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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Sep 25. 2023

위층에 코끼리가 산다

발망치 소리가 이런 거구나

쿵쿵쿵쿵!! 쿵쿵쿵쿵!!

오늘 아침에도 진동소리를 들으며 깼다. 위층 모씨가 출근 준비 하는 모양이다. 욕실로 갔다가 주방으로 갔다가 방으로 갔다가, 그 사람이 움직이는 동선대로 울림이 이어진다.


아파트에 산 지 30년 가까이 됐지만 층간소음 때문에 괴로운 건 처음인 것 같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좋은 이웃을 만났구나.


문득 먼먼 옛날,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래층에 살았던 아주머니 생각났다. 층간소음 때문에 못 살겠다고 했던.

지금까지생생하다. 항상 얘기하던 레퍼토리.

“우리 애가 고3인데, 애기들 뛰는 소리 때문에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대요. … 우리가 이사가든지 해야지, 원.”


낮에도 아이들이 거실을 한 바퀴 통통통 뛰면 어김없이 아주머니가 올라와서 벨을 눌렀다. 거의 실시간이었다. 미안해하는 내게 한바탕 잔소리하고 이사 얘기로 마무리짓곤 했다.

그때만 해도,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우리집 애들처럼 얌전한 애들이 어딨다고, 이정도면 참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허나, 지금은 깊이 반성한다).


몇 번의 사과에도 아래층을 만족시킬 수 없었고, 점점 감정만 쌓여갔다. 결국 그렇게 힘드시면 이사 가시라고 맞받아치게 됐고, 내가 그렇게 말한 뒤론 아이러니하게도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몇 년 뒤 우리가 먼저 그 아파트를 떠났다. 그리고 그 집엔 내가 잘 아는 OO엄마네가 이사 왔다. 꼬맹이들이 셋인 집이다. 우리 애들보다 더 어리고, 자타공인 장난꾸러기들이었다.


아래층 아주머니의 반응이 궁금했다. 살짝 웃음도 나왔다.  

우리집 애들은 진짜 얌전한 거라니까요. 층간소음이 뭔지 제 제대로 아실 걸요?  




그게 업보였을까. 세월이 흘러 흘러 아이들 뛰는 소리가 아니라, 다 큰 어른의 걸음 소리에 매일 고통을 받고 있다.

쿵쿵쿵쿵!! 쿵쿵쿵쿵!!

위층 그분이 퇴근했나 보다. 오늘 기분 나쁜 일이 있었나? 발걸음이 더 거칠다.

원래 평소 보폭이 렇게 걸까?

저렇게 걸어도 건강에 문제가 없을까? 진심, 걱정된다.

혼자 사는 사람일까? 누가 옆에서 지적해 줄 가족이 없는 걸까?  


어느 주말, 소파에 앉아 있는데 쿵쿵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설마, 저 걸음으로 거실에서 걷기 운동을 하는 걸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위층 현관문에 메모를 붙였다.

이 아파트가 방음이 안 좋은지 쿵쿵 걷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고, 슬리퍼를 착용해 주시면 좋겠다고….

최대한 완곡하게, 귀엽게, 조심스럽게.


그러나 달라지지 않았다. 제자리걸음 하는 듯한 울림은 없어졌지만 발걸음은 여전하다.

소음이라면 이어폰을 끼고 음악이라도 듣겠는데, 진동은 음악을 뚫고 나온다. 특히 저녁 11시넘어 온 집안을 누비고 다닐 땐 미치겠다. 스트레스 때문에 가끔 뒷목이 뻣뻣해진다.


혹시나 관리사무소에서 중재 역할을 해주려나 싶어서 찾아가 봤더니 뾰족한 수가 없는 모양이다. 아마도 갈등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 일단 어른들의 ‘망치 걸음’을 특히 강조해서 방송을 내보내겠다는데 해결책이 될 것 같지 않다.

중요하게 알게 된 정보는, 위층에 사는 사람들은 분양받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하, 이 아파트에선 별일 없으면 전세계약을 갱신해서 살려 했는데 망했다.


쿵쿵쿵쿵!! 쿵쿵쿵쿵!!

오늘도 코끼리가 지나간다. 도저히 사람의 발걸음이 아니다.

어, 오늘은 조용한데? 드디어 우리의 괴로움을 알게 된 걸까? 그럴 리가.  

나도 모르게 위층의 진동에 경을 곤두세운다.

언젠가 보았던 그림책(우당탕탕, 할머니 귀가 커졌어요) 속 할머니가 돼 버린 것 같다.

그림책은 해피엔딩인데... 차라리 귀여운 아이들이라면 이해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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