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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교진 Dec 04. 2016

시험을 '시험'해봤다.

[열두번째 책] EBS 시험 제작팀의 '시험'

김연아는 올림픽을 위해 12년을 얼음 위에 있었고, 나는 수능을 위해 12년을 책상 앞에 있었다. 그녀가 금메달을 따고 시상식 단상 위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던 것처럼 나도 수능을 끝마친 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어떤 생각으로 김연아가 눈물을 흘렸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허무함에 눈물을 흘렸다.      


12년 공부가 단 하루로 종지부를 찍었다는 다소 어이없는 허무함과 오늘의 시험으로 앞으로 내 인생의 방향이 크게 바뀔 수 있는데 나는 과연 오늘 잘 했는가 하는 무서움 때문에 밥 먹다 말고 펑펑 울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수능을 학교 늦게 가는 날, 늦게 출근하는 날로 기념하는 나이가 됐다. 그러니까 이제는 수능을 인생의 전부로 바라보는 것에서 멀어져서 이것 자체를 조금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책 <시험>도 그런 책이다.


<시험>은 EBS 교육대기획으로 연 초에 방영했던 '시험' 다큐멘터리를 정리한 책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 해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표준화 시험은 중산층 이상의 자녀들에게 유리한 시험이죠. 모국어를 쓰고, 각종 사교육을 감당할 여유가 있는 부모가 있으며 환경이 좋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유리해요. 표준화 시험 점수는 기본적으로 부모의 사회경제적 상태를 반영하죠. 그렇다면 대체 뭐가 공정하다는 거죠?
-로버트 스틴버그-     


인도의 BSEB matric, 중국의 가오타오, 대한민국의 수능 // 프랑스의 바칼로래아, 독일의 아비투어.

한 사회가 시험을 바라보는 인식 차이로 이렇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시험을 서열과 권력으로 보는 반면, 후자는 시험을 성장과 이데올로기로 바라본다. 그렇다면 교육 선진국은 둘 중 어디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교육은 어때야 하는지, 지금 우리 시험이 내포하고 있는 교육이 뭐가 잘못됐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등을 자세하게 말해주고 있다.      


시험은 그 사회가 추구하는 교육 가치와 철학, 제도론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도구라는 생각에서 시작한다. 우리에게 대표적인 시험은 수능 또는 공무원 시험 등이 있는데, 이 안에 깃든 우리사회 교육 철학, 가치는 무엇인지를 하나씩 보여준다.      


우리 시험은 뚜렷한 정답이 있는 표준화된 시험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시험이 내포하고 있는 교육 철학과 이념은 경쟁이다. 우리 사회에서 시험이란 대체적으로 물질적으로 더 나은 삶, 더 인간다운 삶을 위한 경쟁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비교, 평가가 용이한 표준화된 시험이 주를 이루는 것이다.  시험의 목적부터가 배우는 학생들 개개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열화를 위한 평가의 용이성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이런 시험만으로 한 사람의 역량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표준화된 시험은 패턴을 파악하고 기술을 익히면 잘 풀 수 있기 때문이다. 표준화된 시험이 바뀌지 않는 이상 시험을 잘 보는 기술, 패턴을 빠르게 파악하고 알려주는 사교육 시장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사교육을 지원해줄 수 있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성취도가 달라진다. 책은 이 점을 정확히 지적하며 시험이 과연 공정한 평가 방법인가를 되묻는다.


공정하지는 않더라도 현재 하고 있는 시험을 위한 공부 방법들이 과연 효과적이고 미래지향적인가? 그렇지도 않다는 게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라고 하는 서울대 학생들이 A+를 받는 방법은 그저 교수님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록하고 암기하는 것이다. 새로운 질문에 새로운 해결책과 답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정말 '속기'와 '암기'일까? 이 책의 끝에 다달을수록 우리 교육이 추구하는 철학과 가치의 빈곤함을 느껴진다.  

        

그러니까 이 책은 최종적으로 공부판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혜로운 인간이란 질문을 하는 인간이지 정해진 답을 맞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이앤 라비티-       


만약 인생도 다지선다 문제처럼 보기가 주어지고 그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그런 시험도 괜찮겠죠. 하지만 인생에서 겪는 많은 과제들은 그저 질문을 할 뿐이지 1,2,3,4의 선택지를 주진 않죠. 네 개 중 잘 고르면 좋은 점수를 받고 아니면 나쁜 점수를 준다? 하지만 인생은 결코 그런 식이 아닙니다.
-로버트 스틴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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