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사무실 구석에서 족히 2미터는 될 것 같은 현판에 글씨를 새기고 있는 후배 H에게 다들 한 마디씩 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인데, 번듯한 현판은 있어야 한다며H는 목재상에서 나무판을 사 와 매일 조각칼로 OO도서관, OO야학 글씨를 새겼다. 공학도인 그 녀석이 잘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시작하더니, 결국 해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그때, 돈이 없는 우리들은 그렇게 모든 것을 몸으로 때웠다.
처음 모 교회 부설 조직으로 시작한 야학은 내가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다. 어떻게 할까 하다 우리 힘으로 공간을 마련하자고 마음을 모았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일이었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겁이 없었다.
우리는 일면식도 없는 지역 유지들을 찾아다녔다. 작은 도서관을 겸하는 야학을 만들겠다고, 도와달라고. 장미꽃을 한 송이씩 포장해 신촌 카페를 돌아다니며 팔았다. 취직에 성공한 친구들에게 한 달에 얼마씩 후원해 달라고 아쉬운 소리도 했다. 뭐 하나 쉬운 일이 없었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긴 노동이 끝나고 공부하겠다고 찾아온 어린 친구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영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를 보다 그 시절 내 모습이 떠올랐다. 상황은 다르지만 하고 싶다는 그 열정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솔직히 얘기하면 이 영화를 보기 전엔 ‘이승윤 효과’ 덕분에 뜬 영화라고 생각했다.
가수 이승윤의 풋풋한 시절 모습이 담겨 있다니 팬심으로 당연히 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홍대 작은 클럽에서 노래했던 싱어송라이터 이승윤을 만난 적이 없으니 그렇게라도 보고 싶었다.
전국 개봉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우리집 주변 극장에선 상영하지 않는다. 이럴 때 지방 소도시에 사는 사람은 서럽다.
“간간이 얼굴을 비추는” 정도라고 하니 사실 전체 영화에서 이승윤 비중은 별로 없을 것 같아 살짝 포기하고 있었다. 아쉽지만 나중에 OTT에 나오면 봐야지….
그러다가 기회가 생겼다. 서울에 올라간 김에 짬을 냈다. 역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생기는 법!
일요일 낮시간.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극장을 찾았다. 나같이 혼자 온 사람들도 많았지만 상대의 팬심을 지지하는 다정한 커플들도 보였다. 영화 끝나고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해서 동행한 듯한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부부와 아이들이 함께 온 4인 가족의 모습에 괜히 흐뭇해진다.
나의 시간은 언제 이렇게 빠르게 흘러갔을까. 우리 아이들과 영화관에 갔던 추억들이 스쳐간다.
누구나 ‘쨍’하고 결심하는 순간이 온다. 시작은 감독 (권)하정이었다. 우연히 친구(후배)들과 소극장을 찾았다가 공연하는 이승윤을 본다.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의 다른 곡들도 궁금해진다. 플레이리스트 중에 <무얼 훔치지>란 곡을 듣고 울컥한다. 영화를 전공한 하정이 여러 가지 이유들로 칩거 아닌 칩거 생활을 해왔는데 그의 노래에 위로받는다. 그리고 “이 가수와 한번 작업해 보고 싶다”고 친구들에게 말한다. 한 걸음도 떼기 어려울 것 같았는데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동안 하정을 안타깝게 지켜봤던 친구들도 흔쾌히 함께 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듣보인간’ 셋, 아하하(김아현 구은하 권하정)가 뭉친다. 그리고 나름 전략을 짠다. 어떻게 이승윤에게 ‘어필’할 것인가. 뮤직비디오는 만들어 본 적도 없지만, 이승윤에게 ‘성의’를 보이기 위해 방구석에서 <무명성 지구인> 뮤비를 제작해 건넨다. 이승윤이 안 하겠다고 하면 이 모든 과정을 담을 다큐도 끝이다. 너무도 깜찍한 뮤비에 이승윤은 “무조건 함께 하겠다”고 화답한다.
모든 것이 “처음”인 사람들이라 다행이라고 서로를 위로하지만, 현장은 엄혹하다. 어디에서든 티가 나는 초짜들은 번번이 까인다. 심지어 “돈 많냐?”는 비아냥까지 씹어 삼켜야 했다. 자연스레 반발심 내지 오기가 생긴다. 주변에선 지금이라도 포기하라지만 천만에!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운다. 페인트 칠은 물론이고 석고상을 직접 제작하는 무모함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하하’는 특유의 쾌활함으로 결국 <영웅수집가> 뮤비를 만들어낸다.
하, 이 감독들. 왜 이렇게 귀여운 거지? 대체 이승윤이 뭐길래 왜, 이렇게까지 성의를 보이는 건데?
짧은 엔딩 크레딧이 넘어가는 내내 그런 생각들이 떠나지 않았다.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덕질이라고 말하기엔 이들의 열정이 차고 넘친다. “이승윤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이승윤은 안중에도 없고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는 이승윤의 편지글이 적절한 표현이었다. 나 역시 이승윤 때문에 극장을 찾았지만 덕분에 젊은 감독들을 발견해 기뻤다. 무모했던 내 20대를 만난 듯해 반가웠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화양연화’라고 하던가. 아하하 감독들의 화양연화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모쪼록 그렇게 우당탕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길 응원한다. 아하하 감독의 다음 작품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