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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연 Nov 29. 2022

사실, 나는

사실 나는 참 못됐다. 

어려서부터 잘 먹고, 잘 자고, 자분자분 잘 노는 조용한 아이였지만 어쩌다 수틀리면 하루 종일이라도 기꺼이 울어재꼈다. 서너 살 쯤의 내가 엄마가 사 온 까만 구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통곡을 하는 통에 애 숨넘어갈까 봐 당장에 빨간 구두로 바꿔오라고 엄마에게 호통 치는 시늉까지 해야 했다는 이야기는 우리 할머니의 단골 레퍼토리, 텔레비전에 심형래가 나오면 방송이 끝날 때까지 모든 식구들이 입도 뻥긋 못하도록 쪼그만 게 어찌나 포악을 떨었던지 기가 찼다는 이야기는 우리 엄마의 레퍼토리였다. 동네 친구 다 초대해서 연 내 생일파티에서 케이크 위의 단 하나뿐인 체리가 눈이 동그랗고 빼빼 마른 친구의 빨간 입술 속으로 쏙 하니 빨려 들어가던 순간 치솟은 분노는 지금도 내 가슴을 불끈하게 하는 기억이다.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했고, 갖고 싶은 건 꼭 가져야 했으며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고래고래 울어재껴야 직성이 풀렸던 나에게 우리 할머니는 차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널 때마다 외쳤다. 

"그놈의 심술보, 한강에 던져버려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어야 했다. 첫 아이를 낳아 품에 안고 처음 젖을 물린 순간 그놈의 심술보가 떡하니 뛰쳐나올 줄이야.

나는 완벽한 엄마가 되기를 꿈꾸고 있었다. 아이를 기르는 것이 내 생에 가장 큰 기쁨이 될 예정이었으며 내 몸과 마음은 기껍고도 온전하게 아이들에게 바쳐질 것이었다. 내가 숱하게 보아온 미디어 속 엄마들은 똥 기저귀를 갈면서도 분홍빛 함박웃음을 짓고, 아이 입에 들어가는 숟가락만 보고도 빈 배가 부르며, 아이를 위해서라면 자존심과 두려움도 단번에 내려놓는 이들이었다. 그것은 곧 다가올 나의 미래였다. 


그런데 아이를 안아 든 내 입꼬리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삐뚤거리고 있었다. 감동과 감격의 눈물이 흐를 줄 알았던 눈꼬리는 건조하기 그지없었다. 어처구니없이 쏟아져 나온 건 저 깊은 데부터 슬슬 뒤틀려 오르더니 토해내고 싶을 만큼 몸집을 불린 심통이었다. 

이럴 순 없었다. 나는 이런 엄마가 아니어야 했다. 나는 꼭 진분홍 미소를 지어 보일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몇 밤을 자고 일어나도 내 심통은 도무지 작아지지 않았다. 


열 달을 내 뱃속에 넣고 길렀지만 우리는 사실 초면이었고, 까만 머리가 덥수룩한 쪼글쪼글한 아이는 썩 예뻐 보이지도 않았다. 공중목욕탕도 가지 않던 내가 아이를 안아 들었다고 갑자기 가슴을 내어놓고 수다를 떨 수 있을 리 없었다. 고3 때도 잠자는 시간만큼은 포기하지 않았건만 젖을 물리라며 수시로 깨워대는 상황에도 부아가 치밀었다. 평생을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는데 하루아침에 내 삶을 이 작은 아이에게 떡 자르듯 숭덩 썰어 주라니 이것이 정말 가능하긴 한 것인가 의구심만 커져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발을 동동 구르고 악을 쓰고 울고 싶었다. 하지만 산후조리원에서 우는 것은 빨갛고 조그마한 아기들 뿐 엄마는 아무도 울지 않았다. 

별수 없이 나는 어떻게든 엄마가 되어야 했다. 이젠 정말 한강에 심술보를 버리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조금이라도 덜 못된 엄마가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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