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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작 김미희 Mar 29. 2021

(시 마중 이야기 15)
​산은 산이 아니고

직관을 이용한 낯설게 보기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어둠에 잠긴 산/김미희


밤에 고속도로를

달려보았나요?


찻길 양쪽 저 멀리

낙타 행렬을 보았겠네요. 

혹이 하나인 낙타 

혹이 두 개인 낙타 

때로는 코끼리 떼 


긴 줄로 서서 

밤길을 걷고 있지요 

느릿느릿 

뚜벅뚜벅 


어둠은 신비스럽다. 검은 장막을 ‘차르르’ 늘어뜨린 그 새침이라니. 하루에 한 번 밤이 만들어 놓는 은밀함이 온갖 상상을 가져다준다. 밤은 생명이 만들어지는 시간이다. 오늘 자고 아침에 눈을 뜨면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 365일 날마다 불어넣어지는 생명. 어둠이 주는 선물이다. 


어둠이 들려준 비밀 중 하나. 

그날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멀리 어둠 속에 나타난 코끼리, 낙타 떼들. 

치타처럼 생긴 내 차는 빠르게 달려가는데 묵직한 그들은 뚜벅뚜벅 느리게 가고 있다. 육지의 70%가 산지인 우리나라이다 보니 무척 긴 행렬이다. 어디로 가는 걸까? 아침이면 신기루처럼 이 야생 떼들은 산 뒤로 숨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숨어있는 이들의 부분을 햇살 아래서 이미 여러 번 보았다. 물론 나는 끝까지 그들을 모르는 척할 것이다. 

어둠이 오면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날 것이다. 뚜벅뚜벅.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그러나 시 속으로 들어오면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산은 수많은 낙타 떼 일 수도 있고 코끼리 떼 일 수도 있다. 산을 산이 아니게 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시인 자신이다. 아니다, 시인이 아니다. 누군가 귀에다 속삭여 주고 간다. 저건 산이 아니야, 그렇고말고! 저것도 물이 아니지. 다시 잘 보라니까. 그것 봐. 아니지? 누군가 내 귀에 끊임없이 쟁쟁거리다 사라진다. 


유심지에 소개된 고은 선생님의 일기를 읽었다. 시인의 일기장에 ‘오늘 시 한 편을 썼다’는 말은 없다. 대신 “오늘 시가 왔다”라고 쓰여 있다. 시가 오는 찰나, 참 황홀한 순간이다.    


여기 그런 순간을 들려주는 또 한 분의 시인이 있다. 

들키면 어쩌나 조마조마 가슴을 쥐며 살짝 밖을 내다보는 알밤 형제. 

‘방그죽’ 입을 벌린 밤송이 방문을 ‘빠꼼’ 열고 내다보는 알밤 형제들이라니. 귀여워서 내 마음이 쪼그르 오그라드는 것 같다. 수차례 밖을 내다보며 둘이 소곤소곤 건네는 소리. 알밤 형제의 두근거림이 내 마음을 졸이게 하더니 드디어 안전한 순간을 포착했나 보다. 나뭇잎도 같이 마음을 졸였던 게 분명하다. 알밤이 굴러오자 얼른 숨겨주는 그 마음씀이라니. 

휴, 다행이다. 


알암밤 형제


              현동염 


방그죽 입를 벌린 밤송이에서 

알암밤 형제가 내다봅니다. 

다람쥐 있나 없나 내다봅니다. 


다람쥐 볼까 볼까 망설이다가 

떽데굴 떨어진 알암밤 형제. 

나뭇잎 이불 속에 얼른 숨어요. 




오늘의 TIP: 깨어있으라, 맞을 준비를 하라.

              안테나를 눕히지 마라. 시를 향한 주파수에 맞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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