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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Sep 19. 2023

“소송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막말의 끝판왕

다음날, 정형외과 주치의가 말해 뒀다던 외과 과장을 만났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왜 오셨죠?”라고 묻는다. 훌륭한 분이라고, 진료 예약 잡아놨으니 가보라고 주치의가 너스레를 떨었는데 얘기가 안 됐나?

엄마의 현재 욕창 상태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다고 했더니 대뜸 이렇게 얘기한다.

“이 환자는 욕창이 문제가 아니에요. 무조건 앉고 일어서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저 상태로는 완치 어려워요.”


30대 후반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 의사가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하게 얘기한다.

아예 대못을 박는다. 꽝꽝!! “욕창이요? 완치 어려워요, 어려워요, 어려워요….” 계속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욕창이 생긴 게 언제쯤인 것 같냐고 물었더니, 적어도 일주일은 넘은 것 같다고 한다. 그러다 아차 싶었는지 경우에 환자에 따라서는 하루이틀 새 그렇게 되기도 한다고 말을 바꾼다.

중환자실에 와서야 욕창 얘기를 들었다고, 어떻게 병원에서 욕창이 생긴 걸 모를 수 있냐고 물었더니,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럴 수 있단다.


그리고 정형외과 과장과 똑같은 얘기를 한다.     

“그렇게 구멍이 생기는 건 의료보험관리공단 탓이에요. 돌볼 사람을 제한하고 금액을 정해 놓았잖아요. 사람 많이 쓰면 그런 일 없겠죠. 한데 비용 많이 청구하면 보호자분 그거 부담하실 수 있겠어요? 따지려면 거기 가서 항의하세요.”

 

내가 만난 의사들은 잔뜩 화가 난 사람들 같다. 죄다 의료보험관리공단을 욕한다. 뭐라고 말만 하면 사정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 취급하며 보호자를 윽박지른다.

그러더니 “범인을 잡으려고 하지 마세요. … 그래서, 소송하시게요? 이길 수 있겠어요?”까지 들은 것 같다.

주치의가 말해 뒀다는 건 이런 건가? 환자에게 문제가 생겼으니 대신 방어해 달라고 부탁한 걸까. 훌륭한 사람이라더니 똑같은 인간이었네.


이럴 땐 싸움을 잘하고 싶다. 깝죽대는 저 입을 틀어막고 싶다.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다. 앞뒤 재지 않고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고 싶다. 지금 얻다 대고 협박이냐고 멱살을 잡고 싶다.

내가 싫다.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내가 한심하다. 다시 볼 일 없는 의사니 안 들은 걸로 하자고 합리화하는 내가 밉다. 돌아서서 눈물이나 쏟는 나약한 인간이라니….

 



엄마를 만나러 중환자실로 올라간다. 안쪽 격리실에서 앞쪽으로 한 칸 옮겨졌다. 엄마는 어제보다 2밀리쯤 눈을 더 뜨신 것 같다. 왼쪽 손등이 부었다. 링거를 하도 많이 맞아서 그렇다고 한다.

엄마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엄마 보려고 올라와 있다고, 면회가 하루 두 번이라 동생이랑 번갈아 오는 거라고. 미안하다고, 힘내자고.

다시 눈물이 쏟아진다. 감정이 복받친다. 엄마에겐 우는 모습 보이고 싶지 않은데 울먹인다. 말할 수 없이 속상하다. 엄마가 한 번 크게 끙 소리를 내며 답하는 듯하다.


바뀐 주치의를 만나기로 했다. 중환자실 옆 화장실에 들러 거울을 본다. 눈자위가 빨갛다. 낼모레 육십인 딸이 어린아이처럼 매일 운다.

1층 내과 진료실 앞에서 기다린다. 심호흡을 한다. 평정심을 찾아야 한다. 이 병원 원장이기도 하다니 좀 나을까.


의사는 최대한 말을 아낀다. 병원 오기 전 엄마의 상태가 어땠는지 묻는다. 당신 힘으로 걷고 식사도 잘하셨는데 3주간 병원에 방치돼서 저렇게 됐다고 얘기한다.

잠시 정적. 진료기록을 유심히 보는 의사에게 어제 병원 시스템에 대해 문제제기 했는데 혹시 보고받았느냐고 물었더니 얼버무린다. 아는 것도 같고 모르는 것도 같다.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게 사과인가.


놀랍게도 엄마의 신장 상태가 심각하다고 한다. 수술 전에도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많이 안 좋다고 한다. 약으로 안되면 투석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덧붙인다.

도대체 얼마나 더 심한 얘기들을 들어야 하나. 그럴 리가 없다. 수술 전에도 엄마의 신장은 나쁘지 않았다. 아무리 치매 환자라지만 어떻게 엄마가 저 지경이 되도록 병원에선 아무런 조치를 안 한 걸까.

내 목표는 병원 탈출이라고, 이 병원에 계속 있고 싶은 생각 없다고, 퇴원할 수 있게만 회복시켜 달라고 얘기하고 나왔다.


내가 병원에 왔다는 얘기를 들었나 보다. 어제 만난 간호부장한테 전화가 왔다. 로비에서 잠깐 보자고 한다.

“어제 말씀하신 내용은 병원 운영위원회에 공유했구요…. 저희가요, 욕창 부분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에 따른 부분은 저희가 부담….”

그깟 드레싱 비용 안 내려고 내가 문제제기를 한 건가. 감정이 격해진다. 그냥 간호부장 사과로 무마하겠다는 건가.

간호사 문제로 꼬리 자르기 하려는 병원의 태도에 화가 난다. 그래서 덧붙인다. 엄마 걱정 많이 해준 간호사도 있었다고, 고맙게 생각한다고. 그런데 이건 아니라고. 병원의 공식 입장을 달라고. 엄마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거라고.


무거운 얼굴로 간호부장이 배웅해 준다.

병원을 나왔는데 딱히 갈 곳이 없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받은 모욕의 무게가 무겁게 날 짓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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