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직이던 내가 시골에서 육체노동하며 깨달은 10가지

육체노동의 장점 단점 5가지

by 제스

인문계를 나와서 사무직으로 일하며 줄 곧 앉아서 컴퓨터로만 일을 했다.

몸 쓰는 곳이라고는 손가락과 손목 정도? 아, 허리와 엉덩이를 가장 많이 쓴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대부분 앉아서만 생활을 하다가 시골로 내려와서는 몸 쓰는 일을 많이 한다. 마당 쓸기부터 페인트 칠에, 시멘트(미장)까지.. 얼마 전에는 화로를 만드느라 벽돌 쌓기(조적)도 시작했다.


컴퓨터로 주로 일하다가 이렇게 몸 쓰는 일을 하면서 깨달은 몇 가지를 적어 본다.





육체노동의 장점 5가지



첫째, 운동이 된다.


작업할 때 팔, 다리, 손과 어깨,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면 허벅지부터 어깨까지 모든 근육을 쓴다. 헬스 할 때처럼 특정 부위의 근육을 키우는 운동은 아니지만 일하면서 몸을 전체적으로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운동이 된다. 살면서 군대 이후에 이렇게 실제로 땀 흘려 일한 적이 있나? 생각해 보면 없는 것 같다. 사무직은 앉아 있을수록 몸이 안 좋아지지만 육체노동은 무리하지 않으면 적당한 운동이 된다.




둘째, 생산적이다.


회사 다닐 때 문서 작업을 많이 했다. PPT, Excel, DOC 보고서, 메일 쓰기 등.. 그런데 컴퓨터 작업은 출력하지 않으면 전원을 끄는 동시에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결과물이 전원 버튼과 함께 사라진다. 반면 몸 쓰는 일은 결과가 ‘분명히’ 남는다. 조금 다르게 말하면 결과물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다. 벽에 페인트 칠을 하면 페인트가 묻어 있고, 지붕부터 파이프관을 달면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된다. 나의 노동의 결과물이 ‘물리적으로’ 세상에 존재하게 된다. 없던 것을 만들어 냈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볼 때마다 뿌듯하다.




셋째, 경제적이다.


집에서 어디가 고장 나면 몇 번 고치려고 해 보다가 ‘안 되겠다. 사람 불러야 돼~’하면서 사람을 부른다. 그런데 이게 다 돈이다. 사람을 부르면 출장비가 나오고 고치고 부품을 갈면 재료비가 나온다. 교체한 부품 하나의 가격은 알 수 없다. 그냥 통으로 수리비를 지불한다. 그런데 시골 내려와서는 직접 수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셀프로 수리하면 재료비만 들기 때문에 훨씬 경제적이다. 물론 어설플 때가 많지만 실력은 점점 쌓이는 거니까.




넷째, 소비자에서 생산자의 시각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어떤 제품을 보면 ‘이거 어디에 팔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에는 ‘이거 어떻게 만들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물을 보는 관점이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바뀌었다. '살까'가 아니라 ‘이거 만들 수 있나?'하고 생각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 같다. 도시에 살 때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무 공예를 보면 '이거 얼마지?', '이거 팔면 월에 얼마 벌지?' 이런 생각을 했다. 시골에 와서는 '이거 어떻게 가공했지?', '이 재료는 뭐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물어볼까?'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물을 볼 때도 매우 유심히 보게 되었다. 벽돌 하나, 건물 구조 하나... 재질이 뭔지, 어떻게 결합하고, 어떤 장비를 썼을지 생각해 본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다섯째, 창의적이다.


'어디서 샀지?'에서 생각을 시작하면 쇼핑을 하게 되지만 '어떻게 만들지?'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창의적이 된다. 영어의 창의적(creative)이라는 단어도 창조(create)에서 나왔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창조) 자체가 창의적인 활동이다.


옆마당에 아이들 전용으로 모래 놀이터(정확하게는 모래 놀이 테이블)를 만들어 주었다.

테이블이라고 하면서 평평한 판자에 다리 네 개를 붙인 것 정도로 생각했는데 구조가 꽤나 복잡했다. 또 아이들이 테이블에 올라갈 수도 있고, 모래의 무개를 견뎌야 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튼튼하게 만들어야 했다. 테이블을 만드는 작업보다 생각하고 설계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수능 이후 삼각함수도 몇십 년 만에 써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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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칠을 하기 전에 기존의 묻어 있던 페인트를 벗겨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라인더, 헤라, 고압분사기를 써서 작업을 했다.





