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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진 Oct 17. 2019

프로 마켓러의 자세


오후 5시 45분을 지나자 무리 중 한 명이 말을 꺼낸다. 


이제 슬슬 정리할까? 

아냐! 잠시만 있어봐봐. 누군가 또 올 것 같아


이 대화는 내가 친구들과 마켓에 나갈 때 마다 벌어지는 상황이다. 여기서 말하는 마켓이란, 슈퍼마켓은 아니고 책을 사고 파는 프리마켓을 이야기하는 거다. 조금 더 있어 보이는(?) 명칭으로는 ‘아트북페어’ 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가 직접 책을 만들고, 나처럼 책을 만든 친구들과 북마켓을 참가하게 되면서 나는 새로운 즐거움 하나를 알게 되었다. 바로, 내 눈 앞에서(!) 내가 만든 책을 누군가가 흥미롭게 봐주고(!!), 마침내 내가 만든 책을 사주는(!!!) 정말 흔치 않은 귀하고 감사한 경험을 해 본 것이다. 작가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이제 막 첫 책을 만든 사람에게 이런 경험은 정말 황홀했다. 


나와 친구들은 책을 만들자마자 그 주에 마켓에 나간거라, 사실상 마켓에서 독립출판 작가로 데뷔(?)한 셈이었다. “와! 책 재미있을 것 같네요!” “응원할게요” 우리들에게 마켓에서 받은 사람들의 격려와 칭찬은 우리를 춤추게 하고도 남았다.      


첫 마켓에 나가고 깨달았다. 창작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바로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 관심과 사랑을 확인 할 수 있는 곳이 가수에겐 콘서트, 배우에겐 관객과의 대화라면, (독립출판)작가에겐 북마켓이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 즐거움에 취해 무려 작년에만 7번의 마켓을 참여했다. 주위에서는 “마켓뽕 맞았냐” “매번 그렇게 나가는 게 힘들지 않냐”는 말을 들었지만, 나와 친구들은 굴하지 않았다. 그렇게 작년에 열린 북마켓에 연이어 참가하며 우리는 쪼랩에서 프로마켓러로 거듭났다.      


사실 북마켓은 꽤 힘든 행사다. 판매하는 책을 직접 행사장까지 들고 가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기도 하고, 야외 행사인 경우 장장 7, 8시간 정도를 버티며 판매를 해야하는 상황도 많기 때문이다. 손님이 많은 경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기도 하고, 손님이 너무 없는 경우 무료하게 멍하니 앞을 바라보며 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게 마켓의 고단함이다.      


한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갑자기 야외인데 비가 장대비처럼 쏟아져서 참여한 참가팀들이 모두 경악하며 테이블을 옮기고 책이 젖지 않도록 사수하기 위해 온몸을 내던지기도 했더랬다. 하지만 <우천으로 인해 부스를 철수해도 됩니다>라는 행사팀의 안내에도 우리는 후퇴하지 않았다. 혹시나 올지 모르는 손님을 위해 우산으로 책과 몸을 지키며 자리를 지켰다. (물론 그 덕분에 행사 관계자들이 와서 우리가 만든 책을 한가득 사주었다. 하하.)      

손님이 있든 없든 나는 늘 마켓에서 시간을 채운다. 7시가 행사 마감 시간이면, 정말 그 시간까지는 정리도 하지 않고, 손님을 기다린다. 어느 곳이든 마감 시간에 부랴부랴 도착해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고, 그 시간 동안만은 마치 가게 영업을 하듯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명이라도 더 우리가 만든 것을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기도 하고. 조금은 부끄럽지만 이게 가장 솔직한 이유다. 내 이야기를 봐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송도에서 열렸던 '북어택' 아트북 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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