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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진 Jan 11. 2019

누구를 위하여 책을 만드나

# 책 따위 안 만들어도 되지만 4

6주간의 수업이 끝나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책이라는 형태로 내 글을 엮어보니 확실히 좋은 점이 있었다. 우선, 모니터 화면에서 봤을 때보다 가제본으로 만들어보니 고쳐야 할 부분이 더 잘 보였다. 그런데 오타와 비문을 고치는 건 정말 끝이 없는 작업! 나와의 싸움이었다. 한번 글을 고치고 난 후, 다시 읽어보면 또 다른 오타와 비문이 나왔다. 하…여기서 쓰러질 순 없다…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혹독한 수련을 이어나가는 무사처럼,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거침없이 문장을 잘라냈고, 비문을 고치고 오타를 걸러나가며 긴 겨울을 보냈다.


또 다른 좋은 점은 내가 지금까지 써둔 분량이 어느 정도 두께가 될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의 분량을 더 써야 하는지 계획도 세울 수 있었다. 그렇게 분량을 가늠해 나가면서 새로운 글을 쓰는 작업과 교정 교열을 동시에 해나갔다. 


 하지만 한창 작업에 열을 올려야 하는 시기, 나는 종종 슬럼프에 빠졌다. 혼자 책을 만들어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사실 따로 있었다. 정해진 마감이 없는지라 의욕이 떨어지고 작업이 늘어져도, 누구 하나 나를 붙잡아 줄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당시 나는 내 시간을 책 작업하는데 다 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정작 남아도는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 강제적인 스케줄이 없으니 자발적인 의지로 매일 작업을 이어나가는 게 좀 힘들었다. 시간이 많으면 더 많은 작업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의지박약한 사람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매일 꾸준히 해나가는 건 또 다른 노력이 필요했다. 


‘이대로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다간 죽도 밥도 안 되겠어.’ 


그래서 실천한 특단의 방법은 매일 외부 스케줄을 만드는 것! 책을 만드는 것과 관련된 스케줄도 있었고 그냥 내가 하고 싶었던 활동들도 있었다. 작업하러 가는 곳을 책방으로 정해두고 휴무일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4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독서, 글쓰기, 공부, 그림 그리기 모임, 교정 교열 워크숍 등 일주일의 스케줄을 꾸렸다. 사장님과 다른 단골손님들에게 “모임 중독이냐”, “이 정도면 돈 받고 일해야 하는 거 아니냐”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일상은 책방의 스케줄과 함께 돌아갔다. 


낮 1, 2시쯤 도착해서 그날의 모임을 끝낸 후에, 책을 작업하는 식으로 내 시간을 쪼개서 쓰기 시작했다. 혼자 일주일 내내 책 작업을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며 시간도보내니 일상도 조금씩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요즘 뭐 하고 지내냐고 물어볼 때마다, 나는 “오키로미터라는 서점이 있는데, 거길 다니고 있어”라고 말하곤 했다. 학교에 다니고 회사에 다녔던 것처럼. 한 공간에 정을 붙이고 카페 한구석에 자리해 조금씩 작업을 이어나갔다. 학교와 회사 말고 이렇게 자주 간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일상 시간 대부분을 보냈다. 


이 시기, 나를 괴롭게 하는 또 하나의 고민이 있었다. (혼자 작업을 하다 보면 고민만 늘어간다.) 작업을 할수록 ‘오, 너무 재밌어! 빨리 완성해야지!!’라는 마음보다, ‘이런 글을… 책으로 내는 게…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면서 내 작업물의 부족한 부분만 보이고 맘에 들지 않았다. 


작업 기간이 벌써 5개월이 넘어가다 보니 처음에 가졌던 의욕을 이어 가는 게 제일 어려웠다. 내가 더 잘 써보겠다고 끙끙거릴 때마다 오사장님은 이야기했다.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못해요, 부족하더라도 일단 처음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다음이 있는 거예요. 한 권을 만들어 보면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어요.”라고 말해주셨다. 그리고 다음 가제본이 나와야 하는 일정도 정해주셨다. 약속된 시간에서 늘어지면 “얼른 하세요, 원래 마감 시간 지나면 혼나고 돈도 못 받아요!”라며 채찍질도 아끼지 않으셨다. 적절한 당근과 함께 등짝을 후려치는 사장님의 말 덕분에, 책 작업을 그만둘까 싶다가도 마음을 다잡아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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