이후의 후폭풍은 크다. 하지만 이 일들은 알란이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벌인 일들은 아니다. 알란에게는 그저 살다보니 생긴, 어차피 생겼을 그런 일들이다. 그리고 다시 유유히 갈 길을 간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알란 칼손은 역사계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사실은 세계의 근현대사는 알란 칼손이라는 인물에 의해서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알란은 스페인의 프랑코 총통을 살리고, 러시아에 원자 폭탄 제조법에 대한 힌트를 주고, 러시아와 미국의 무기 갈등을 조절하고, 결국 러시아의 해체에 기여했다. 그가 세계를 누비면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국 관여하게 되고 만 이 일들은 훗날에 역사로 기록되는 중요한 일들이다. 물론 알란은 몰랐을 테지만 말이다.


이렇게 역사에 자주 등장해서 친숙한 인물들과 알란 사이의 이야기는 엉뚱하지만 이상하게 말이 된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거리면서 마치 역사의 뒷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책 한 권을 금방 읽어나갔다.


그리고 어쩌면 세상은 그렇게 논리적으로 딱딱 맞게 돌아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책에 동화된 것이다.




알란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쓸데없는 기대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 반대로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될 터, 쓸데없이 미리부터 골머리를 썩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271쪽-


알란은 수많은 인사들을 만나고, 그야말로 스펙타클하게 산 인물이다. 그러나 알란이 산 '지루함이 없는 삶'이란 결코 즐거움과 행복, 행운만이 가득한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알란은 이란의 비밀경찰 감옥에 수용되기도 했고, 블라디보스토크로 5년간 노역도 갔으며, 그 사이사이 총구가 바로 눈 앞에 있는 상황은 간단한 옵션일 정도다.  


그래도 자기 갈 길은 유쾌하게 걸어가는 이 100세 노인을 보고 있자면, 결국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고, 이것들을 억압하는 것에서 미련없이 떠난다고 해서 그렇게 큰 일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진부'하지만 알란이 있었기에 매우 유쾌하게 전달된 교훈이다.   


우연히 100세 할아버지를 따라가다 짊어지고 있던 이런저런 걱정들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인생을 오래 산 할아버지가 던지는 또 다른 메시지!


옳은 게 옳은 게 아니고 권위자가 옳다고 하는 게 옳은 거더라고.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364쪽-


*이 책의 가장 매력은 알란에게서 뿐만 아니라 책의 표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책 표지를 뒤집으면 알란의 인생 지도가 나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 가장 궁금해 할 '국가란 무엇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