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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작 김미희 Mar 30. 2021

(시 마중 이야기 16)
척 보면 알고 딱 보면 외게

-모든 것은 처음이 시작이다

척 보면 알고 딱 보면 외게 되는 날도 

                       ‘처음’에서 시작되었다  


 달리기 시합/김미희


   와-아 

  집으로 가는 시간 

  학원 차가 쪼롬이 

  교문 앞에 줄을 섰어요 


  친구들은 

  학원 차를 타고 

  출발하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지요 


  학원을 다니지 않는 나는 

  타고 갈 차가 없어요 


  조그만 다리를 건너갑니다 

  소소소 강물이 아는 체를 하네요 

  나도 돌멩이 하나 주워 

  동당! 마주 인사했어요 


  길섶의 냉이꽃에게도 웃어줬어요 

  탁! 

  어느새 뒤따라 온 요한이 

  내 어깨를 치며 뛰어가잖아요 

  그에 질세라 나도 뜀박질을 했어요. 

  천사원이라 적힌 우리 집 문패까지 냅다 달렸어요 

  가방이 우리보다 먼저 결승점에 닿았습니다 


  우리는 따뜻해진 손을 잡고 들어갑니다 

                                           -2002 한국일보 동시 당선작-


나는 달리기를 못한다. 체력장 시험 때 100미터를 23초에 뛰었다면 더 말해 무엇 하리. 운동신경은 그야말로 젬병이다. 그러나 시골에 산 탓에 말도 탈 줄 알았고(어디까지나 과거형이다-어린 시절 이후로 말을 탈 수 있는지 내 실력을 검증해 볼 기회가 없었다. 그 말도 승마용 말이 아니라 우리 집에 키우던 조랑말쯤 되었을 것이다. 어린 내게 그 말은 적토마처럼 훌륭해 보였다. 둘째 오빠는 그 녀석에게 내 엉덩이를 기억시킨다고 어지간히 애먹었다.) 섬 아이들이 그러하듯 잠수도 잘했고 소라도 잘 잡았고 문어도 잘 잡았다. 어른 해녀들처럼 숨비소리도 낼 줄 알았다. 이제 와 고백하건대 나는 바닷속을 그야말로 속속들이 알던 꼬마해녀였다. 


누가“문어, 소라는 어떤 데 사니? 어떡해야 잡을 수 있니?”하고 물으면 나는 그들의 은신처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저 난 딱 보면 알겠기에 잡았을 뿐이다.

딱 보면 안다는 이 말은 어쩌면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말인 동시에 한 분야에 종사한 세월의 무게를 나타낸 말이지 않을까. 나는 바다에서 살았고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서보다 바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제주 관광을 온 사람들이 잠수함을 타고 바닷속으로 잠깐 내려가 보는 삯으로 비싼 돈을 내는 걸 보면 내겐 돈 낭비로 보일 수밖에 없다. 내겐 잠수함이란 기계가 주는 신기함만 있지 바닷속을 볼 수 있겠다는 신비감은 전혀 없다. 어릴 때 눈만 뜨면 들어가 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달리기 시합이란 이 시는 나의 등단작이다. 바다 이야기를 한참 해놓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싶겠지만 나의 첫걸음을 뗀 건 이 시다. 섬에서 나서 20년을 살았고 다시 대학 다니고 결혼을 해서 바다가 있는 도시, 부산과 울산에서 또 20년을 살았다. 


울산엔 우시장으로 유명했던 남창시장이 있다. 조그만 남창 다리 아래로는 한 때 멱도 감고 물고기도 잡았다는 시내가 흐른다. 짧은 이 다리를 건너던 어느 날 위 시가 내게 왔다. 내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라기보다 내 상상 속에 펼쳐진 상황이다. 


나는 아이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고 씩씩하게 역경을 이겨내길 간절히 원했다.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그런 마음이 쌓여 얻게 된 시다. 또 어찌 보면 달리기를 무지 못하는 나라서 쓸 수 있는 시가 아니었을까? 달리기를 잘했다면 운동회 달리기만 생각났을 테니까. 


 당선된 후 한동안은 달리기라는 말만 들어도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았고 심지어 동시에 일어난 일이다 할 때 동시라는 글자만 읽어도 나는 얼굴이 붉어지곤 했다. 그때 그‘처음 마음’을 나는 언제나 기억할 것이다. 


오랜 시간 시를 생각하고 시를 쓰다 보면 ‘딱 보면 쓰게 되는’ 그런 경지가 내게 도래(?)하지 않을까? 문자 좀 써서 표현하면 그야말로 나는 학수고대한다. 딱 보면 시가 되는 그런 날, 딱 들으면 시가 되는, 그런 날을! 


박목월 선생님도 처음 말을 몰던 그 흥분과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고 낄낄낄 웃어댔나 보다. 목적지에 닿았을 때 졸기만 했던 아버지는 깜짝 놀라서 칭찬해주실 것이다. ‘이제 네가 말을 몰만큼 자랐구나.’ 흐뭇해하실 것이다. 무엇을 해낸 처음이란 이렇듯 가슴이 터질 것처럼 벅차다. 혼자서 낄낄 거리게 된다. 누구에게나, 무엇에게나 처음은 있다. 돌멩이도 혼자 굴러본 처음이 있을 것이고 구르고 구르다 마침내는 누군가의 안식처를 위한 벽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날을 꿈꾼다. 


『아버지와 나』 

           박목월 


아버지는 

마차에 타고 

말은  

내가 몬다 

낄,낄,낄, 


말은 웃으며 

두 눈 

부릅뜨고 

힝 힝 하지만 

낄,낄,낄, 


아버지는 

십 리 길 졸고 

말은 

내가 몬다.

낄,낄,낄. 





오늘의 TIP: 미미한 시작, 창대한 끝을 향한 행군.             

              꾸준히 걷는 수밖에 없다. 즐거움의 배낭을 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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