육체노동의 단점 5가지


반면 육체노동의 단점은 뚜렷하다.



첫째,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다.


밖에서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날씨와 바깥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여름엔 에어컨이 없고 겨울엔 온풍기가 없다. 여름엔 땡볕에서, 겨울엔 맹추위에 일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흔히 듣는 말이 있다.


'공부 안 하면 더울 땐 더운데서 일하고, 추울 땐 추운데서 일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며 그게 뭐 어때서? 밖에서 일하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게 당연하다. 모든 일이 사무실 에어컨 밑에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누군가는 밖에서 만들고, 고치고, 생산을 해야 이 사회가 굴러간다. 나조차도 이 소중한 가치를 몰랐다.

더울 때 더운데서 일하는 땀의 가치를..

추울 때 추운데서 일하며 견뎌야 하는 인내를..

이 소중한 노동의 가치를 공부의 잘잘못으로 무시하는 사회가 되지 않길 바란다.




둘째, 위험하다.


몸이 다칠 수 있다. 컴퓨터로 하는 일은 아무리 많이 해도 몸이 피곤한 정도지 다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과로사할 수 있다.) 그런데 육체노동은 몸을 쓰다 보니 다치는 경우가 많다. 장비를 쓰다가 손가락이 다치는 일은 예삿일이고, 무거운 것을 들다가 허리가 삐끗하거나, 벽돌을 떨어뜨려 발등이 찍힌 적도 있다. 사다리에 오를 때마다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사무직 노동자는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는 반면 육체 노동자는 각종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셋째, 복사가 안 된다.


컴퓨터 작업은 결과물을 무한히 복사할 수 있다. Ctrl C + V 하면 똑같은 결과물을 생성한다. 그러나 육체노동은 복사가 안 된다. 같은 작업물을 만들어 내려면 똑같은 작업을 그대로 다시 해야 한다. 게다가 재료도 똑같이 구비를 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컴퓨터는 대단하다. 무한 복제라니.. 육체노동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넷째, 실행 취소가 안 된다.


작업을 되돌릴 수 없다. Ctrl+Z가 없다. 컴퓨터 작업은 잘못하거나 실수를 하면 ‘실행 취소’를 하면 아무리 실수를 해도 번복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물리적 작업은 페인트 한 방울 떨어뜨려도 되돌릴 수 없다. 실수든 실패든 한 번 작업한 결과물은 세상에 흔적을 남긴다. 마치 인생 같다고나 할까..




다섯째, 작업 준비 시간이 길다.


컴퓨터는 부팅을 하면 바로 작업을 할 수 있지만 육체노동은 모든 장비를 준비해야 한다. 드라이버부터 나사, 뺀치 각종 공구까지 모두 옮기고 나서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작업이 끝날 때도 모든 장비를 고스란히 도로 갖다 놓아야 한다. 번거로운 건 둘째치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다시 작업 현장을 정리해야 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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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내려와서 육체노동의 가치를 깨닫고 있다. 목공 작업과 미장(페인트) 작업.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중 나에게 맞는 것은?


사무직으로 10년 넘게 일하고 시골에 온 지 몇 년 안 되었지만 몸과 머리 쓰는 일 둘 다 해보니 나에게 더 맞는 일은 ‘둘 다’인 것 같다.


왜냐면 몸을 쓰고 싶은 날이 있고 머리를 쓰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몸이 피곤해서 도저히 나가서 일할 엄두가 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작업 효율도 오르지 않고 일하다가 다칠 수도 있다. 반대로 몸이 찌뿌둥하고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나가서 몸 쓰는 일을 하고 싶다. 특히 날씨 좋은 날에는 밖에서 햇빛 쐬며 일하고 싶어 진다. 날이 좋은 날은 업무 효율이 매우 좋다.


그러고 보면 우리 몸은 신체와 정신을 모두 고르게 써야 한다. 몸과 머리 중 한쪽만 쓰면 안 쓰는 부분이 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득 초등학교 때인가, 중학교 때 본 교육의 목적이 생각난다.


지덕체(智德體) 함양.

지식과 인격과 몸을 고르게 발달시키는 것이 공교육의 목적이라고 했다. 시골에 내려와서 몸 쓰는 일을 하면서 비로소 지덕체를 균형 있게 함양하고 있는 것 같다.

몸을 쓰고 머리를 쓰고 자연을 보면서 덕도 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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