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로컬 찐 베이글맛집

by 리틀 골드문트

뉴욕에 가면 베이글이지

나는 맛집을 좋아하지만, 맛집에 열정적인 사람은 아니다. 내게 좋아하다 와 열정적이다의 차이는 ‘줄을 10분가량 이상 설 수 있느냐’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대기가 오래 필요한 유명한 맛집은 거의 경험해 본 적이 없는데, 예를 들면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 그렇다.


나의 최애 동네 중 하나인 북촌을 거닐다 보면 그 근처를 지나갈 때가 있는데, 맛있다고 소문난 베이글을 먹어보고 싶다가도 매장 주변에서 주문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먹고 싶다는 마음은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다음을 기약하게 된다. 그래서 뉴욕 여행을 앞두고 나의 몇 안 되는 먹부림 리스트 중에 '그 맛있다는' 연어 치즈 베이글이 포함돼 있었다.


베이글은 19세기 유대인 이민자들이 뉴욕에 정착하며 탄생한 음식이라고 한다. 그들의 보존 음식이었던 훈제 연어와 크림치즈가 만나, 오늘날 뉴욕을 상징하는 맛이 되었다.


어학원에서 알게 된 친구가 ‘에싸베이글(Ess-a Bagel)’을 먹고 하루가 행복했다며 강력 추천한 적이 있다.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가 찌아쉬안, 서윤 언니 둘에게 "뉴욕에서 제일 유명한 베이글을 먹어보자"고 꼬드겨 에싸베이글을 먹으러 원정을 떠났다. (빠른 걸음으로 30분 동안 도심을 누볐으니 원정이 맞다.)




에싸베이글은 유명세답게 매장 안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는데 주문이 빨리 진행되어 10분 정도 기다리자 내 차례가 되었다. 줄을 기다리는 동안 핸드폰으로 주문하는 법을 검색해서 언니들에게 주문법을 알려줬다.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메뉴는 연어, 쪽파, 크림치즈 조합의 ‘시그니처 페이보릿 베이글 샌드위치(A Signature Favorite)’였다.


날은 따뜻했고 햇살은 따사로웠다. 우리는 똑같은 베이글 세 개를 포장하고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테이크아웃한 후에, 미드타운 맨해튼 한복판에 있는 뉴요커들에게 점심 식사 장소로도 애용되는 브라이언트 파크로 향했다. 10월 말인데도 불구하고 6월 초여름 날씨의 햇살이 가득한 뉴욕 거리에서 어학원 교재를 넣은 백팩을 메고, 언니들과 깔깔거리며 맛있는 음식을 들고 공원으로 향하는 이 순간이 정말 꿈만 같았다. 우리는 수업 후 배가 참 고픈 상태였지만 30분을 걸어 베이글을 샀고, 또 30분을 걸어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베이글을 먹기로 한 못 낭만파이기도 했다. 각자의 나라에서는 일분일초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도 뉴욕에서만큼은 작정하고 열심히 비효율적으로 살며 아름다움을 만끽할 준비가 돼 있었던 것이다.


브라이언트 파크


따스한 햇살, 브라이언트파크의 우거진 나무 아래서 점심을 즐기러 온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운 좋게 자리를 발견했다. 허기진 나는 서둘러 베이글을 베어 먹었다. 첫입을 베어 물고 깜짝 놀랐다. 소금에 절인 연어의 짠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내 입맛이 싱거운 편인가 싶어 언니들을 바라보니, 다들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쁘진 않은데 짜긴 짜다” 기대했던 맛은 아니었지만, 브라이언트파크에 앉아 맨해튼의 풍경을 즐기며 베이글을 먹는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그 후에 들은 얘기이지만, 에싸베이글은 좀 옛날에 유명했던 베이글 집이란다. 요즘은 웨스트빌리지에 있는 ‘머레이베이글’이 인기란다. 아무튼 연어 치즈 베이글에 대실망한 나는 그 후로 베이글을 찾아다니지 않았다. 그러던 중 여행 중반부에 숙소를 월스트리트에 있는 한 호텔로 옮긴 후 구글 지도로 근처 맛집을 찾아보다가 ‘리버티 베이글'을 발견했는데 여기 평점이 대단했다. 그리고 마침 그즈음에 한국의 지인으로부터 그 베이글이 로컬 사람들도 많이 찾는 곳이라고 듣게 되었다.


베이글 맛집은 여기!


매장 안에 들어가자 베이글을 만드는 사람들과 주문만 받는 사람들이 나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베이글만 만드는 사람만 6명쯤 됐다. 나는 블루베리 베이글에 훈제 연어, 아보카도, 양파, 케이퍼, 토마토와 레몬이 들어간 ‘노바카도(NOVACADO)'를 주문해서 숙소에 가져왔다.




맛은 엄청났다. 쫄깃한 블루베리 베이글에 적당하게 짭조름한 연어와 새콤한 레몬 향과 케이퍼, 아삭하게 씹히는 양파 식감과 전체적인 균형을 돕는 아보카도의 조합이 감탄을 부르는 맛이었다. 아주 배가 고픈 상태가 아니었지만, 나는 베이글을 남김없이 먹었고 빵빵해진 배를 두드렸다. 다소 애매했던 베이글과의 첫 만남은 기분 좋은 마무리와 함께 좋은 먹부림 추억이 되었다.


뉴욕의 거리에서 베이글과 커피를 손에 쥔 채 햇살을 맞으며 걷는 기분, 그건 오직 그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작은 호사였다. 다시 뉴욕을 찾게 된다면, 그때도 나는 베이글 한 조각과 함께 이 도시를 다시 음미하고 싶다.



> 덧붙여 뉴욕 최고의 라떼가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