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던 감나무에서, 다시 새순이 피었다

더 단단해지려고 아팠나 보다

by 제스
재작년 겨울, 옆마당의 감나무가 죽는 줄 알았다.


우리 가족이 이사 오기 전부터 이 시골집을 지키는 유일한 나무였다.

언제, 누가 심었는지 모르지만 감나무는 우리 집의 상징 같은 나무였다.


주방 창문으로 내다보면 감나무는 내게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었다.

봄에는 연녹색 새순이 돋아나면서 '이제 따뜻한 봄이 왔어'하고 알려주었고

여름에는 무성한 진초록색에 잎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며 '이제는 한 여름이야'하고 알려줬다.

가을에는 특히 주황색 감이 대롱대롱 달려 '풍성한 가을이 왔다'는 걸 알려주었고

아이들과 함께 감나무를 따면서 가을의 추억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었다.

감이 많이 날 때는 곶감으로 만들어 지붕 처만에 주렁주렁 걸어 놓았다.

'풍성한' 가을이란 것을 감나무가 체험시켜 주었다.



감을 따고 까치 먹으라고 몇 개 남겨 둔 감은 물렁물렁 진한 주황색 홍시가 된다. 홍시는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도 마지막까지 달려 있는데 마지막 홍시가 떨어면서 '이제는 추운 겨울이야'하고 알려주었다.


IMG_8755.HEIC 감나무는 마지막 홍시가 떨어면서 '이제는 추운 겨울이야'하고 알려주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세 해.. 감나무와 함께 쌓은 추억들도 두터워질 때쯤 감나무가 이상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껍질이 점점 썩어가는가 싶더니 하얀 곰팡이 같은 것이 그 자리에 피었다.

'어? 이상하다. 원래 이런 건가?'하고 그냥 지켜봤는데 시간이 지나자 나무줄기가 통째로 썩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감나무가 죽는 줄 알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동물은 아프면 동물병원이라도 데리고 가는데 나무는 어디로 데려갈 수도 없었다. 누굴 불러야 하는지,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도 몰라 지나가는 동네 어르신을 붙잡고 물어봤다.

"어르신 감나무가 이게 병든 것 같은데 혹시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잉~ 나무가 병들었나 보네"라고만 하시고 별다른 해결책은 알려 주시지 않았다. 잘 모르시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인터넷을 뒤지다가 산림진흥원(?)인가 홈페이지를 발견하고 문의 글을 남겼다. 여기는 그래도 어떤 답이라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상세한 증상과 사진을 몇 장 덧붙여서 게시판에 문의 글을 남겼다.

다다음 날인가 댓글이 달렸다.


‘나무가 썩어가니 베어 내는 게 좋겠습니다’

짤막한 답글이었다. 그것도 너무 절망적인 답글..

'베어 내라고...? 약 쓸 방법도 없다고…?'

아니.. 이렇게 아무 손 쓸 방법도 없는 건가...


아무것도 안 하고 나무를 통째로 베고 싶지는 않았다. 함께 한 시간이 있고 그만큼 정이 들었는데 손도 못 쓰고 베어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 조치를 취지 않으면 나무가 점점 썩어서 통째로 고사할 것만 같았다.


'그래! 일단 썩은 부위를 도려내자.'


나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톱으로 썩은 줄기를 베기 시작했다. 나무껍질이 썩은 부분에는 버섯이 왕성하게 폈는데 주먹으로 쳐보니 '통통'하고 속이 빈 소리가 났다. 나무 전체를 두들겨 가면서 '통통' 소리가 나는 부분을 최대한 잘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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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껍질이 점점 썩어가는가 싶더니 하얀 곰팡이 같은 것이 그 자리에 피었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면, 시골의 과실나무는 대부분 키가 작다. 가지치기를 많이 하는 데다가 손 닿을 거리에서 열매를 쉽게 따기 위해 키가 크기 전에 나무를 짧게 자른다. 그래서 관리를 잘하는(?) 과실나무들은 대부분 키가 작다.


