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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교진 Nov 22. 2016

나는 내 아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열 번째 책] 수 클리볼드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엄마로서 가장 힘든 기도였지만, 그래도 그 순간 내가 바랄 수 있는 최대의 자비는 내 아들의 안전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1999년 역사상 최악의 총기 사건이 발생했다.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에릭과 딜런은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을 살해하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책의 저자 수 클리볼드는 역사에 기록된 이 사건의 가해자, 딜런의 엄마다.


그녀는 대학에서 장애인 학생들을 가르치고, 타고나기를 남 돕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것의 가치를 자신의 아들에게도 충실히 가르쳐 온 '좋은 엄마'였다. 그녀의 회고에 따르면 그녀의 아들 에릭은 이 가르침을 성실히 배워왔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역사상 최악의 총기 사건의 가해자가 됐고, 본인은 자살을 선택했다.


이 사건이 도대체 왜 일어났는지 사람들은 그 원인을 강렬하게 궁금해했다. 그 원인은 구체적일수록 좋았다. 모호하고 알 수 없는 원인은 제어할 수 없고,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은 후에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무서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쉽고 빠르게 찾은 첫 번째 원인이 바로 '가정'이었다. 도대체 집에서 애를 어떻게 키웠냐는 질타가 딜런의 가족에게로 쏟아졌다.


언론은 이를 뒷받침할 근거들을 빠르게 모아 왔다. 딜런의 집을 부자집으로 묘사해 에릭은 철모르는 부자집 아들로 둔갑시켰고, 수는 사건 후에도 태연히 미장원에 가는 사이코패스같은 사람으로 끌고 갔다.


이 책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원인에 대한 당사자로서의 답이다. 당시를 회고하면서 내 아이는 엄마인 내가 얼마든지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가 사실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지를 반성하는 글이자 미래를 위한 충고글이다.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라 묘사였다. -<나는 개해자의 엄마입니다.>, 71쪽-


이 책은 사랑하는 아들 딜런을 키웠던 평범한 엄마로서의 삶과 참사 이후 가해자의 엄마로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수 클리볼드는 남들을 돕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타고나기를 이타적인 사람이고, 아동심리를 공부하고 대학에서 장애 학생들을 가르칠 정도로 교육에 있어서는 전문가라고 할 수준이다. 그리고 수는 총기 소유에 철저하게 반대해 생일 선물로 총을 사달라는 에릭의 말에 단호하게 대응했고, 아들들에게 철저하게 교육시켰다. 이런 수의 보살핌 아래서 그의 아들 딜런은 잘 성장해 왔다. 그의 아들이 최악의 총기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가 되기 전까지 말이다.


딜런을 키우는 17년의 세월 동안 수는 아들의 살인과 자살을 예측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평소와 다르게 우울해한다는 것을 읽을 수는 있었지만 그때그때 대화로 해결했다고 생각했고, 아들 역시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온 것이다. 수에게 딜런은 조용하지만 말 잘 듣는 다정한 아들이었다.


그리고 아들 역시 앞으로 진학할 대학 얘기를 하는 등 함께 미래에 대해 얘기해 왔다고 말하며 전혀 예측하지 못 했음을 말한다. 덧붙여서 자신의 아이가 미래에 대해 태연히 얘기한다고 해서 우리 아이의 상태가 좋다고 단정지을 수 없음을 교육전문가로서 충고한다.


가해자를 포함해서 이 사건으로 죽은 사람들을 애도하기 위해 세운 14개의 십자가 중, 가해자인 딜런과 에릭의 십자가만 훼손됐던 일이 있었다. 수는 엄마로서 이것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앞으로 남은 생을 참혹한 사건의 가해자의 가족으로서 아들을 대신해 속죄해야 하는 동시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 엄마가 짊어진 운명의 무거움이 느껴졌다.


수는 참사가 일어나고 나서도 자신의 아들이 역사상 최악의 총기 사건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다 '지하실 테이프'라는 영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랑스러운 아들 딜런이 아닌 전혀 다른 모습의 딜런을 마주하게 된다. 욕설을 퍼붓고, 심한 말을 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들의 모습 말이다.


언론과 사회는 왕따, 약물, 가정 등에서 비교적 쉽게 원인을 찾았지만 엄마인 수는 이 영상을 보고 나서 내가 몰랐던 딜런의 모습을 자신이 쓴 일기를 통해서 찾아 나간다. 과거를 복기해 가면서 아들의 심리 상태가 불안정하고 어딘가 잘못됐음을 조금씩 발견한다.


그동안 '내 아이는 내가 잘 안다'는 믿음으로 이것들을 별의미 없이 받아들인 자신을 반성한다. 아이를 통제하고,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아이는 가르치는 대로 변한다는 믿음에 기반한 노력들이 얼마나 허무했는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끝에서 우리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도록 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은 가까이에 있는 악을 알아보고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악마의 아들일 것 같은 콜롬바인 고등학교 총격 사건의 가해자가 사실은 좋은 가정에서 자랐다. 그렇가면 왜 총격을 가했는가? 그는 살인으로 자살을 선택한 이례적인 예외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목적은 절대 수가 자신의 아들이 한 행동을 정당화하려거나 축소하고자 함에 있지 않다.



수는 딜런의 엄마이기 때문에 딜런의 마지막 순간의 사악함까지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말한다. 단, 내 자식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믿음에서 벗어나서 내 아이를 인간으로 객관적으로 보는 것 자체가 자살을 막고, 이 이례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예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수는 가해자의 엄마로서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정의 책임이 크지 않냐고 할 수 있겠지만, 가해자 가족으로서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긍정적 에너지로 바꾸어 사회에 기여하는(홍한별 옮긴 이) 수 클리볼드의 노력은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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