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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Oct 05. 2023

다행이다, 우리가 서로의 곁에 있어서

중환자실에서 보낸 여드레

“엄마, 그래도 막 스트레스받고 그러지 마. 그러면 안돼.”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어.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시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엄마 책임 같다는 생각.”

“아니야, 엄마. 치매 환자를 어떻게 집에서 돌봐. 그건 아니야.”


엄마를 돌보느라 집을 떠나 있는 동안 가족들은 내 걱정을 했다. 밥맛 없다고 끼니를 거르지 않느냐고, 잠도 못 자는 것 아니냐고, 쓸데없는 생각들을 너무 많이 하진 않느냐고.

그랬다. 엄마의 현재 상태가 내 탓인 듯 스스로를 괴롭혔다. 엄마를 모시고 살 자신도 없으면서, 그렇게 효성스러운 딸도 아니면서. 그저 자책만 하는 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를 가라앉게 만드는 생각들에 사로잡혔다.

    

그런 얘기를 동생에게 비쳤더니 고개를 젓는다. 엄마를 요양원에 모신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요양원에 계시는 동안 엄마 표정이 밝았다고, 오히려 하루 종일 집에 계시는 것보다 좋으셨을 거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는 듯 단호한 말에 내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다.   

혼자라면 어떻게 견딜까 싶다. 매일매일 엄마를 면회할 때마다 드는 수만 가지 생각과 걱정들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정말 다행이다. 내가 일을 그만둬서. 이렇게 우리가 서로의 곁에 있어서.




새벽에 “배고파” 하는 소리에 깼다. 꿈이었다. 분명히 엄마 목소리였는데…. 얼마나 배가 고프실까.


모든 병원이 그렇듯 중환자실에 오면 온갖 검사를 다시 해야 한다. 당연히 금식을 해야 한다. 가뜩이나 며칠 동안 아무것도 드시지 못했는데 속상하다.

기본 검사 외에 MRI를 찍으면 어떻겠냐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신경과에서 협진을 왔는데 엄마의 상태가 멍하다고, 뇌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한 모양이다.

찍지 않겠다고 했다. 병원에선 지금 상태라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도 MRI 검사를 무난히 할 수 있다고 권하는데, 더 이상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보호자로서 병원에서 하자고 하는 걸 거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몇 주간의 병원 생활을 통해 난  보호자의 결정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병원에선 검사를 받지 않았을 경우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얘기하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엄마가 평소 당신 몸에 대해 얘기하셨듯, 이젠 우리가 ‘반 의사’ 역할을 하기로 했다.  


엄마가 이지경에 이른 이유는 단순하다. 치매를 앓고 계신 엄마가 입원 기간 내내 심리적 불안정으로 제대로 음식을 드시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병원에선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관찰하지 못한 채 항생제 등을 투여했으니 약에 예민한 엄마가 배겨낼 수 없었던 거였다. 게다가 꼼짝도 못 하고 누워 계시느라 욕창이 생기고 말았다.


검사 결과는 심각했다. 크레아티닌(신장수치)이 6.28로 치솟았고, 욕창으로 CRP(염증수치)가 7.28을 기록했다. 새롭게 주치의가 된 내과 과장은 투석을 권유했다.

중환자실에서 엄마는 갑작스레 혀를 깨물었고, 혈변을 보셨고, 기운을 좀 차리자 울부짖었다. 면회할 때마다 동생과 나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하든 이곳에서 엄마를 탈출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검사 데이터를 챙겼다. 힐끗힐끗 차트를 보다가 원무과에 검사 기록지를 요구했다. 처음 입원할 때부터 현재까지의 추이를 살펴볼 수 있었다. 원래부터 좋지 않았다던 엄마의 신장수치는 입원 당시 1.23이었다.


매일 병원에 전화를 걸어 엄마의 상태를 챙겼던 요양원 원장이 엄마를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그러시라 했다. 동생과 난 병원 로비에서 기다린다. 눈자위가 빨개진 원장이 조심스레 제안한다. 엄마가 퇴원하시려면 콧줄(비위관 튜브)을 통해 영양 공급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며칠 전에 간호사가 생각해 보라고 할 때만 해도 싫었는데, 사실 그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주저하는 내게 원장이 위로해 준다. 임시로 하는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며칠 전에 포털에서 검색해서 읽었던, 요양병원에 계신 어르신들이 죽을 때까지 하신다던 그 콧줄 아닌가. 두렵지만 하기로 했다.


그 덕분인지 엄마의 상태가 조금 나아졌다. 콧줄을 통해 뉴케어를 50ml씩  드렸는데 차츰 200ml까지 늘였다 한다.

동생이 저녁면회를 한 날, 간호사가 엄마한테 이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내 동생”이라고 하셨단다. 아, 이게 얼마만인가.

목소리가 이상해서 그렇지 “물좀 줘”라고 분명히 말씀하셔서 물도 여러 번 드셨단다. 아, 엄마 살았다.

캐나다에 있는 오빠도 오라고 할까 그랬더니 끄덕끄덕 하셨단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고생하셨어요, 엄마, 이제 퇴원해요.

중환자실에서 여드레간 사투를 벌인 엄마는 결국 이겨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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