이 감나무도 처음 이사 왔을 때는 키가 작았다. 나는 가지치기를 할 줄 몰라 그냥 두기만 했다. 높이가 점점 높아지더니 이내 지붕보다 높아졌다. 동네 어르신들이 지나가면서 나무를 볼 때마다 ‘열매 많이 맺히려면 가지 쳐야 혀' 또는 ‘이거 거름 줘야 혀’ 하시면서 조언(?)을 해주셨다. 그래서 나도 마지못해 철물점에서 톱을 사서 가지치기를 조금 했다. 그래도 큰 줄기는 건드리지 않았다. 나는 큰 나무가 좋다. 여름철 그늘을 만들어 주고 가능하다면 애들이 올라탈 수도 있는 큰 나무가 있었으면 했다.


감나무는 내가 별 관리를 하지 않았는데도 잘 자랐다. 한 해 걸쳐 한 해마다 감도 많이 열렸다. 그런데 가지 끝에 버섯이 피기 시작하더니 어떤 줄기는 가운데가 갈라져서 썩어 버렸다. 큰 줄기 하나는 나무껍질이 벗겨지면서 속이 다 썩어버렸다. '영양제를 줘야 하나… 약을 쳐야 하나' 걱정만 하는 사이 나무가 부분 부분 계속 썩어만 갔다.


내가 관리를 하지 않아서 이렇게 많이 썩어 버린 걸까..

이런 자책감을 느끼며 나무를 잘랐다. 가만히 두면 그냥 자라는 게 나무가 아니었나?

나무 밑동을 중심으로 크게 세 줄기로 뻗어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 줄기 전체를 잘라냈다. 자르는 김에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다른 줄기, 그 위에 줄기, 마디마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다 확인하고 썩은 부분을 모두 잘라냈다.


그렇게 베어내고 나니 앙상한 두 줄기만 남았다. 겨울을 나고 봄이 되었다. 살아남은 두 줄기에서 잔가지가 나와 잎이 폈다. 푸릇푸릇한 연두색 새순.. 너무나 다행이었다.

'죽지 않고 새 생명이 돋아났다. 다행이다.'


IMG_1325.HEIC 감나무에 새순이 돋아났다. 다행이다.


그전까지는 감나무에 감이 많이 열리길 바랬는데 이제는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느껴졌다. 뿌리까지 썩어서 베어내는 일이 없이 그저 살아있기만을 바란다.


살아있으면 또 가지에서 잎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꽃이 저문 자리에서는 열매가 맺히고

열매가 익을 때쯤이면 각종 새들이고 모여 나무에 앉아 지저귀고 감을 먹고 쉬다 갈 것이다.

창문으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기쁨이다.

겨울에 홍시를 쪼아 먹는 새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다.



그렇게 이겨내고 작년 가을 감나무에 50개가 훌쩍 넘는 열매가 열렸다. 아이들과 감도 따고 곶감도 만들었다. 나무 한 그루가 주는 추억과 기쁨은 정말 컸다. 감나무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겨울이 되고 봄이 되고 다시 새순이 피어났다.


보통 과실나무는 한 해가 풍년이면 다음 해는 열매가 별로 안 맺힌다. 작년에 죽다 살아난 감나무에서 그렇게 많은 열매가 열렸기 때문에 올해는 감이 한 열댓 개 열릴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 그런데 웬걸...



올봄에 감꽃이 어느 때보다 많이 열렸다.

하나, 둘, 셋.... 50, 60...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었다.

'감꽃이 이렇게 많이 피는 거였나? 이 중 대부분이 떨어지고 몇 개만 열매가 되는 거였나?'

그런데 오늘 보니 대부분의 꽃이 모두 열매가 되었다. 한 가지에 10개도 넘는 감이 맺혔다.

'이대로 자라면 나뭇가지가 휘겠는 걸...'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열매가 많이 열렸다.


아, 아프고 나면 더 옹골차지는 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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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없이 피는 꽃은 없다고 했던가

비 온 뒤 땅이 굳는 것처럼, 감나무도 아프고 난 뒤 더 내실 있게 자라고 있었다.


아프고 나면 속이 더 꽉 차고 더 튼실한 열매를 맺는가 보다

나무도

사람도

사랑도


아픔을 이겨내고 나면 더 옹골차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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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감나무에 딴 단감 열매와 처마 밑에 걸어 둔 곶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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